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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따지지마 돌려보낼 거야

6년째 전쟁 중인 시리아 출신 28명, 인천공항에 6개월째 방치… 난민심사 거부하고 다른 ‘안전한 나라’로 가라는 법무부
등록 2016-05-25 06:34 수정 2020-05-02 19:28
시리아인 28명이 인천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다. 시리아는 6년째 전쟁 중이지만 법무부는 이들이 “난민일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했다. 법무부는 이들에게 ‘난민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을 내렸다. 난민인지 아닌지 심사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28명의 시리아인들은 이에 불복해 지난 2월 ‘불회부결정 취소’ 소송을 냈다. 5월20일 현재 1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은 재판 관련 서류 일부를 입수했다._ 편집자

전쟁의 땅, 시리아는 한국까지 약 8천km, 이만리다. 그 거리만큼 한국은 안전해 보였을까. 지금 인천 국제공항에 28명의 시리아인이 와 있다. 난민신청을 했지만 입국하지 못한 채 공항 안에서 살고 있다. 사람마다 적게는 넉 달, 많게는 여섯 달째 머물고 있다.

2011년 3월 터진 시리아 전쟁은 벌써 6년째다. 정부군과 수십 개의 반군, 이슬람국가(IS·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러시아·미국·터키군 등이 얽혀 지금도 싸우고 있다. 지난해 전쟁을 피해 지중해를 건너 유럽 땅을 밟은 난민은 100만 명이 넘었다. 시리아에서 유럽으로 가려면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한다. 그 와중에 3700여 명이 지중해에서 숨지거나 실종됐다.

바다에서 죽는 일을 피하는 길을 찾아낸 시리아인들이 있다. 전쟁이 터지기 전 시리아에선 한국 자동차와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친척, 가족, 지인들은 한국을 안전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반구금시설” 혹은 “감옥” [%%IMAGE1%%]

전쟁을 피해 한국으로 가려면 여러 나라를 돌아가야 했다. 시리아 북부 알레포 출신 무함마드(30대·가명)도 그랬다. 그는 고향에서 10여 년간 옷가게 재단사로 일했다. 2014년 눈앞에 전쟁이 닥쳤다. IS의 공습으로 고향은 폐허가 됐다. 부서진 집 더미 속에 그의 집도 있었다. 당장은 옆동네로 이사 갔지만 결국 고향을 등져야 했다. 그해 말 고향은 IS의 거점이 됐다.

첫 기착지는 주변 국가 레바논이었다. 2년을 머물렀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한국에 머물고 있던 고향 친구가 한국행을 도와주었다. 아프리카에 있는 한 나라를 거쳐 중국으로, 다시 인천공항으로 들어왔다. 지난해 12월 그는 한국 정부에 난민으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했다. “(시리아) 주변 나라는 안전하지 않고 유럽으로 가려면 바다를 건너야 해서 위험합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난민면접에서 그는 한국에 온 배경을 설명했다. 죽음을 피하려다보니 한국에 오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함마드는 5개월째 인천공항 안에서 살고 있다. 2층 송환대기실이 그의 거처다. 무함마드의 변론을 맡고 있는 공익법센터 어필 이일 변호사의 설명과 송환대기실 내부 사진 등을 종합해보면, 송환대기실 구조는 이렇다.

출입문을 열면 개방된 사무공간이 있고 안쪽에 여성용 방과 남성용 방이 하나씩 있다. 전체 넓이는 100여 평. 그곳에 입국을 거부당한 외국인 100여 명이 드나든다. 휴게실에 있을 법한 벤치나 나무 침상에서 난민들은 쉬거나 잠을 청한다. 자리가 모자라 바닥에서 자는 이들도 있다. 한 명당 녹색 담요 한 장씩 제공된다.

화장실 겸 샤워실이 있고 세탁기는 없다. 매 끼니는 치킨버거(또는 샌드위치) 하나와 콜라 한 캔이 제공된다. 길게는 6개월째 이런 식사를 하는 시리아인이 있다는 뜻이다. 일주일 한두 번 항공사 직원의 인솔을 따라 공항 내 환승구역을 산책할 수 있다.

이곳에 사는 무함마드를 포함한 시리아인 28명은 지난 3월14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앞으로 쓴 편지에서 그 생활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곳은 반구금시설이기에 저희는 매일 이곳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저희는 공항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이곳은 감옥 같기에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저 삶을 원합니다. 저희는 죽음을 원하지 않습니다.”

공항 송환대기실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2014년 4월에도 5개월 동안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 머문 난민이 있었다. 그는 법원에 송환대기실 ‘수용 해제’를 청구했다. 당시 인천지법 형사4부(재판장 조미옥)는 1심과 달리 ‘즉시 해제’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5개월가량 신체의 자유를 상당히 제한하고 있는 수용시설인 송환대기실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며 “귀국 의사를 표시하면 송환대기실을 나설 수 있으므로, 신체의 자유 제한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은 형식논리”라고 지적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그러나 법무부는 현재의 송환대기실은 강제 수용시설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입국 거부된 외국인들의 편의를 위해 개방된 대기 장소일 뿐이라는 것이다. 김광수 법무부 대변인은 “당시 판결은 폐쇄형이 문제라는 취지다. 지금은 개방형으로 하고 있다. 입국 거부된 외국인들은 환승 구역 내에서 각자 사정에 따라 호텔이나 숙소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일 변호사는 “난민신청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송환대기실은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갈 수 없는 사실상 구금시설”이라고 반박했다.

안전한 나라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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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대기실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인권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지난 2월19일 변호인단에 보낸 회신 공문을 통해 “한국 정부에 이들의 시리아 추방을 자제하도록 요청했고 송환대기실에 있는 동안 인간적으로 존중받는 처우(의료 조치에의 완전한 접근과 적절한 음식을 최소한 포함하여)를 보장하도록 요구했다”고 밝혔다.

희망이 있다면 기다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함마드를 포함한 시리아인 28명은 정식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다. 법무부는 이들에게 난민인정심사 불회부결정을 내렸다. “난민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정식 난민심사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법무부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불회부결정을 내렸다.

첫째, 이들이 ‘안전한 (제3의) 국가로부터 온 경우’(난민법 시행령 제5조 1항 4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터키, 레바논, 중국 등 이들이 과거에 체류했거나 경유한 나라들을 문제 삼았다.

법무부는 시리아인 28명에 대한 불회부결정 취소소송 1심 재판부에 제출한 서류에서 “과거 특정 국가에서 상당한 기간 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생활하면서 체류하였다면 안전한 국가로부터 온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정식 난민심사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다른 안전한 나라를 거쳤으면서도 단지 “더 좋은 조건에서 체류”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법무부는 정식 난민심사에 회부할 수 있는 기준으로서 “박해 위험으로부터 급박하게 탈출하여 대한민국에 곧바로 비호를 신청한 경우”를 제시했다.

시리아인 28명의 변호인단은 법무부의 논리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무부의 기준에 따라 어떤 국가도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한국에 들어오려면, 시리아에서 한국을 향하는 직항 노선만 이용해야 한다. 법무부의 잣대를 들이대자면, 시리아-한국 직항 노선으로 한국에 도착한 시리아인에게만 난민심사 기회를 줄 수 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난민법에서 난민 개념은 경유지나 체류지를 묻지 않고 박해의 충분한 공포 여부만을 따져 판단하기 때문에 법무부가 경유·체류지에 따라 심사를 불허할 재량은 없다”는 입장이다. 또 “난민신청에도 불구하고, 정식 심사 기회도 주지 않고 막연히 다른 나라로 가면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난민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며 한국이 비준한 난민협약과 고문방지협약상 강제송환금지원칙 위반이다”라고 주장했다.

은 5월19일 오전 전자우편과 전화를 통해 시리아인 28명에 대한 난민인정심사 불회부결정의 근거로서 ‘안전한 국가로부터 온 경우’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법무부에 질의했다. 법무부는 “5월20일 ‘세계인의 날’ 행사 준비로 소관 부서 직원들이 모두 바빠서 20일까지는 답변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일신상의 안위를 위하여 왔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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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인 28명의 주요 체류·경유지는 터키, 레바논, 중국 등이다. 이들 나라는 ‘안전한 국가’일까.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1월11일, 레바논 정부가 시리아 난민 100여 명을 시리아에 강제송환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지난 4월1일엔 터키와 시리아 국경지대 조사 결과를 발표해, 지난 1월 중순부터 터키 정부가 매일 시리아인 100명가량을 추방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탈북자들을 난민이 아닌 경제적 이주자로 간주해 강제송환을 강행하고 있다.

‘안전한 국가로부터 온 경우’ 난민심사 기회를 줄 수 없다는 법무부의 논리는, 지난해 12월 ‘재정착 난민제도’에 따라 타이 난민캠프에 머물던 버마(미얀마) 난민 22명을 입국하도록 한 사례와도 충돌한다고 변호인단은 지적한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재정착 난민제도’는 국제적·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별도로 시행되는 정책”으로서 경우가 다르다는 입장이다.

법무부는 불회부결정의 두 번째 사유로 ‘단순한 개인 안위를 위해 난민신청을 한 게 분명하다’는 점을 들었다. 28명의 시리아인이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인정을 받으려는 등 난민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난민법 시행령 제5조 1항 7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재판부에 제출한 서류에서 “(이들은) 단순히 일신상의 안위를 위하여 왔을 뿐 정치적 동기 등 5대 박해 사유와 연관될 수 있는 진술을 조금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이들을) 심사하는 것은 불필요한 심사를 반복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오히려 구제받아야 할 난민을 심사하는 데 필요한 심사 인력을 낭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난민인정 박해 사유를 상세히 밝히는 것은 법률적 조력을 받지 못한 난민의 의무가 아니라 난민심사관의 의무”이며 “법무부가 별다른 근거 없이 간략한 심사를 마친 후 박해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부족한 심사에 대해 스스로 면죄부를 주려 한다”고 지적했다. 또 “난민신청 사유가 정치적 견해의 표명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난민 정의에 부합하는지 등을 시리아 국가 정황을 토대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함마드의 경우를 보면, 난민신청 직후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그를 면접한 시간은 1시간40분에 불과했다.

28명이 난민 자격을 요청하면서 제기한 사유는 각각 다르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출입국관리사무소 난민면접에서 난민신청 사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정상적인 나라인 경우 당연히 군복무를 통해 나라를 지키는 것이 명예로울 것이나 현재의 시리아는 내전인 상태에서 동족 간에 총과 칼을 겨누는 아수라장인 관계로 저는 휘말리고 싶지 않아 시리아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박 대통령 G20 발언 전후
지난해 12월3일 터키 이즈미르의 한 공원에서 노숙하는 자밀(31·가명) 가족. 그들은 터키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과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정용일 기자

지난해 12월3일 터키 이즈미르의 한 공원에서 노숙하는 자밀(31·가명) 가족. 그들은 터키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과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정용일 기자

그 진정성이 의심된다면, 징집의 가능성, 참전에 대한 정치적 견해, 그 견해에 따른 박해 가능성 등을 더 따져봐야 했지만 이에 대한 추가 질문은 없었다. 이런 면접을 토대로 법무부는 정식 난민심사가 불필요하다고 결정했다.

법무부는 최근 난민심사 회부 요건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정식 난민심사 불회부결정 사유에 대해 정책적·인도적 차원에서 완화하여 운영해왔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의 테러 등 범죄 발생, 남용적 난민신청 증가 등의 사유로 인하여 법무부는 불회부결정 사유를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칙의 문제가 제기된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신혜인 공보관은 “난민신청 의사를 밝혔는데도 어떠한 확증도 없이 송환대기실에 방치하고 있는 것 자체가 원칙적으로 문제가 있다. 유엔난민기구 본부 차원에서도 상황을 파악하고 계속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의 입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 발언과도 배치된다. 박 대통령은 ‘대규모 난민 위기’를 각국이 나서서 함께 책임지자고 국제사회를 향해 제안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16일, 테러리즘과 난민 위기를 주제로 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업무만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리아 사태 장기화 등으로 인한 대규모 난민 위기는 국제 인도주의 체제 전반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난민 발생국은 물론 경유지와 최종 목적지 국가들의 부담과 책임을 국제사회가 함께 공유해야 할 것입니다. G20이 그러한 노력을 선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이 발언은 프랑스 파리 테러 3일 뒤에 나왔다. 테러를 경계하는 동시에 난민에 대한 인도적 책임을 짊어지자는 제안이자 다짐이었다. 또 “한국은 2012년에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하여 난민에게 필요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및 난민 수용국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여 난민 문제 해결에 기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난민심사라도 받게 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시리아인 28명 가운데 3명은 박 대통령의 발언 직전 인천공항에 도착했으나 심사를 거절당했다. 이후 두 달여 동안 25명의 시리아인이 추가로 도착했으나, 마찬가지 대접을 받았다.

괴리가 노정되는바

박 대통령이 발언에서 언급한 ‘아시아 최초의 난민법’은 2012년 2월에 제정됐다. 이 법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듬해인 2013년 7월부터 시행됐다. 박근혜 정부가 공포한 이 법률의 제정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출입국관리법에서 난민인정 절차를 규율하고 있으나, 난민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그 책임을 다하고 있지 못하고, 난민인정 절차의 신속성, 투명성, 공정성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는 등 많은 문제점이 노정되고 있는바, 난민인정 절차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난민협약 등 국제법과 국내법의 조화를 꾀하고, 인권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초석을 다지려는 것.”

대외적 선언과 대내적 현실의 괴리, 법 조문과 법 시행의 괴리, 그 사이에 시리아인 28명이 갇혀 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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