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일 찾은 캄보디아 프놈펜의 기온은 섭씨 40℃가 넘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허파가 더운 숨을 몰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 느껴졌다. 서둘러 ‘임펙트허브 프놈펜’ 사무실 안으로 숨어들었다.
임팩트허브는 사회적 기업의 설립과 운영을 돕는 중간지원조직이다. 시원하게 트인 120m² 넓이의 사무실에서 이곳의 공동설립자인 알베르토 크레모네시(34)를 만났다. 알베르토에게 전해들은 캄보디아 사회적 기업의 상황은 한여름을 지나는 바깥 날씨와 같았다. 달콤한 과일을 맺기 위해서는 더 뜨거운 더위를 견뎌야 한다.
30명 모두 모이는 건 3개월에 한 번뿐“캄보디아에서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정의 자체가 아직 없어요. 사회적 기업을 법적으로 등록할 수 있는 방법도 없죠.” 사무실 안쪽에 마련된 작은 회의실에서 알베르토가 손짓을 섞어가며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조직은 2015년 설립된 임팩트허브가 거의 유일하다고 그는 말했다.
토양이 척박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캄보디아 사회적 기업의 전체 모임 역할을 하는 ‘소셜엔터프라이즈 캄보디아’에는 200여 개의 사회적 기업이 가입해 있다. 소셜엔터프라이즈 역시 알베르토가 공동설립자로 나선 단체다.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이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돈 문제다. “재정이 가장 큰 문제예요. 캄보디아에선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으니까 설립 자금을 모으는 것이 너무 어려워요.” 알베르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 이날 임팩트허브 사무실에서 만난 사회적 기업 대표들은 사무실에서 이뤄질 법한 일을 사이버공간에서 해결했다. 속락(34)은 기업과 학생을 상대로 환경 교육을 하는 ‘캄보디아 그린윌’을 2014년 8월에 세웠다. 사회적 기업을 설립한 지 2년 가까이 지났고 함께하는 직원은 5명에서 30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아직 사무실은 없다. “페이스북과 전자우편으로 서로 소통하고, 통화할 때는 스카이프를 써요. 30명이 모두 모이는 것은 3개월에 한 번 정도 회의할 때뿐이에요.”
속락이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가진 것은 기자로 일하면서부터다. 주간지와 캄보디아 주요 일간지 등에서 근무한 그는 2012년 벌목 현장을 취재하면서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벌목하니까 물 부족 문제가 생기고, 농민들이 작물을 심지 못하고 날씨가 더워지고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는 일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더라고요. 환경문제가 바로 우리 문제라는 것을 느꼈어요.” 속락이 신문사를 그만둔 것은 올해 초다. 그린윌을 설립한 2014년 8월부터 1년6개월 넘게 기자와 사회적 기업 활동을 동시에 했다. 사무실에 붙잡혀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5년 6월 ‘영 에코 앰버서더스’를 설립한 소피악트라 친(24) 역시 사무실 없이 활동하고 있다. 환경보호 프로젝트를 팀별로 나눠 실행하는 앰버서더스에는 50여 명이 활동한다. “전자우편과 전화로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요. 교육이나 행사 장소는 따로 빌리면 되고 회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면 충분해요.” 소피악트라 역시 유럽계 투자 유치 회사에서 일하며 앰버서더스를 꾸려가고 있다. “바쁘긴 하지만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 괜찮아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임팩트허브는 이처럼 사무실이 별도로 없어 모임 공간이 필요한 사회적 기업에 공간을 빌려주기도 한다.
‘공유 사무실’이라는 대안도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 위치한 ‘루마 사누르’는 사회적 기업들의 협업 공간이다. 여행사가 자리했던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여러 기업이 나눠 쓴다. 발리에서 나는 원두로 커피를 만들어 파는 카페 ‘코피 쿨터’, 발리 지역의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를 발굴해 판매 공간을 제공하는 디자인 편집숍 ‘토코’, 그리고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비어 가든’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루마 사누르 2층에는 2015년 3월 문을 연 ‘쿰풀 코워킹스페이스’가 자리하고 있다. 코워킹스페이스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이 적은 임대료를 내고 함께 사용하는 공간을 뜻한다. 4월25일 오전에 이곳을 찾았는데, 편안한 옷차림을 한 이들이 출근하듯 노트북 하나 달랑 들고 쿰풀로 모여들었다.
쿰풀을 운영하는 파예 알룬드(35)는 작은 목소리로 사무실 곳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소개했다. “저기는 유럽에서 온 엑셀 전문가, 저쪽은 일러스트를 그리는 친구예요.” 쿰풀에 머무는 이들은 대부분 한 달에 90만루피아(약 8만원)를 내고 회원권을 끊은 뒤 사무실을 함께 사용한다. 한 달 평균 50~60명의 회원이 이곳에서 일한다. 24시간 운영되므로 야근, 특근, 휴일근무도 가능하다. 물론 자기 의지대로.
발리, ‘디지털 노마드’들의 섬발리는 사무실이 없어도 일할 수 있는 사람들, ‘디지털 노마드’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대도시에 비해 물가가 싸고 번잡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다양한 국적과 직업을 가진 이들이 발리 곳곳에 위치한 코워킹스페이스에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서로의 일에 영향을 주며 협업한다. 겉보기엔 평범한 카페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산적 에너지가 끊임없이 교류되는 공간이다.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회사가 사회적 기업이라면 발리를 더 다양한 공간으로 만드는 쿰풀도 하나의 사회적 기업이 아닐까요?” 파예가 생각하는 쿰풀의 모습이다.
발리 청년들은 대부분 관광업에 종사한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사람도 결국에는 호텔 직원으로 일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사진가, 일러스트레이터, 천문학자, 펀드매니저, 비영리기구에서 일하는 사람, 프로그래머, 환경보호 컨설턴트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발리 청년들이) 쿰풀에서 ‘이렇게 해서 돈을 벌 수도 있구나’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좋겠어요.” 나눠 쓰는 공간에서 상상력이 자라고 있었다.
프놈펜(캄보디아)=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발리(인도네시아)=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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