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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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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빠의 선택

위기의 조선업, 경남 거제 르포… 조선소 및 사내하청 노동자와 전·현직 협력업체 대표 등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연이은 두 사람의 죽음
등록 2016-06-01 16:26 수정 2022-07-21 10:36
세계 1위였던 한국 조선산업이 위기다. 조선산업은 어쩌다 벼랑 끝에 내몰린 걸까.
5월18일과 24~25일 사흘간 경남 거제도를 찾아 ‘위기의 조선업’ 현장을 살펴봤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본사가 위치한 거제 지역경제의 70% 이상은 조선산업에 기대고 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와 전·현직 협력업체 대표, 회사 관계자 등을 스무 명 넘게 만나 벼랑 끝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5월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두 사람의 유족도 만났다. <한겨레21>에 ‘연장傳’을 연재하는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5월24~26일 2박3일간 주요 조선소가 자리잡은 6개 지역을 돌며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정부와 금융권, 기업, 노동자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조선업 구조조정의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도 짚어본다. _편집자
5월18일 경남 거제도의 한 공단에서 선박을 건조하던 노동자들이 휴식시간에 바다를 바라보며 쉬고 있다.

5월18일 경남 거제도의 한 공단에서 선박을 건조하던 노동자들이 휴식시간에 바다를 바라보며 쉬고 있다.

협력업체 ‘사장’들의 5월18일: 거제의 한 병원 장례식장

“잘못 흘러가면 대우도, 삼성도 (협력업체) 대표들이 도미노처럼 죽어나갈 끼다.”

누군가 ‘다가올’ 죽음을 말했다. 목구멍까지 울분이 차 있는 목소리다. 모여 앉은 열댓 명 가운데 아무도 “불길한 소리 하지 말라”고 막지 않았다. 말없이 소주잔만 홀짝였다. 죽음으로 이어질 뻔한 ‘지나간’ 사건들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다.

“(이번 사건) 앞에 경고했다 아입니꺼. 대우에서 (협력업체) 대표가 번개탄 피우고 자살 시도한 게 두어 달 됐나? 그 양반 살아는 있는데 자기 이름도 몬 써요. 삼성에선 (협력업체) 대표가 제초제 두 병 들고 원청한테 가서 노임대장, 통장, 도장, 유서까지 주면서 ‘이걸(기성금) 갖고 어떻게 경영하라 합니까? 이 약 먹고 나 죽으란 이야기니 죽겠습니다’ 그랬어요.”

대낮부터 장례식장 앞마당에 소주병이 쌓여갔다. 구깃구깃한 작업복에 흙투성이 장화를 신은 50~60대 초로의 얼굴들이 불콰해졌다. 조문객 대부분은 조선소 사내협력업체 대표들이다. 짙은 쥐색 작업복은 대우조선해양, 옅은 푸른빛이 도는 흰색 작업복은 삼성중공업으로 구분한다. 쥐색, 흰색 가릴 것 없이 섞여 앉아 술잔이 오갔다. 쓰린 속을 쓰린 소주로 달랬다.

“경고했다 아입니꺼”

협력업체 대표들 주변을 어른거리던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진 것은 이틀 전이었다. 5월16일,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업체인 ㅅ기업의 이강수(54·가명) 대표가 경남 거제시 장목면 바닷가에서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사무실이 있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자동차로 15분 걸리는 곳이다. 그는 대형 블록(선박을 구성하는 철구조물)을 조립해 대우조선해양에 납품하는 사내협력업체를 운영했다. 직원 120여 명을 거느린 ‘사장님’이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늦둥이 막내는 이제 겨우 7살. 성당에 다니는 천주교 신자였다.

이강수 대표는 매형이 경영하던 선박 블록 업체에서 총무로 일하다가 2009년 회사를 물려받았다. 직원들에게 줘야 할 퇴직금 10여억원을 안고 시작했지만 대우조선해양이 우수협력업체로 선정할 만큼 제법 경영이 잘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직원들 임금도 주지 못할 처지로 내몰렸다. 빚만 어림잡아 20억원이 넘었다. “2년 전부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것 같다. 기성금 몇억 받아서 덮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을 거다.” 한 협력업체 대표가 입을 떼자,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업체 대표가 거들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어렵다, 힘들다’ 예고는 있었대요.”

이들이 ‘죽음의 도미노’를 걱정하는 데는 그럴 만한 곡절이 있다. 지난 2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안에서 ㅊ기업 대표 강아무개씨가 번개탄을 피워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극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그는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하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기성금(원청이 하청에 지급하는 공사대금)이 실제 투입된 노동인력의 임금 60%밖에 지급되지 않아 매달 1억~3억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며, 원청을 원망하는 내용이 가득했다.

대우조선해양에선 5월 들어서만 사내협력업체 9곳이 폐업했다. 지난해 180개가 넘던 사내협력업체 수는 올해 140여 개로 줄었다. 삼성중공업이라고 형편이 낫진 않다. 대우조선해양에 견줘 폐업이 적긴 하지만, 협력업체 대표마다 적게는 몇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대의 빚을 떠안고 있다.

“아무개 대표가 마지막 기성금을 들고 잠적했다더라” “아무개 대표가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고 원청에 대들었다더라”…. 5월25일 만난 삼성중공업 협력업체 대표 조동명(가명)씨의 휴대전화로 끊임없이 흉흉한 소식이 타전됐다. 거제만이 아니다. 지난해 말에는 울산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업체, 지난 4월에는 경남 통영의 한 중형 조선소 협력업체 대표가 각각 빚을 견디다 못해 죽음을 택했다.

총선 직후 조선업 2차 위기 시작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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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수주가 급감했어도 2011년까지는 그나마 협력업체 대표들이 자기 월급 정도는 가져갔다. 어려워지기 시작한 건 2012년부터다. 해양플랜트 수주가 늘어나 과다 생산이 시작되고, 원청이 재정을 긴축하면서 하나둘 폐업하는 협력업체들이 늘어났다.” 양병효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 고용안정부장의 말이다.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올해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선박을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국내 조선업 전체의 ‘수주 절벽’이 심각하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관계자는 “입사 20년이 넘었는데 독(dock·큰 선박을 만들거나 수리하는 장소)이 비는 걸 지난해 처음 봤다. 올해 안에 추가 수주가 없으면 내후년부터는 독이 빌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업의 위기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촉발됐다. 경기 침체로 물동량이 줄면서 선주들은 선박을 발주하지 않았다. 1차 위기는 벌크선이나 중소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하는 중소형 조선업체를 덮쳤다. 성동조선해양, SPP조선 등이 이때 무너졌다.

 
 
 

2010년 고유가로 심해에 묻힌 석유나 가스를 시추하는 드릴십, 반잠수식 시추선 등 해양플랜트 발주가 늘어나자, 현대중공업 등 한국 조선산업 ‘빅3’ 업체들은 앞다퉈 수주에 나섰다. 당시에는 위기를 버티는 힘이 됐지만, 약이 아니라 독이었다. 해양플랜트 저가 수주와 비싼 수입 기자재 비용, 납기 지연 등이 겹치면서 업체마다 2014~2015년 수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심지어 부채비율이 7천%를 넘었다. 유예됐던 2차 위기가 다시 시작됐다. 정부와 금융권이 4·13 총선이 끝나자 인력 감축,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 자구책을 내놓으라며 조선업체들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 까닭이다.

협력업체는 조선산업의 ‘약한 고리’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경기변동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겠다는 명목으로 비정규직을 기하급수적으로 많이 썼다. 선박에 들어가는 블록을 조립하거나 탑재하고, 배관을 설치하는 일 등을 조각조각 떼내어 협력업체에 맡겼다.

그 결과 국내 대형 조선업체 9곳(조선해양플랜트협회 9개 회원사)의 정규직 인력은 3만4천~3만7천여 명으로 1990년 이후 큰 변동이 없었으나, 2009년 이후 사내하청 인력이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그림1 참조).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 규모는 2009년 정규직의 2배를 넘어선 뒤 2014년에는 3.5배까지 치솟았다. 2014년 사내하청 노동자만 12만3천 명에 육박했다. 불황이 되면 협력업체는 가장 먼저 잘려나갈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곡소리’가 협력업체 사장, 노동자 가릴 것 없이 가장 먼저 터져나오는 이유다.

<한겨레21>이 접촉한 거제 지역의 협력업체 대표들은 하나같이 원청인 대형 조선업체의 ‘단가 후려치기’ 등이 심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더 이상 벼랑 끝에서 버틸 수 없는 협력업체 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둘뿐이다. 이강수 대표처럼 세상을 등지거나, 빚더미에 파묻힌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빚 때문에 폐업도 못해

“빚이 1억을 넘어가니까 말이 억, 억이지 자포자기 상태가 됐다. 회사는 폐업했지만 4대 보험료랑 지방세 안 낸 것 등 빚만 20억원이 넘는다. 더 이상 대출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회사 문을 닫았다. 신용카드도 못 쓰고 월 20만원짜리 방에 산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사내협력업체를 운영하다가 그만둔 박종만(가명)씨는 “(협력업체 대표들) 너나 할 것 없이 힘든데 수십억원 빚을 어쩌지못해 다들 차마 회사 문을 못 닫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청이 주는 기성금으로는 직원들 임금만 겨우 줄 뿐 4대 보험료나 세금, 퇴직금 등은 은행 빚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부터 ‘확정도급제’를 시행 중이다. 협력업체와 미리 공사의 양과 액수 등을 협의해서 공정률에 따라 기성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협의’가 아니라 ‘강요’다. “100만원어치 일을 해놓고 70만원을 받기로 계약하는 거다. 선박 건조 과정에서도 일이 진행이 안 되니 여러 하청업체 비정규직들을 투입해서 사람이 사람한테 받혀 일을 못할 정도로 인력을 써놓고는 ‘다음에 잘 쳐주겠다’ 이러는 식이다.” 박씨는 “대우조선해양 임원이 뒷돈을 받고 사내협력업체 등록을 시켜줬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해당 임원이 사표를 쓴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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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조동명 사장은 “일을 암만 많이 하고 인력을 많이 투입해도 원청이 그냥 (하도급대금 산정 기준이 되는) 평균 단가의 47~53%만 주는데, 최저시급은 오르고 줘야 할 퇴직금은 쌓여가니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5월24일 당·정 협의에서 ‘단가 후려치기’ 등 조선업 원청의 하청에 대한 불공정거래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 맥락이다. 조선소 밖에 있는 사외협력업체들 사정은 더 나쁘다. 거제 ‘성내공단 협의회’의 이성신 회장은 “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인 사외협력업체와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 목소리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원청이 살찌고 협력사가 말라죽는 상황이면 몰라도, 지금은 조선산업 전반이 말라죽는 시기다. ‘단가 후려치기’가 아니라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예전보다 협력업체에 칼같이 기준을 적용하다보니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약한 고리’인 협력업체가 끊어져나가면, 그 아래 있는 ‘더 약한 고리’도 버틸 수가 없다. 조선소의 인력 구조는 원청-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진다. 사내협력업체가 1차 하청이라면, 사내협력업체에서 급한 물량이 나왔을 때 팀을 짜서 신속하게 작업에 들어가는 이른바 ‘물량팀’은 조선소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인력이다(그림2 참조).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의미로 ‘보따리’ ‘돌관’이라고도 불린다.

“느그들 나가도 일할 데 없잖아”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5월18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와 삼성중공업 정문 앞

“느그들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단다.”

폐업한 회사 관리 직원이 귀띔해줄 때만 해도 김진건(가명)씨는 ‘설마’ 하고 생각했다. 밀린 임금을 100% 달라고 했을 뿐이다. 조선소 밥을 먹은 지 22년이 됐지만, 처음 겪는 일이다. 김씨가 6년 동안 다녔던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업체 ㅅ사는 최근 폐업했다. 5월13일 폐업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걱정된 건 밀린 임금이었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2월엔 임금의 70%, 3월엔 50%밖에 못 받았다. 4월에는 그나마 한 푼도 못 받았다. “5월에 주겠다”는 사장 말만 믿고 버텨온 터였다. 폐업 소식을 듣자마자 김씨는 동료들과 함께 사장을 찾아가 따졌다. 사장과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관리자는 “걱정 말라. 원청이 기성금을 지급하면 임금부터 계좌로 지급하게 돼 있다”고 했다. 하지만 며칠 뒤 사장은 연락이 끊겼고, 약속한 임금은 들어오지 않았다.

김씨는 물량팀 소속이다. ㅅ사 일을 하지만 ㅅ사 직원은 아니다. 4대 보험(고용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아, 임금이 체불돼도 체당금을 받을 수 없다.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 비용을 절감하려는 회사와 월급을 더 챙기려는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러나 노동자는 사회안전망 포기라는 ‘덫’에 빠지게 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2015년 펴낸 ‘조선업종 물량팀 노동조건 실태 연구’를 보면 물량팀 소속 하청노동자 489명 가운데 4대 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61.9%뿐이었다. 대우조선해양만 해도 조선소에서 일하는 기능직 4만7천여 명 가운데 정규직은 1만3천여 명에 불과하다. 사내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 3만4천여 명인데, 이 중 상여금이나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상용직(본공)과 기간제 노동자가 1만5천여 명이다. 나머지 1만9천여 명이 물량팀이다. 해양플랜트 수주가 늘어나면서 물량팀은 최근 더 늘어났다.

ㅅ사를 인수한 다른 사내협력업체인 ㄷ사는 김씨 등에게 “체불임금 70%만 받고 일하겠다면 고용승계를 약속해주겠다”고 했다. 원청 관계자는 “느그들 나가도 일할 데 없으니 여기서 일하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김씨를 포함한 물량팀 25명은 체불임금 100% 지급을 요구했다. ㄷ사 쪽은 대우조선해양 출입증과 장비를 반납하면 임금을 입금해주겠다고 했다.

5월18일 출입증을 반납한 뒤 사무실에 갔더니 ㄷ사와 원청 관리자가 앉아서 ‘70%’와 ‘100%’ A4용지 2장을 내밀었다. 70% 쪽에 서명하고 주민등록번호와 계좌번호를 적으면 고용승계가 되고, 100% 쪽에 서명하면 임금만 받고 끝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김씨는 “많고 많은 게 협력업체인데 어딘들 못 가겠느냐”고 생각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김씨와 함께 물량팀에서 일했던 동료 한 명은 곧바로 삼성중공업 사내협력업체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서류 통과, 체력 테스트를 거쳐 5월24일 아침 출근길, 협력업체 관계자가 나오더니 “알 수 없는 이유로 출입증 발급이 안 된다”고 말했다. ‘알 수 없는 이유’란 ‘업체 대표 구금, 단체행동’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ㅅ사 사장에게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사무실 복도에서 밤을 새운 것을 두고 ‘구금’이라고 부르는 듯했다. ㅅ사 관리자가 말했던 ‘블랙리스트’가 이거였구나, 그제야 머리를 쳤다.

급하면 부르고 필요 없으면 자른다

5월18일 삼성중공업 정문 앞에 차려진 사내협력업체 노동자 정현우(가명)씨 장례식장. 정씨의 아내가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5월11일 세상을 떠난 정씨의 장례는 22일에야 치러졌다.

5월18일 삼성중공업 정문 앞에 차려진 사내협력업체 노동자 정현우(가명)씨 장례식장. 정씨의 아내가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5월11일 세상을 떠난 정씨의 장례는 22일에야 치러졌다.

삼성중공업 사내협력업체에서 일하는 신대중(가명)씨는 “요즘 우리끼리는 ‘이제 나가면 어디 갈 데가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앞으로 구조조정이나 임금 삭감이 진행되더라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에서 건조 중인 해양플랜트가 6월부터 차례로 선주에게 인도되기 시작하면, 거제시에서는 2017년 3월까지 2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고자의 대부분은 김진건씨 같은 물량팀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일 게다. “2009년 이후 망한 중소 조선업체에서 쏟아져나온 인력은 빅3의 해양플랜트로 블랙홀처럼 흡수됐지만, 이번에는 일자리를 잃는 비정규직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게 문제다.”(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이미 곳곳에서 협력업체 폐업, 통폐합과 임금 삭감 등이 진행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협의회는 최근 상여금 550% 중 150%를 삭감하기로 임원회의에서 결정했다. 협력업체 대표들은 6월 중 취업규칙 동의서를 받아 7월부터 새로 변경된 임금체계를 시행할 계획이다.

“협력업체 사장들도 원청한테 언젠가는 배신당하리란 불안감이 있다. 원청이 하청업체 하나 없애는 건 일도 아니니까. 본공(상용직)들 많이 데리고 있으면 나중에 체당금이나 퇴직금 압박이 있거든요. 물량팀은 임금 뜯겨도 일해요. 그러니까 사장들이 본공을 물량팀으로 전환시키고, 급할 때 물량팀 쓰다가 필요 없어지니 잘라내는 거죠.” 고성, 통영, 거제 등 중소형 조선소를 떠돌며 10년째 물량팀과 기간제 등으로 일해온 최호성(가명)씨의 말이다.

벼랑 끝에 놓인 사람들은 알고 있다. 가장 약한 고리부터 무너진다는 것을. 물량팀, 그다음은 사내협력업체 비정규직, 그다음은 협력업체 사장들, 마지막은 정규직 차례가 될 것이다.

5월18일 오후, 협력업체 대표들이 병원 장례식장에서 울분을 토하는 사이 ‘거리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삼성중공업 사내협력업체 노동자 정현우(37·가명)씨의 장례식장이다. 퇴근시간인 오후 5시가 넘자 삼성중공업 정문 앞 거리에는 웅장한 장송곡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정씨는 5월11일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선박 블록 용접 일을 하던 그는 취부반 반장이자 실력 있는 기능공이었다. 5살, 7살, 9살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했다. 정씨는 5월6~8일 황금연휴 기간 아이들과 거제도에 있는 캠핑장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일이 많은데 연휴 기간에 쉬었다’는 이유로 관리자의 질책을 받았다. 취부 1·2반이 통합되면서 자신이 물량팀 반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정씨는 바로 사직서를 썼다.

사직서를 회사에 낸 뒤 마지막 회식을 하고 집에 돌아온 정씨는 11일 새벽 죽음을 선택했다. “남편은 자존심이 강했다. 월 400시간 가까이 개처럼 일했는데 회사한테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유서도 남기지 않은 남편의 마음을 아내는 짐작만 할 뿐이다. 남편이 일했던 ㅅ사는 “직책을 강등시키거나 고용 불안으로 내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내는 남편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싶어, 거리로 나왔다고 했다.

벼랑 끝에 몰렸던 두 사람의 장례

이강수씨와 정현우씨의 연이은 죽음은 우연이었을까. 5월 거제에는 이들의 죽음을 둘러싼 온갖 소문이 흘러다녔다. 5월20일과 22일 각각 두 사람의 장례가 치러졌다. 거제의 ‘곡소리’는 다시 사그라들었다. 죽은 이는 말이 없다. 죽음의 곡절이 어찌 ‘조선업 구조조정’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겠는가. 하지만 거제에 있는 조선산업의 ‘약한 고리’인, 벼랑 끝에 선 또 다른 이강수, 또 다른 정현우는 묻고 있었다. 앞으로 제2, 제3의 죽음이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냐고.

거제(경남)=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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