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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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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목숨이 그렇게 하찮은가”

위장도급으로 '중간착취' 되고 정규직 판정받자마자 '집단해고' 당하고 설 연휴 초과노동 중 '산재 사망'… 삼척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들 잔혹사
등록 2015-03-06 13:26 수정 2020-05-03 04:27

터를 닦고, 벽을 쌓고, 집을 올리며, 시멘트는 우리의 냉기를 막고, 온기를 담고, 일상을 세운다. 석회석이 채굴되고, 분쇄되고, 혼합되어 시멘트로 뿌려지는 동안 하청노동자들은 위장도급으로 ‘중간착취’되고, 정규직 판정 뒤 ‘집단해고’되며, 설 연휴 초과노동 중 ‘산재사망’한다. 안온한 집을 구성하는 석회석 광산 노동자들의 비참 속에, 주(住)는, 그렇게, 우리에게 온다.
장례(2월25일)는 결국 5일장이 됐다. 황망한 아들은 이틀 동안 조문을 거부했다. 빈소(삼척의료원)를 찾아온 회사(동양시멘트 기계유지보수 도급업체 ‘합동기계’) 대표에게 “무슨 짓이냐”며 화를 냈다. “대표는 아버지의 사망 경위는 말하지 않고 빨리 장례 치르고 합의하자고만 했다. 아버지가 왜 사고를 당했는지, 응급조처는 제대로 했는지, 회사는 안전 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2월21일은 설 연휴 기간이었다. ‘연휴와 무관한’ 아버지(61)는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출근했다. 정해진 근무시간은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였다. 오후 4시30분께 아버지는 피커(석회석 광산 수직갱도에 쌓인 암석 제거 장비)를 수리하고 있었다. 붐 실린더(포클레인 팔을 개조한 장비·늘어나거나 줄어들며 길이를 조절)의 양쪽 끝을 트럭의 견인고리와 지게차에 각각 연결해 당겼다. 분리 작업을 진행할 마땅한 도구가 없어 선택한 임시방편이었다. 견인용 고리가 뜯어지면서 아버지의 얼굴로 날아가 가격했다. 병원으로 옮겼으나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아버지의 죽음, 예견된 사고

아들은 장례를 미루고 사고 현장을 찾아갔다. “책임 있는 설명이 없으니 빈소를 지켜야 할 내가 직접 확인하고 물어야 했다. 안전 규정이 지켜졌는지, 편법 작업이었는지 따졌다. 편법이라고 하더라. 나는 ‘이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당신들도 우리 아버지처럼 죽을 수 있다’고 했다.”

정규직 판정 직후 해고 통보를 받은 동양시멘트 사내하청(동일) 노동자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의 49광구 석회석 더미에서 움직임을 멈춘 광산을 바라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정규직 판정 직후 해고 통보를 받은 동양시멘트 사내하청(동일) 노동자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의 49광구 석회석 더미에서 움직임을 멈춘 광산을 바라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아버지는 석탄 광부였다. 강원도 삼척 도계의 경동탄광에서 대형 붕괴사고를 겪었다. 그 충격으로 1994년부터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가 됐다. “아버지는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최저임금이라도 벌려고 나갔다. 아버지는 평생 제주도 한번 못 가보고 일만 하다 죽었다. 동양시멘트는 대기업이다. 작업 지시는 원청이 한다고 들었다. 위장도급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도 안다. 하청업체 사고라고 책임 없다고 할 것인가.” 허름한 회사 사무실에서 사고 시각까지 뚜껑도 열어보지 않은 아버지의 도시락을 발견하고 아들은 울었다.

동양시멘트는 1957년 설립됐다. 국내 최초의 시멘트 기업이며 업계 2위(1위는 쌍용양회) 업체다. 변방 삼척의 시멘트를 기초로 동양은 그룹을 일궈 서울로 나갔다. 49광구(삼척시 근덕면 교곡리)는 노후화된 46광구(사직동 조미리·2016년까지 화력발전소 부지를 닦아 포스코에 이양)를 대체하는 신광산이다. 54만 평 부지에 3억2천만t의 석회석이 매장(30여 년 채굴량)돼 있다.

2월24일 49광구 사고 장소엔 경찰이 두른 현장보존용 테이프가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었다. 김동원(가명)씨의 얼굴을 때린 굵은 쇠고리는 붐 실린더 옆에 떨어져 있었다. 주인 잃은 파란 안전모가 멍처럼 짙푸르렀다. 덤프트럭의 견인고리는 두 개 모두 뜯겨 있었다. 한 노동자가 말했다. “사망사고 전 한쪽이 이미 망가져 있었다. 예견된 사고였다는 뜻이다. 동양시멘트엔 장비 보수 매뉴얼 자체가 없다(동양시멘트 관계자는 “경찰 조사 결과 회사에 과실이 있다면 책임을 지겠다”고 밝힘).”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조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안전은 철저히 외면돼왔다”고 했다. “동양시멘트 내 (하청업체) ‘동일’의 경우 노조 결성 전까지 산재 처리를 하지 않았고, ‘두성’은 재해사고 발생 때 전액 현금으로 진료비를 지급해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하청노동자는 서럽다”

흙으로 덮은 혈흔을 뒤로하고 고불고불한 길을 오르면 거대한 노천광산이 펼쳐진다. 해발 410m의 산은 높이 10m(붕괴를 막는 ‘안전둑’이자 차량 이동 통로) 간격으로 계단처럼 깎여나가 280m까지 낮아졌다. 무게를 가늠하기 힘든 거석과 흙먼지 가득한 광산은 오래전에 산의 형상을 잃었다.

광산 중앙엔 90m 깊이의 아찔한 대형 구멍이 뚫려 있다. 착암기가 15m짜리 구멍을 내면 발파공들이 화약을 재어 석회석을 깨뜨린다. 100t 무게의 휠로더가 암석을 상차하면 85t 덤프트럭이 수직갱도로 옮겨 ‘투광’한다. 90m 구멍 밑에서 분쇄기가 암석을 부숴 45도 각도의 경사관으로 내려보낸 뒤 광산 아래에서 2차 파쇄한다. 벨트라인을 타고 6km 떨어진 46광구에 도착한 석회석 덩어리들은 다시 45광구(사직동 공장 안)에 이르러 부원료(고령토와 규석·철광석 등)와 섞여 시멘트가 된다. 수직갱도 45도 경사 지점에 거석이 걸려 관이 막히면 이후 공정은 불가능해진다. 김동원씨가 고치던 장비는 이곳에 걸린 돌을 원격조종해 깨는 기계였다.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집단해고됐다. 당장 급하게 쓸 사람도 없는 붐 실린더를 연휴에 보수하다 사망했다. 왜 그래야 했나.” 사고 장비를 살펴보던 누군가가 “하청노동자는 서럽다”고 했다.

동일 소속 노동자 101명은 2월17일 사 쪽이 보낸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동일 대표이사는 “원청사에서 여러분의 과도한 임금 협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최후 통보를 받았다(보내왔다)”고 통지서에 썼다. 나흘 전인 2월13일 동양시멘트는 동일에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1993년 설립된 동일은 오직 동양시멘트의 하청만을 수행해왔다. 22년 만에 동일은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

해고 통보를 받은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들이 2월25일 강원도 삼척시청 앞에서 집단해고 규탄 및 정규직 전환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진수 기자

해고 통보를 받은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들이 2월25일 강원도 삼척시청 앞에서 집단해고 규탄 및 정규직 전환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진수 기자

계약 해지와 해고 통보는 고용노동부의 ‘어떤 결정’에 따른 동양시멘트의 ‘가혹한 반격’이다. 2월13일은 동일과 두성 노동자들이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으로부터 동양시멘트(모두 9개의 사내하청에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421명)와의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를 인정받은 날이기도 하다. 그동안 불법파견 인정 사례는 없지 않았으나 고용노동부 차원의 묵시적 근로계약 판정은 최초다. ‘고용된 날로부터 정규직’이란 뜻이다. 동일과 두성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과 차별받은 임금 지급을 요구할 권리를 갖게 됐다. 사내하청의 실체 여부(없을 때 묵시적 근로계약)가 불법파견과의 차이를 가른다. 노동청은 동양시멘트가 동일과 두성의 사업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고 판단했다.

근거는 다양했다. 동일과 두성의 대표이사(동양시멘트 간부 출신, 동일의 경우 설립 이후 4차례 바뀜)는 동양시멘트의 결정에 따라 취임했다. 주식은 전임 대표이사로부터 무상으로 양도받았다. 대표이사의 보수도 동양시멘트가 결정했다. 두 회사가 독자적으로 보유한 사무실·기계·장비는 없다. 원청의 지시에 따라 두 회사 직원이 소속을 서로 바꾸기도 했다. 원청은 하청노동자들의 연장근로를 직접 지시하고, 현장 작업을 지휘했다. 격려금, 인센티브 지급대상, 지급액, 지급일자, 회계처리까지 결정해 하달했다. 노동청은 “동일과 두성은 동양시멘트의 노무대행기관에 불과하다”고 했다.

원·하청 사이 드넓은 차별의 간극

최창동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조 동일시멘트 지부장은 “노동청 공문 수령과 거의 동시에 원청의 계약 해지 통지가 동일에 전달됐다”고 했다. 묵시적 근로계약 인정으로 정규직 전환을 꿈꿨던 노동자들은 4일 만에 해고자(3월1일자)가 됐다. 조합원들이 일을 멈춘 작업장엔 대체인력이 들어와 있다. 주로 퇴직자나 촉탁직, 부서 전환배치 인원들이다. 조합원들은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한 해고”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2월25일 오전 삼척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의 ‘정규직 전환 이행’을 촉구했다. 노조는 3월 초 동양시멘트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상경투쟁도 진행한다. 지도부는 머리를 깎았다.

동양시멘트 사 쪽 관계자는 “우리의 임금 인상안을 그분들(조합원들)이 받지 않아서 동일에 계약 해지 통보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의 정규직 전환 결정은 “공문이 왔으니까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녹록지 않다”고 했다. “현재 법정관리 상태인 회사가 잘못하면 망할 수도 있어 당장은 어렵다. 그분들은 ‘법대로 하라’고 요구하는데 그럼 법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해서 이기면 된다. 그땐 회사도 정규직 전환을 안 할 재간이 없다.” 동양시멘트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3월엔 법정관리 1년 만에 조기졸업을 신청할 예정이다.

동양시멘트는 삼척의 향토기업이다. 같은 동네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갈렸고, 한 가족 안에서도 신분은 나뉘었다. 해고자들은 원·하청 사이 드넓은 차별의 간극(2014년 7월 현재 7대 시멘트업계의 정규직 비율은 50.52%)을 토로했다. 동일 소속 조합원 중 15%(노조 조사)는 최저시급(2015년 5580원) 미만의 급여를 받고 있다. 잔업·특근 등 연장근로가 200시간을 넘는 경우도 많다. 광산 채굴 현장에서도 위험한 곳은 하청만 들여보낸다는 증언도 나온다. 2009년 49광구 개발 초기에 포클레인이 75m 산비탈 아래로 굴렀다. “길 폭이 좁아 관리직이 동행을 포기한 뒤 벌어진 일”이라고 당시 목격자는 말했다. 다른 목격자는 “헬기를 부르자고, 작업을 멈추고 사람부터 살리자고, 소리쳤지만 회사는 작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우리 목숨이 그렇게 하찮은가 싶어 서글펐다”고 했다. 동일에서만 22년을 일한 노동자는 탄식했다. “지금까지 비정규직으로 온갖 설움을 받으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일만 했다. 명절 때 쉬었다고 경위서를 쓴 적도 있다. 그때마다 원청 직원들은 군소리 없이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정규직이 될 거라고 했다. 그 말만 믿고 22년을 일했다. 정규직은커녕 해고됐다. 미칠 것 같다.”

“나는 무엇을 위해 내 고향 약산을 깎았나”

49광구는 본래 화전민의 땅이었다. 이름을 얻기 전 ‘약산’이라 불렸다. 억척의 생명들은 불로 땅을 일궈야 하는 척박의 운명을 송이와 약초로 위안했다. 약산은 삼월삼짇날 주민들이 제를 올리던 신성한 산이기도 했다. 화전민의 후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됐다. 채굴로 반토막 난 산 능선의 ‘땍비알’(지명)을 바라보며 김경래(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조 동양시멘트 부지부장)씨가 말했다.

“신광산을 만들 때 주민들의 반대가 많았다. 회사 지시로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개발 동의서를 받아줬다. 그런 나더러 시급 3천원대 비정규직이 되라고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내 고향 약산을 깎았나.”

삼척=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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