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 앞의 한낮 기온은 나흘째 30도를 찍었다. 국회 정문 앞에는 한 뼘의 그늘도 없다. 우산을 펴서 따가운 햇볕을 가리는 게 고작이다. 열흘 넘는 단식 노숙농성에 지친 청춘들은 우산 밑에 몸을 구겨넣은 채 낮잠을 청한다.
지난 6월29일 오후 국회 앞 ‘최저임금 1만원 쟁취 알바들의 국회 단식투쟁’ 농성장에서 박정훈(31) 알바노조 위원장을 만났다. 박 위원장은 단식 11일째인 6월26일 구급차에 실려갔다. 낮은 맥박과 저혈당 탓이었다. 평소에도 말라서 53kg밖에 나가지 않던 몸무게는 47kg까지 내려갔다. 결국 그는 단식을 접어야 했다.
“알바에게 단식은 흔한 일”녹색병원에 입원해 있던 박 위원장은 이날 오전 퇴원해 국회로 달려왔다. 함께 단식하던 알바노조 조합원 이가현, 우람씨는 이날로 단식 13일째다. 최저임금위원회는 6월28일 밤에 열린 7차 전원회의에서도 2017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지 못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을, 경영계는 올해와 같은 시급 6030원 동결안을 내놨다. 최저임금위원회는 7월4~6일 전원회의를 다시 열기로 했다. 이대로라면 동료들의 단식 기간이 스무 날을 훌쩍 넘을 터다. 병원 침대에 누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퇴원을 앞당긴 이유다.
박정훈 위원장은 6월16일 최저임금 1만원 보장을 주장하며 1만 시간 단식에 들어갔다. 혼자 굶는다면 417일을 굶어야 한다. 한 끼 단식을 8시간으로 계산해 나온 숫자다. 하지만 417명이 굶는다면 1만 시간을 채우는 데 하루면 충분하다. 최저임금 1만원을 향한 모두의 마음이 그렇게 국회 앞에 모아지길 바랐다. 그는 단식에 들어가기 전날 이런 글을 남겼다. “어차피 시간당 6030원으로는 먹고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우리가 돈이 없어 굶는다면 세상은 우리를 동정할 것입니다. 우리가 권리와 존엄을 위해 굶는다면 세상은 우리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비장한 표현을 썼나.알바 노동자에게 ‘단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단식하니까 밥값이 안 들어서 좋다”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는 노동자입니다. 어차피 저녁은 폐기 음식으로 때우고 아침과 점심은 자느라 굶습니다”…. 알바 노동자들이 1만 시간 단식에 동참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긴 글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에게 단식은 흔한 일이다. 알바의 삶이 곧 단식투쟁이었던 셈이다.
최저임금을 이렇게 적게 주는 건 결국 굶으면서 일하라는 뜻이다. 한편으론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굶는 ‘불쌍한 애들’이라고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거부하고 싶었다. ‘세상이 우리를 두려워할 것’은 불법으로 몰고 가리란 뜻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우리의 단식이 주목받을 줄은 몰랐다.
좀 전에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농성장에 찾아와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봤다.요즘 단식농성이 워낙 잦아서, 큰 주목을 못 받으리라 각오하고 단식을 시작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10명도 넘게 다녀갔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왔고. 하태경 의원은 새누리당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라서 찾아왔단다. 최저임금 많이 인상되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되레 우리를 설득하러 왔더라. (웃음)
정치인보다 알바 노동자들의 반응이 더 놀랍다. 페이스북 등에 ‘#알바들은 1만 시간 단식 중’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서 올라오는 알바들의 사연이 너무나 구구절절하다.
2013년 알바연대가 처음 ‘최저임금 1만원’ 구호를 내걸 때만 해도 허무맹랑한 주장이라는 반응이 많았는데.격세지감이다. (웃음) 사실 노동계만 해도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노동계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10원 단위까지 근거를 제시해가며 최저임금 인상안을 내놓을 때였다. 알바 노동자 당사자나 시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특히 처음엔 알바하는 중·고등학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몇 년 새 최저임금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만 해도 찬성 쪽이 크게 늘었다.
최저임금위 아닌 국회로 간 까닭박정훈 위원장은 지난 1월 선출된 알바노조 2대 위원장이다. 2013년 알바연대를 처음 만들 때 집행위원장으로 일하다가, 양심적 병역거부로 1년6개월간 감옥생활을 하고 지난해 10월 출소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며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청와대 앞에서 고공농성을 해서 벌금형도 받았다. 대학교 때부터 투약 임상실험 알바, 가구·자동차부품 공장 알바 등을 경험했다. 알바로 대학 등록금을 벌었지만, 여전히 학자금 대출 800만원을 갚아야 한다. 단식하는 중에도 대출을 갚으라는 독촉 문자를 받았다. 알바 노동자를 절절히 대변할 수 있는 까닭이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아니라 국회 앞에서 단식하는 이유가 뭔가.첫째, 최저임금은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정부가 임명한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은 대폭 인상을 결정할 수 없다. 해마다 몇백원 찔끔 인상에 그치는 이유다. 둘째, 단지 최저임금 인상만이 아니라 관련 대책을 종합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국회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영세 자영업자가 힘들어진다고 하는데, 건물주 임대료 규제나 프랜차이즈 불공정 거래, 원가 후려치기 등의 문제가 함께 해결돼야 한다. 20대 국회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
여야 모두 지난 총선 때 ‘최저임금 인상’을 약속했지만 최저임금법 발의도 되지 않고 있는데.그래서 우리가 국회 앞으로 왔다. 아무도 최저임금법을 책임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농성장을 많이 찾아온 게 지금까지 우리가 얻어낸 유일한 성과다. 자신들이 뱉은 말이 있으니 립서비스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 평균임금의 50~60%를 최저임금 하한선으로 정하는 법률을 만들면, 최저임금을 해마다 자동으로 인상할 수 있다. 국회가 그런 결정을 해야 한다.
단식 이후 국회에서 진전된 움직임이 있었나.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면담했다. 그 뒤 더민주 환노위원들이 내년 최저임금이 최소 7천원 이상 되어야 하고, 최저임금위원회를 국회 산하 기구로 두고 공익위원을 국회가 추천하는 등 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다른 원내정당들과 공동으로 최저임금법 발의와 통과를 약속하면 2017년 최저임금 결정 문제도 자연스레 풀릴 수 있다. 여당이 안 되면 야 3당 당대표와 원내대표들이라도 결의해야 한다.
9728시간 단식 동참의 열망이후 계획은.
6월29일까지 250여 명이 9728시간 단식에 동참했다. 인증사진 찍어 페이스북에 해시태그를 남긴 사람들 기준으로 집계한 수다. 오는 일요일(7월3일)에 국회를 1박2일간 포위하는 집회를 계획 중이다. 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되거나, 원내정당들이 최저임금법 발의를 약속하지 않는 이상 단식을 그만둘 수 없다. 단식한 모든 조합원들이랑 같은 밥상에 앉아 행복하게, 맛있게 밥을 먹고 싶다. 최저임금이 충분히 인상돼서 가벼운 마음으로 숟가락을 뜰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 캠페인 기간 중 정기구독 신청하신 분들을 위해 한겨레21 기자들의 1:1 자소서 첨삭 외 다양한 혜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영상] “내란 세력 선동 맞서 민주주의 지키자”…20만 시민 다시 광장에
‘내란 옹호’ 영 김 미 하원의원에 “전광훈 목사와 관계 밝혀라”
경호처, ‘김건희 라인’ 지휘부로 체포 저지 나설 듯…“사병이냐” 내부 불만
청소년들도 국힘 해체 시위 “백골단 사태에 나치 친위대 떠올라”
‘적반하장’ 권성동 “한남동서 유혈 충돌하면 민주당 책임”
‘엄마가 무서웠던 엄마’의 육아 좌절…문제는 너무 높은 자기이상 [.txt]
연봉 지키려는 류희림, 직원과 대치…경찰 불러 4시간만에 ‘탈출’
김민전에 “잠자는 백골공주” 비판 확산…본회의장서 또 쿨쿨
윤석열 지지자들 “좌파에 다 넘어가” “반국가세력 역내란”
“제주항공 사고기 블랙박스, 충돌 4분 전부터 기록 저장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