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망가지고 있다. 주범은 온실가스다. 지난해 유엔 기후변화국제협의체(IPCC) 보고서는 ‘지금 추세로 2100년께가 되면 지구 평균 기온이 최대 4.8℃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한국도 공범이다.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세계지도를 다시 그려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7번째 큰 나라다. 그러나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비중은 전체 1차 에너지 사용량 대비 2%가 채 되지 않는다.
영화 , 현실이 될 수도
해법은 없을까? 글로벌 비영리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물었다. 11월24일 서울 용산구 그린피스 사무실에서 만난 게리 쿡 그린피스 정보·기술(IT) 분야 선임분석가는 “많은 국가와 기업이 하늘을 끝도 없는 쓰레기통으로 생각한다. 여기에 이산화탄소를 마구 버리고 있다. 영화 에 나오는,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 종말의 위기가 영화적 상상력에서만 비롯한 게 아니다. 80년 정도 뒤에 현실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석탄과 원자력에 의존하는 전력 생산 방식을 바꿔야 한다. 현재 일부 국가가 탄소 배출에 벌금을 매기고 있다. 더 확대돼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탄소 자체를 배출하지 않는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1월29일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열린 ‘2015 글로벌 기후 행진’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70여 개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전세계 시민 수십만 명이 동참했다. 이들은 11월30일 시작된 제21차 프랑스 파리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1)의 각국 지도자들을 향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재생가능에너지의 확대’를 촉구했다.
특히 그린피스는 인터넷 발달과 함께 IT 업계가 쏟아내는 탄소 배출량에 주목하고 있다. 쿡 분석가는 “인류가 생겨난 이래 가장 큰 단일 산업군이 현재의 IT 분야다. 지난해 전세계 클라우드 컴퓨팅(정보 저장) 시스템이 쓴 전력 소비량은 무려 6840억kWh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러시아 국민이 1년간 쓰는 전체 전력 소비량(7290kWh)에 가깝다. 6840억kWh 이상 쓰는 국가도 러시아를 포함해 인도(7740억kWh), 일본(9390억kWh), 미국(3조7900억kWh), 중국(3조8620억kWh) 등 5개 나라 뿐”이라고 말했다. IT 산업은 향후 6~7년 사이 전세계 사업 규모가 3~4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의 현실이 더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셈이다.
IT 강국을 자부하는 한국도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뿜어내고 있다. 2013년 기준 국내 인터넷 사용자는 4008만 명, 인터넷 트래픽 이용량으로도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많다. 쿡 분석가는 “한국 데이터센터의 경우 2013년 한 해 동안 전력 26억kWh를 쓴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에서 100만 가구가 1년간 쓰는 전력량에 해당한다”고 했다.
IT 강국 탄소 배출량 많아하지만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한국의 노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2012년 기준 국내 재생가능에너지 이용률은 1차에너지 대비 1.9%였다. OECD 국가 중 꼴찌다. 재생가능에너지를 쓰고 싶어도 한국전력공사가 석탄과 원자력에 의존해 생산한 전력 외에 쓸 방법이 없다.
쿡 분석가는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능력에 아주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BAU(현재 상태에서 예상되는 미래 배출량) 대비 37%까지 줄이겠다고 했지만 너무 낮은 수치다. 그나마 국외 사업 과정에서 생기는 탄소배출권까지 포함시킨 것이다. 주요국과 국제환경단체들은 ‘한국 같은 태도 때문에 다른 나라의 책임이 커진다’며 신랄하게 비판한다”고 꼬집었다.
쿡 분석가는 한국도 ‘100% 재생가능에너지’에 눈을 돌릴 때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가 비효율적이거나, 대단히 불편하고, 쓰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국외 사례를 보면, 덴마크가 수력발전 에너지를 쓰고 남아 30%가량 수출한 사례가 있다. 아이슬란드도 수력과 지열로 자국의 전력 사용량 전체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채우고 있다. 개인이나 지자체 차원에서는 도로나 건물 유리창에 태양광 집열판을 깔아도 된다.”
효용도 분명하다. 쿡 분석가는 “고갈되는 기존 연룟값 인상을 기업들이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반면 ‘100% 재생가능에너지’는 원룟값이 들지 않아, 장기 계약으로 20~30년씩 동일한 가격으로 쓸 수 있다. 기업에는 최고의 비용 위험 회피 수단(헤지)이다. 최근 가 과거 5년 동안 재생가능에너지 값이 해마다 전년 대비 20%씩 떨어진 것으로 분석했다”고 말했다.
이는 수익 극대화를 최대 목표로 삼는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을 약속하는 이유기도 하다. 글로벌 IT 기업 가운데 구글·페이스북·애플 등이 재생가능에너지로만 전력 공급을 요청하거나 앞으로 사용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아마존·이베이 같은 전자상거래 업체, 인도 NTT 커뮤니케이션과 영국 BT같은 통신업체들도 대열에 합류했다.
국내에선 인터넷 포털 기업 네이버가 응답했다. 지난 6월 네이버는 데이터센터를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운영하겠다고 그린피스에 약속했다.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기업으로도 처음이다. 네이버는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자료 수집과 자문을 통해 장기 로드맵을 작성하고 있다. 쿡 분석가는 “한국인 70%가 쓰는 검색엔진이자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네이버가 100% 재생가능에너지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동기부여가 된다. 재생가능에너지 시장도 아시아 쪽에서 팽창하고 있다. 아시아 기업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네이버의 약속이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전력 구매·공급 시스템 개선 필요해하지만 국내 기업들로선 100% 재생에너지의 필요성과 효용에 공감해도 또 다른 장벽이 남아 있다. 국내 전력 대부분이 석탄이나 원자력 연료에 의존하는 한국전력공사에서 공급되고 있다. 기업이 원해도 재생가능에너지를 생산하는 민간 사업자와 별도의 ‘전력구매계약’(PPA·Power Purchase Argeement)을 맺을 수가 없다. 그린피스는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을 약속한 기업이 민간 사업자로부터 직접 전력 구매가 가능하도록 ‘국가정보화기본법’ 시행령을 고쳐달라고 미래창조과학부에 요구하고 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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