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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소하라”

검찰이 ‘변호사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한 김희수 변호사 인터뷰 “검찰 보도자료 명백한 허위사실… 기소유예는 재판에서 유죄 받을 자신 없어 내린 비겁한 처분”
등록 2015-07-24 16:11 수정 2020-05-03 04:28

“검찰이 (나를) 법원에 기소할 것을 촉구한다.”
검찰이 7월14일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자 김희수(사진) 변호사는 “죄가 있다면 기꺼이 처벌받을 각오가 돼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혐의는 인정되지만 피의자의 태도·사정, 범행 정황 등을 참작해 검사가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하고 사건을 종결하는 처분이 기소유예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법 위반을 인정하는 결정이기에 수용할 수가 없다. 오히려 검찰이 법원에서 무고함을 밝힐 기회마저 박탈했다”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 배종혁)는 지난해 9월부터 과거사 관련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할 때 취급했던 사건을 불법 수임한 혐의로 김 변호사 등 8명을 수사해왔다. 이 가운데 민변 변호사가 6명이었다. 변호사법 제31조(수임제한)는 “공무원, 조정위원 또는 중재인으로서 직무상 취급한 사건의 수임을 제한한다”고 규정돼 있다.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요건에도 맞지 않는 기소유예

김 변호사는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에서 조사했던 ‘장준하 의문사’와 유가족이 제기한 ‘장준하 긴급조치 국가 손해배상’은 전혀 달라서 ‘직무상 취급한 사건’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100여 쪽의 증거자료를 검찰에 내고 장준하 유가족도 “김 변호사와 국가 손해배상 소송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과 언론은 6개월간 그를 ‘과거사 불법 수임 의혹 사건’에 연루된 “비리 변호사”로 낙인찍어왔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날인 7월15일 은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헌법소원을 청구해 진실을 끝까지 밝혀낼 작정”이라고 말했다.

기소유예 처분에 왜 불만인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부르는 ‘지록위마’와 다를 바 없다. 검찰이 6개월간 망신을 주더니 이제 와서 굴욕적으로 용서한다니까 얼마나 비겁한 일인가.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기소유예 요건에도 맞지 않는다. 기소유예는 범죄를 자백하고 반성하고 다시는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다짐해야 내리는 처분이다. 그러나 나는 반성한 적도 없고 무혐의를 줄곧 주장했다. 무슨 근거로 용서하는가. 피의자가 기소해달라고 청탁해야 하다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김 변호사는 2003년 7월부터 2004년 8월까지 의문사위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장준하 의문사’를 조사했다. 유신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던 장준하 선생은 1975년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단순 추락사라고 발표했지만 권력기관에 의해 타살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의문사위에서 두 차례 조사했지만 국가정보원·국군기무사령부 등 정보기관이 기록 공개를 거부하고 유골 감식까지 하지 못해 ‘진상 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김 변호사는 이 의문사위 조사에 참여했다.

2013년 12월 장준하 선생 유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장 선생이 1974년 유신헌법 개헌 필요성을 주장하다가 긴급조치 1·2호 위반으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형을 받았는데, 2009년 6월 재심을 청구해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국가배상 소송의 변호인단으로 대거 참여했다. 김 변호사도 힘을 보태려고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수임료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

검찰은 수사 10개월 만에 ‘과거사 사건 수임제한 위반 등 법조비리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변호사 5명을 기소하고 김 변호사 등 2명은 기소유예 처분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7명 모두 변호사법(수임제한) 위반이라며 징계해달라고 대한변호사협회에 요구했다. 김 변호사는 “일부 변호사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내 경우는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무엇이 허위 사실인가.

검찰 보도자료를 보면 “2003~ 2004 의문사위에서 ‘장준하 사건’(①긴급조치로 인한 불법구금 여부 ②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사망 여부)을 취급한 후 ①항 관련 소송 사건 2건 수임”이라고 쓰여 있다. 의문사위에서는 장준하 선생의 긴급조치·불법구금을 조사한 바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변호사법이 금지한 ‘직무상 취급한 사건’으로 엮으려고 궁색하게 검찰이 짜맞추기했다.

김 변호사 향한 검찰의 “세 번째 표적수사”

검찰이 왜 그럴까.

손해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검찰이 ‘비리 변호사’로 낙인찍는 순간, 나에게는 주홍글씨가 생긴다. 아무리 죄가 없어도 검찰과 언론이 6개월간 떠들어대니까 다들 “인권 어쩌고 하더니 돈만 밝혔구만”이라고 손가락질한다. 나중에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든,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든 주홍글씨는 박히면 벗어나기 힘들다. 무고함이 드러난다고 한들 국가배상 청구가 가능하겠는가. 검사가 ‘고의적으로’ 불법 수사했다는 걸 입증해야 하는데 법률가로서 양심적으로 수사했다고 주장해버리면 그만이다.

김 변호사는 “검찰의 세 번째 표적수사”라고 했다. 첫 번째는 2004년 3월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의문사위 상임위원으로 탄핵 반대 시국성명을 주도했다가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2년6개월 만에 무죄를 받았다. 두 번째는 이명박 정부 때다. 은행 계좌를 수사기관이 들여다봤다는 통지가 잇따라 날아와 확인해보니 검찰이 1년간 자신을 내사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무것도 걸릴 게 없었다.

검사 출신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검찰을 강하게 비판한 탓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김 변호사는 2011년 저서 을 펴내는 등 검찰 개혁을 앞장서서 주장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검찰을 통제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는 “검찰이 휘두르는 칼이 ‘악마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검찰권은 국민의 생사여탈을 흔들 만큼 중요하고 위험하니까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 관련 사건에서 검찰이 ‘정의의 도구’로 칼을 휘두른 적이 있는가. 부끄러운 짓이다. 계속 이럴 수는 없다.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 한다.”

앞으로 계획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낼 것이다. 죄가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죄가 된다고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서 헌법이 보장한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침해했다고 말이다. 변호사법 자체도 위헌성을 다툴 계획이다. ‘업무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변호사 수임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 아니다. 전관예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수임제한 기간을 ‘무제한’한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 비례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한다. 법관과 검사도 ‘퇴직 1년 전에 처리한 사건’을 ‘퇴직 후 1년 동안 수임’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수임제한 기간이 최장 2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12년 전에 처리한 사건 때문에 검찰 수사를 받았다. 형평성에 어긋난다.

“침해받은 권리 구제 위해 헌법소원 낼 것”

검찰의 민변 ‘욕보이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민변 회장 출신 백승헌 변호사의 불법 수임 혐의에 대해 검찰은 7월14일 계속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소환 통보에 불응한다는 이유에서다. 백 변호사는 보도자료를 내어 “모든 자료를 확보한 검찰이 8개월이 지나도록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혐의를 논증할 수 없다는 점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변 창립 멤버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진실을 밝힌 김형태 변호사는 이날 재판에 넘겨져 치열한 법정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의문사위 위원으로 재직할 때 인혁당 사건을 조사한 사실이 없다. 또 수임료는 ‘판결 금액의 1%’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녹취 홍연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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