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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 학교 사라져요?”

마주 보고 선 두 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7배 차이 나는 이유… 영구임대아파트 주민 차별의 민낯
등록 2016-05-19 14:15 수정 2020-05-03 04:28
대전 서구 월평동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내려다본 A초등학교.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주로 가는 A초등학교 뒤편에 민간분양아파트 아이들이 주로 가는 B초등학교가 바로 보인다. 두 학교 정문 사이의 거리는 200여m에 불과하다. 김진수 기자

대전 서구 월평동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내려다본 A초등학교.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주로 가는 A초등학교 뒤편에 민간분양아파트 아이들이 주로 가는 B초등학교가 바로 보인다. 두 학교 정문 사이의 거리는 200여m에 불과하다. 김진수 기자

대전광역시 서구 월평동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차곡차곡 들어서 있다. 월평동은 1988년부터 노태우 대통령이 ‘200만 호 주택 건설’ 공약의 일환으로 조성한 신도시이다. 공군훈련소와 군사비행장 등으로 활용되던 허허벌판은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며 도시로 탈바꿈했다. 월평동은 이후 행정 중심지로 빠르게 발전했다. 정부는 이곳에 도시 영세민이 거주할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도 건설했다.

한쪽은 심각한 과소, 한쪽은 과밀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많은 월평동에는 초등학교도 많다. 한 블록 건너 초등학교가 있고, 고등학교를 설립할 예정이던 곳에 초등학교를 짓기도 했다. 그 결과 스무 발자국쯤 떨어진 거리에 2개의 초등학교가 마주하는 경우도 생겼다.

마주 보는 학교는 월평동의 A초등학교와 B초등학교다. 두 학교의 정문 사이 거리는 불과 200여m다. 공립인 두 초등학교는 건물 규모가 비슷하고, 개교 시기도 1994년(A초등학교)과 1993년(B초등학교)으로 1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다만 등굣길 풍경은 확연히 다르다. A초등학교로는 간간이 몇몇 학생의 발걸음만 이어진다. B초등학교로는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2016년 4월 현재, A초등학교 전교생은 162명, B초등학교는 1194명이다. 학생 수가 적은 A초등학교에선 적정 인원을 맞추려고 3개 학년이 모여 함께 체험학습을 간다. 학생 수가 많은 B초등학교는 오전과 오후로 나눠 체육대회를 연다.

A초등학교는 학급 수도 적다. 2학년을 제외한 모든 학년당 학급은 2개다. 2학년은 한 학급뿐이다. 학급당 학생 수도 적다. 2015년을 기준으로 하면, A초등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12.9명이다. 반면 B초등학교는 27.4명이다. 교육부 자료(2015년 기준)를 보면, 국내 초등학교의 학급당 평균 학생 수는 22.6명이다. 한쪽은 심각한 과소 학급, 다른 한쪽은 과밀 학급인 것이다.

비밀은 통학구역 배정에 있다. 초등학교 배정은 실거주지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A초등학교로 배정받는 통학구역에는 민간분양아파트와 영구임대아파트가 함께 있다. 반면 스무 발자국 떨어진 B초등학교의 통학구역에는 민간분양아파트만 있다. 월평동의 한 공인중개업자는 “A초등학교는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없다. (A 초등학교 통학구역에 있는) 임대아파트 아이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해진 통학구역을 피해 위장전입 등 편법을 써서라도 B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려는 부모들이 속속 생겼다.

“(B초등학교 통학구역에 속한) ㄴ아파트나 ㅎ아파트는 소득 수준이 높다. 있는 집에 사는 자녀들이 온다. A초등학교에는 주로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온다. 결손가정이 많다고 학부모들이 기피한다.” 월평동 주민이자 대전 지역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 김태형(가명)씨의 말이다. “(A초등학교 통학구역에 사는) 부모들이 위장전입이나 학구 위반 등의 편법을 동원해 B초등학교로 자녀를 보낸다. 아이들을 부모의 학력 수준이나 경제력에 따라 갈라놓는 것이다. 두 학교의 양극화는 오래된 문제인데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두 학교의 학생 수가 처음부터 이렇게 벌어졌던 것은 아니다. 1999년 A초등학교 전교생은 1874명, B초등학교는 2913명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A초등학교의 학생 수 감소폭은 이상하게 가팔랐다. 해마다 평균 100명 정도의 학생이 줄었다(하단 그래프 참조).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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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만 떠넘기고 있는 교육청과 구청

월평동에서는 원칙대로 통학구역 배정을 따르는 게 오히려 ‘유별난’ 일로 비친다. A초등학교 학부모 이영숙(가명)씨는 자녀의 유치원 졸업을 앞두고 어느 학교로 입학할 것인지 묻는 엄마들에게 “A초등학교로 간다”고 답했다. 그러자 주변 엄마들은 하나같이 “왜요?”라고 반문했다. 이씨는 “무척 당황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입학 직후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하고 전학 가는 학부모들도 있다. 이씨는 “(1학년) 정원이 많아야 35명 정도예요. 그러면 두 학급이 편성되는데, 입학식에 가면 첫 날부터 벌써 몇 명이 빠져 있어요. 이사를 가거나 전학을 보내는 거죠”라며 착잡해했다.

학생 수가 급감하자 교장 선생님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몇 년 전, A초등학교에 근무했던 한 교장은 입학식이 있는 3월이 되기 전에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우리 학교에 자녀를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교장과 동행했던 선생님이 “솔직히 교사로서 자존심이 상했다”고 털어놓는 것을 동료 교사 최지연(가명)씨는 들었다. 선생님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해 A초등학교 학생 수는 또 줄어들었다.

A초등학교에 근무했던 교사 최지연씨는 학생들이 하는 말도 들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임대아파트 애들이랑 같이 보내기 싫어서 (우리 학교) 안 보내는 거래”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왜 이웃집에 사는 친구가 다른 학교에 다니는지,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왜 어느 날 갑자기 옆 학교로 전학을 갔는지 아이들도 고학년쯤 되면 스스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A초등학교는 요즘 학교가 통폐합된다는 소문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학부모 이영숙씨는 “존폐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니까 다니는 아이들도 상처를 많이 받는다. ‘엄마, 학교가 없어진대’ ‘우리 학교 진짜 사라져?’ 집에 와서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다. 아이들한테 못할 짓이다”라고 말했다. 이씨조차 전학을 가야 하는 게 아닌지 한동안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렇다고 다른 학부모들을 무턱대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인원이 적은 A초등학교보다는 B초등학교에 가서 많은 친구를 사귀게 해주고 싶어 하는 부모도 많다고 이씨는 전했다. A초등학교와 B초등학교 학부모들은 같은 부모로서 서로를 ‘교육 가치관의 차이’로 이해하고 있었다. 최지연 교사도 “몇몇 학부모의 이기심을 손가락질하기보다는 교육청의 잘못된 행정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전시 교육 당국은 대책 마련에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전시 교육청 관계자는 A초등학교 학생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 “인구 감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의 평균연령이 높아지면서 초등학생 자녀 수가 줄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벌어진 현상이라는 것이다.

위장전입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전시 교육청 관계자는 “(통학구역 재조정이나 위장전입 단속 등은) 모두 불가능하다. 혼란이 크기 때문에 통학구역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위장전입 단속 권한은 주민등록법상 구청과 동사무소에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전시 서구청 관계자는 “주민등록법은 실거주지에 따라 당사자가 신고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위장전입한 주소지의) 세대주 확인이 있으면 임의로 (위장전입자의) 거주불명 처리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국이 서로 책임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인근 중학교로 번져가는 차별

교육부의 이같은 태도는 5~6년 전 약속을 뒤집는 것이기도 하다. 2010년 당시 대전서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은 B초등학교로 옮겨가는 통학구역 위반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제192회 대전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인정한 바 있다. 2011년 ‘제194회 대전시의회 교육위원회’ 회의록에도 비슷한 입장이 드러나 있다. 당시 기록을 보면, “A초등학교와 B초등학교의 (양극화) 현상을 파악하고 있느냐”는 시 교육위원의 질문에 대전시 교육청 행정관리국장이 “영세민 아파트가 있는 지역과 인접한 학교는 그런 현상이 있다”며 이른 시일 안에 조처를 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통학구역 조정이 불가능하다는 설명도 이율배반적이다. 3년 전, 대전시 교육청은 월평동 ㄴ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을 수용해, 아파트 단지 전체의 변경을 허락해줬다. 기존 통학구역에 있는 C초등학교가 8차선 대로 건너편에 있어 등·하교시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교육청은 ㄴ아파트의 통학구역을 기존 C초등학교에서 이미 학생이 넘치던 B초등학교로 조정해줬다. ㄴ아파트는 월평동에서 시세가 높기로 유명한 단지다.

이 과정에 대해 최지연 교사는 또 다른 문제점을 지적했다. ㄴ아파트 통학구역 변경이 일종의 ‘나쁜 전례’가 되어, A초등학교를 마뜩지 않게 여겼던 인근 지역 학부모들까지 “왜 ㄴ아파트만 되고 우리는 (통학구역 변경이) 안 되냐”고 항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A초등학교를 향한 불안한 시선은 인근 중학교까지 번지고 있다. A초등학교 바로 옆에 E중학교가 있다. A초등학교 졸업생 대부분이 E중학교로 진학한다. E중학교에 근무 중인 교사 김수영(가명)씨는 “건너편 F중학교를 (학부모들이)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E중학교와 F중학교는 30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2016년 기준으로 E중학교 전교생은 395명, F중학교는 이보다 3배 가까이 많은 973명이다.

학교 안은 참 행복한데…

학교 바깥 어른들의 시선은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지만 학교 안 아이들은 서로 편을 가르는 일도, 얕잡아보는 일도 없다고 한다. A초등학교 학부모 이영숙씨는 “학교 안은 참 행복하다.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다니는 아이들한테는 행복한 학교이고, 밖에서 봤을 때는 우울한 학교이고….”

교육 당국이 민감한 사안이라고 손 놓고 있는 동안 엉킨 매듭은 점점 더 꼬여가고 있다. A초등학교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줄 올바른 결정은 어른들의 몫이다.

대전=한채민 교육연수생 miniihan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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