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연합만 없애면 2017년 대선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좌파들의 공격이다.”
‘배후세력’으로 민변 지목추선희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5월16일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에서 열린 안보강연회에서 이 단체를 둘러싼 최근 사태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추 총장은 이날 부적절한 자금 지원을 받은 바 없고 자신의 잠적설을 부인하는 등 어버이연합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방어하는 동시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진보단체를 상대로 한 공격에 나섰다. 공수를 전환한 것이다.
안보강연회는 공사를 위해 종묘공원 안쪽에 둘러친 펜스 사이에서 열렸다. 100명에 가까운 노인들은 플라스틱 의자를 그늘진 곳에 끌어다놓은 뒤 그 위에 몸을 걸쳤다. 더운 날씨였다. 이날 오후 2시쯤 되자 추 총장이 방송차량 위에 올랐다. 연설이 시작됐다. 민방위 훈련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렸지만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체크무늬 긴팔 남방을 입은 채 방송차량에 올라선 추 총장은 어버이연합의 ‘일당 집회’ 의혹 등이 불거진 배경에 민변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사태가 터질 때도 (나는) 1년 전에 예측을 했다. ‘민변에 의해서 작업을 해서 (보수단체 관련 문제가) 터질 테니까 그것을 조심해달라’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많은 보수단체들에게 이야기해줬지만 그 ××들이 말을 안 들었다. 아스팔트 (보수) 시민단체들이 이번에야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또 “‘좌파들이 전술·전략하에 움직일 것이라고 이야기해줬어도 너희들(보수단체)이 믿지 않았다. 여태까지 왜 방치했냐?’라고 (다른 보수단체들에게) 항의했다”라고 덧붙였다.
‘진보단체도 일당 집회’ 주장 반복하지만 이번 사건이 불거진 것은 주간지 이 어버이연합의 ‘일당 집회’ 의혹을 보도하면서부터다. 한 탈북단체 대표는 에 “추 총장이 탈북자들을 장악하려고 욕심을 부렸다. 그래서 충돌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계좌 내용이나 송금 내역 같은 것이 불거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버이연합 때문에 탈북자들이 일당 몇 푼 받고 동원되는 데모꾼이 되어버렸다. 추 총장이 탈북자 사회 전체 이미지에 먹칠한 것이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어버이연합에서 활동했던 한 전직 간부도 과의 통화에서 “탈북자 사이의 갈등과 여기에 개입하려 한 어버이연합 문제가 폭로전으로 이어지면서 이번 의혹이 불거졌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말했다.
추 총장의 말과 달리 어버이연합과 관련한 각종 의혹이 터져나오는 과정에 민변이 관련된 정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김지미 민변 사무차장은 “어버이연합 사건은 언론에서 먼저 취재하고 보도한 것 아닌가? 민변이 관여한 부분은 전혀 없다. 이번 사건 관련자들을 상대로 법률 상담을 하거나 변호 등에 참여한 사실도 없다. 어버이연합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추 총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5억2천여만원의 돈을 어버이연합에 지원한 사건을 검찰에 수사 의뢰한 경실련도 문제 삼았다. 그는 이날 강연회에서 “경실련이 회비는 0원이면서 불법모금을 해서 지금까지 단체를 운영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삼수 경실련 정치·사법팀장은 “연말정산을 위해서 회비를 기부금으로 처리한 부분을 문제 삼는 것으로 안다. 회비 없이 운영됐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다”라고 밝혔다.
추 총장은 이날 강연회에서 “진보단체도 일당 집회를 한다”고 맞불을 놓았다. 그는 “진보단체 일당 5만원 사건 저희가 이야기했다. (기자들에게) 증거자료를 줘도 안 믿는다. 그런데 이달(5월) 안에 진보단체 일당 5만원 사건을 낱낱이 언론에 공개하고 기자회견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증인을 모두 확보했다고 했지만 관련 근거는 공개하지 않았다.
과거에도 어버이연합 등은 진보단체가 집회에 일당을 주고 사람들을 동원한다는 주장을 해왔지만 송금 내역이나 관련자 증언 등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한 적 없었다. 이날 추 총장은 어버이연합 의혹이 좌파단체의 공격에서 비롯됐다고 규정하고 여러 진보단체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이날 추 총장의 발언은 명확한 근거가 없거나 일방적 주장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추 총장의 확신에 찬 연설에 강연회에 참석한 노인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전경련 “사회문제 돼서 불편하다”추 총장은 여러 의혹이 불거진 뒤에도 어버이연합 사무실에 하루 한 번꼴로 들르며 회원 대상 강연회에도 참석하는 등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어버이연합의 앞길이 녹록해 보이지는 않는다. 국회의 진상 규명 활동과 검찰 수사 등 ‘악재’가 추 총장을 기다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어버이연합 등 불법자금지원 의혹규명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팀은 5월19일 어버이연합에 수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난 전경련을 찾아 진상조사에 나섰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전경련 사무실에는 TF팀 위원장인 이춘석 의원과 간사인 박범계 의원을 비롯해 진선미 의원, 김병기·박주민·이재정·표창원·이철희 당선인 등이 방문했다. 전경련 쪽에서는 이승철 상근부회장이 나왔다.
이 자리에서 전경련은 “1년에 170억원 규모의 사회협력회계가 있어 여러 사회단체에 지원한다”는 포괄적 답변만 했을 뿐 어버이연합 지원 경위 등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TF팀이 계속 어버이연합 자금 지원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자 이승철 상근부회장은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이 일이 사회문제가 돼서 불편하다”라는 심경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TF팀이 제출을 요구한 관련 자료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제20대 국회가 개원한 뒤에도 전경련이 계속 모르쇠로 일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박범계 의원은 과의 통화에서 “전경련은 어버이연합과 관련한 최소한의 배경설명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회가 개원한 뒤에는 달라질 것이다. 이 사건에 관심 있는 다른 야당들과 힘을 합쳐서 본격적인 진상 규명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5월19일 상임위원회별로 국정 현안과 관련한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 통과로 진상 규명 활동은 더 힘을 얻을 전망이다. 과거에는 여야가 국정조사에 합의한 뒤 청문회를 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으로 여야 합의 없이 각 상임위원회 의결만으로 청문회 개최가 가능해졌다. 야당이 청문회를 열고 전경련과 어버이연합 주요 관계자 등을 증인과 참고인으로 불러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과정이 훨씬 쉬워진 것이다.
검찰 수사도 곧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5월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어버이연합과 관련해) 검찰에서 본격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고받았다”며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수사가) 진행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계속 불거지는 보수단체 자금 의혹앞서 민주노총은 어버이연합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심우정)에서 수사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양쪽(민주노총 등과 어버이연합 등)에서 고소·고발장이 10여 건 접수됐다. 최근에야 고소·고발장 제출이 마무리된 것으로 보여 조만간 수사를 진행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부적절한 자금 지원, 국가기관 연루 등 보수단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추가로 불거졌다.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보수단체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다. 올해 1월 김덕근 밝고힘찬나라운동본부(운동본부) 감사는 박정수 애국단체총협의회(애총협) 집행위원장을 횡령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박 위원장은 2010년 4월 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이던 시절 청년들의 해외 연수 명목으로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1억원의 후원을 받았다. 하지만 이 돈은 20일 만에 박 위원장이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던 다른 단체인 애총협으로 넘어갔다. 박 위원장은 이 문제가 불거지자 후원금을 ‘천안함 폭침 도발 규탄 국민궐기대회’ 행사 비용으로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김 감사는 “운동본부 명의로 후원금을 받은 뒤 아무런 절차도 거치지 않고 애총협으로 보낸 것은 횡령이다. 또 후원금을 원래 목적이 아닌 다른 곳에 사용한 것은 사기에 해당한다. 횡령 의혹이 불거진 애총협은 해산해야 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LH가 박 위원장의 후원 요청만으로 억대 자금을 전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배후가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후원금 지원에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의 개입 여부가 의심된다는 의미다.
박 위원장은 과의 통화에서 횡령 의혹과 관련한 질문에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답변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다. LH의 보수단체 후원금 지급에 청와대나 국정원을 비롯한 권력기관이 연루된 정황이 불거진다면 이 사건은 어버이연합 의혹과 맞물려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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