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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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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안전이 보이지 않는다

위험의 최전선에 있는 소방공무원의 열악한 인권 실태… 근무환경 규제·보장을 ‘남의 일’ 취급하는 소방공무원법
등록 2016-01-01 18:51 수정 2020-05-03 04:28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이라는 단어가 무섭게 가슴으로 들어왔다. 이제 사고가 터졌을 때, 누군가 나를 구조하러 올 것이라는 말을 믿으면 안 되는 것인가. 침몰 당시 방송으로 나왔다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어떻게든 알아서 각자 살아남으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제 이 사회가 위기에 처한 나를 보호해줄 거라는 믿음은 버려야 한다는 것인가.
그러나 시스템을 무시하고 각자도생을 생각하는 사회는 결국 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안전에 대한 규칙은 상호 간의 약속이다. 배는 과적하지 않는다는, 위기 상황에 선원은 적절히 대응하고 해경은 탑승객을 구조할 것이라는 약속이다. 우리는 그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 속에 배를 타는 것이다. 그것은 횡단보도 앞에서 빨간불일 때는 기다리고 초록불일 때 길을 건넌다는 약속 같은 것이다. 그래서 지하철이 갑자기 섰을 때, 배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들었다면 우리는 그 말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각자도생의 사회

소방관들이 2015년 6월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반 노동자의 근무환경은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보장받지만, 소방공무원의 근무환경에 대한 규제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용일 기자

소방관들이 2015년 6월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반 노동자의 근무환경은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보장받지만, 소방공무원의 근무환경에 대한 규제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용일 기자

하지만 그 말을 신뢰했다는 이유로 바닷물에 잠겼던 생명들이 있었고, 더 이상 사람들은 한국 사회의 안전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 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변화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한 변화는 체육관에 모여서 안전 인식을 고양시키는 대회를 하며 진행하는 캠페인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즈음에, 소방공무원에 대한 뉴스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인력 부족에 대한 이야기부터 화재 진압 장갑을 인터넷에서 사비로 구입한 이야기까지. 소방공무원들의 근무환경이 턱없이 열악하다는 신문기사들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었다. 국민이 안전하기 위해서는 안전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충분한 인력으로 적절한 장비를 가지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안전 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그들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소방공무원의 근무환경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대부분 감정에 호소하는 사례들을 중심으로 한 단편적인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들은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분노하게 할 수는 있지만, 향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근거로 사용되기는 어려워 보였다.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더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연구실의 학생들과 함께 관련 보고서와 논문을 하나씩 읽고 검토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연구를 시작할지 모른 채 막연히 준비하던 어느 날,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 과제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공지가 떴다. 감사하게도 내게 책임연구원으로 연구를 진행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후 강원도, 충청도를 돌아다니며 지방직 소방공무원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알게 되었다. 그들 모두는 자신이 하는 일이 위험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화재 진압이나 구조 현장이, 응급환자를 119 구급차에 태우고 이송하는 구급 현장이 안전할 리 없었다. 그들과 함께 앉아서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들 모두는 위험에 처했던 아슬아슬한 순간을 다들 몇 개씩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출동해서 현장에 도착하면 때때로 상황이 이미 정리되었던 경우도, 장난전화로 인해 출동한 경우도,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우울증·불면증·전신 피로·폭력…

그런 긴장 속에서 부족한 인력으로 일하는 소방공무원들은 많이 아팠다. 설문에 참여했던 8500명 소방공무원 중 39.5%는 추간판 탈출증을 앓은 적이 있었고, 20.8%는 지난 일주일 동안 우울증상을 경험했다. 교대근무가 일상인 이들의 43.2%가 불면증 또는 수면장애를 겪은 적이 있었고, 절반이 넘는 소방공무원들이 전신 피로를 호소하고 있었다.

소방공무원들을 아프게 하는 것은 위험한 현장과 고된 업무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양한 폭력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8.2%가 지난 3개월 동안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 업무 중 일반인으로부터 ‘얻어맞는’ 일이 발생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소속 기관에 그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보고해도 후속 조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설문조사에서 일반인으로부터 경험한 신체적 폭력을 소속 기관에 보고했던 123명 중에서 절반 미만 수준인 57명만이 기관 차원의 후속 조치가 있었다고 응답했다. 후속 조치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 처벌은 없다고 했다. 특히 지방의 경우, 폭행을 가한 일반인과 소방공무원이 한 다리만 건너면 서로 다 아는 사이기 때문에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정리된다는 것이다. 여성 소방공무원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일반인으로부터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말한 97명의 여성 소방공무원 중 4.1%(4명)만이 관서에 보고를 했고, 이 가운데 관서의 후속 조치가 있었던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일반 노동자의 근무환경은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서 규제된다.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하는 그 법에 따라 작업장에서 벤젠과 같은 발암물질 노출 여부를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하고, 그 규정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사업주는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소방공무원의 근무환경에 대한 규제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소방공무원의 근무환경을 다루는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기본법’은 소방공무원의 안전이 아닌 소방서비스의 질 향상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며, 관련된 내용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고용주인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근무환경에 대한 규제가 없으니, 근무환경이 얼마만큼 위험한지에 대한 정량적 연구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소방공무원들은 화재 현장에서 여러 발암물질에 노출되지만, 그 노출이 제대로 측정된 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방공무원에게서 발생한 폐암을 비롯한 만성병을 공무상 요양으로 치료받기는 매우 힘들다.

8명 중 7명 공무상 요양 신청 안 해
119 구조요원들이 2015년 6월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병원 응급실로 ‘메르스’ 환자를 이송하는 모습.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구급대원의 35%가 메르스 의심 환자를 이송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119 구조요원들이 2015년 6월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병원 응급실로 ‘메르스’ 환자를 이송하는 모습.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구급대원의 35%가 메르스 의심 환자를 이송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그러다보니 2014년 기준으로 공무상 요양으로 승인된 432건의 공상 중 31건을 제외한 401건은 암·당뇨 등과 같은 만성질환이 아닌, 일하다 다쳐서 직업연관성이 눈에 명확한 사고성 재해였다. 그러나 사고성 재해조차 모두 공무상 요양으로 치료받는 것은 아니었다. 인권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업무 중 부상으로 한정했음에도 일하다 다친 소방공무원 8명 중 7명은 공무상 요양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혹시라도 부상으로 인해 ‘기관의 행정 평가상 불이익이 있을까봐’라고 답한 경우가 가장 흔했다.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수행되는 소방 업무는 본질적으로 부상의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근무환경을 최대한 안전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일하다 다쳤을 때나 긴급하게 출동하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도 소방공무원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것 역시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소방공무원들은 점점 자신의 업무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시민이다.

연구하는 내내 만난 소방공무원들은 모두 답답해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불을 끄고 구급차를 운전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전달될 통로가 없었다. 국제노동기구가 권고했듯 노동조합 결성이 1차적 대안일 텐데, 2008년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행정서비스의 질이 크게 저하되는 등 공익을 크게 해칠 우려가 있고, 치안 공백의 발생으로 시민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으며, 상명하복을 본질로 하는 특수직 공무원의 위계질서를 문란케 할 우려”가 있다며, 소방공무원들의 노동조합 결성을 불허했다.

현장 소방공무원들은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자신들이 보호해야 하는 시민들을 위해 세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소방공무원 업무의 특성상 당연하게도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문제점과 해결책 모두를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런 현장 소방공무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변화가 진정한 변화일 수 있겠는가.

사고가 나기 전까지 안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2015년 5월부터 8월까지 한국은 온통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시끄러웠다.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환자들을 치료했다.

그런데 우리가 한 번도 묻지 않은 질문이 있다. 그 많은 메르스 의심 환자들은 어떻게 병원에 갔을까? 대부분은 119 구급대원이 운전하는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갔다. 인권위 설문에 응답한 구급대원의 35%가 지난 3개월 동안 메르스 의심 환자를 이송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2015년 한 해 그들이 감수해야 했던 시간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특수직 공무원 노조 결성도 안 돼

안전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고, 소방공무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한국 사회의 안전을 최전선에서 묵묵히 지켜왔다.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그들이 피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일하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은 국민인 우리의 몫 아닐까.

김승섭 고려대 교수·보건정책관리학부

*소방공무원에 대한 연구를 담은 최종보고서는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http://bit.ly/1O5eb0D)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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