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당당한 피종속인”에서 진짜 당당한 노동자로

일방적 계약 해지 뒤 노동자성 깨닫고 노조 활동에 나선 심리치유기업 ‘마인드프리즘’ 노동자들과 홍세화 이사장의 만남
등록 2015-02-11 15:22 수정 2020-05-03 04:27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은 심리치유기업 ‘마인드프리즘’이 일방적 계약 종료 등으로 사원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상황(제1047호 사회 ‘직원 마음은 돌볼 수 없습니까?’ 참조)에 대해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표현을 썼다. 2004년 세워진 마인드프리즘에서는 설립 10년째인 지난해 12월28일에야 노동조합이 생겼다. 2명의 계약직 김미성씨와 이아무개씨의 계약 종료 철회를 요구했지만, 계약은 1월에 예정대로 종료됐다. 쌍용자동차 노동자·가족 치유 공동체 ‘와락’에서 해고노동자 치유활동을 해온 김미성씨는 “해고 당사자가 된 뒤에야 내가 노동자임을 깨달았다. 그전에는 경영진과의 관계를 노사관계가 아니라 인간관계라고만 생각했다. 참 창피한 일이다. 내 안의 이 커다란 이율배반이 어디에서 근원했는지 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인드프리즘 신생 노동조합원들은 ‘노동조합 때문에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경영진과 비노조원 동료들의 뿌리 깊은 반노조 인식이 답답하고 힘들다. 이들은 홍세화 이사장에게 답을 구하고 싶어 했다. 홍 이사장은 프랑스 사회를 거울 삼아 한국 사회를 비판하고 성찰해왔다. 김미성씨에게 ‘사회연대’의 싹을 틔우고 ‘내 생각이 내 머리에서 나온 게 맞는지’ 고민하게 한 것도 홍 이사장의 강연이었다. 2월4일 저녁 김미성씨의 제안으로 마인드프리즘 노조원들과 홍세화 이사장이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마인드프리즘 노동조합이 단단해지는 여정을 함께했다.

선한 주인+선한 투자자≠선한 기업

홍세화(이하 홍)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원하는 일을 하며 생계까지 해결하는 ‘자유인’으로 살기가 매우 힘들죠. 예를 들어 정론을 지향하는 조차 지향하는 가치와 수익이라는 목표가 파열음을 낼 때가 많아요. 그 원인은 정치권력보다는 자본권력인 경우가 많죠. 마인드프리즘도 기업이니 치유라는 가치와 수익이라는 목표가 부딪치는 게 당연해 보여요. 그런데 구성원들에게는 치유라는 지향의 지속성을 담보받기 위한 고민이 전혀 없었나요? 그 고민이 있었다면 마인드프리즘이 기업이 아닌 재단 형태가 될 수도 있었을 테고, 기업으로 지속하더라도 지향을 담보받기 위한 단체협약안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노조의 필요성이 제기됐을 텐데. 그 지점이 비어 있어요.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김미성(이하 김) 처음 마인드프리즘에서 일할 때는 심리적 괴로움이 컸어요. 마인드프리즘에서 기업을 대상으로 첫 번째 치유프로그램을 한 장소가 서울 시청 앞 더플라자 호텔이었어요. 우아하고 안락한 곳에서 치유활동을 하고 창밖을 보면 대한문 앞에 쌍용차 해고자들의 분향소가 보여요. 나는 해고노동자와 연대하고 그들을 치유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과 싸우는 경영자를 위한 일을 하는 거라는 갈등이 컸어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점차 생각이 바뀌었어요.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늘 마음이 아파요. 고통을 겪죠. 후원의 방식이 아니라 이윤을 창출하며 이들의 마음을 돌볼 수 있다니, 이런 기업이 사회에 존재하는 게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마인드프리즘은 보통의 기업과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이 회사의 콘텐츠를 만든 선한 주인(정혜신)이 있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는 선한 투자자(김범수)가 있고 직원들은 그 뜻을 같이하며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열정적으로 일했어요. 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한국에서 노동자 의식을 가진 사람은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죠. 의식은 형성돼야 하는데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형성된 적이 없으니까요. 당하고 싸워야 알게 되죠. 실상 내가 노동자로서 부당함을 겪고, 겪기만 해서는 몰라, 그 부당함에 굴종하지 않고 싸워보면 그때야 노조의 필요성을 알게 되죠. 미성씨가 이야기한 ‘주인’이라는 표현 자체가 노동자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잠재된 예속성을 어느 정도 말해주네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중에는 회사 일만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와락 에서는 사실상 구걸형 치유를 했어요. 싸우느라 바쁜 해고노동자에게 ‘치유 한번 하자’ 설득하고 약속을 잡으면 어기는 일도 부지기수죠. 그러면 또다시 설득하고 약속을 잡죠. 그런데 마인드프리즘에서는 치유프로그램 한번 할 때 준비하는 직원 따로 있고, 치유 장소로 이동할 때 회사 차로 움직이죠. 몸이 편안하니까 이것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양보가 아니라 의자놀이를 없애야

빅토르 위고는 사람들이 온정, 시혜에 관해 생각할 때 모두 베푸는 쪽에 서서 생각한다고 말했어요. 자신을 베풂이나 온정을 받는 쪽이 아니라 주는 쪽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노동자 개인은 노동조합이 없을 때는 한갓 미약한 개인일 뿐이에요. 구걸하다시피 해야 하는 일이든, 갑자기 따뜻한 물이 콸콸 나오는 상황의 변화가 일어난 뒤든 모두 자신이 노동자가 아니라 베푸는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 인식의 한계가 노동자성을 잊게 하는 데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온몸으로 동의해요. 마인드프리즘에서 경영진이 처음 8명 권고사직 이야기를 꺼낸 뒤 직원들이 ‘희망퇴직 형태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어요. 이후 우리 부서원들 모두 “그럼 내가 그만둘게”라고 말했어요. 사람은 10명인데 의자는 9개뿐이니 1명은 나가라는 의자놀이가 시작됐는데 서로 양보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인 거죠. 그게 자랑스러웠는데 돌이켜보니 거기에도 베푸는 입장에 서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을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의문이 있어요. 오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내 이익보다 동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게 나쁜가요? 지금 우리 회사는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고용을 보장하라고 싸우고, 저는 저대로 ‘다른 비정규직 고용을 보장하면 내가 양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나쁜가요?

다른 맥락인데 우리가 어떤 사람을 도울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를 도와야 하는 상황 자체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거죠. 의자가 10개에서 9개가 됐을 때 ‘내가 나갈게’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의자놀이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야죠.

저는 심지어 회사에서 잘릴 판에 회사 걱정을 했어요.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마인드프리즘이라는 회사가 이 사회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요.

그건 일에 대한 자긍심이 작용해서일 텐데 삼성이 잘 만들어낸 가족이념 때문이기도 하죠. 그런데 그건 참 균형감각 없는 논리예요. 노동자는 사용자를 가족으로 생각하지만 사용자도 노동자를 가족으로 생각하나요?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경영위기가 거론될 때 가장 먼저 버리지도 않고, 일하다 아플 때 모른 체하지도 않겠죠.

관계가 중요한 영향을 준 것도 같아요. 지금의 경영자들과 함께 일했고 인간적으로는 이해해요.

“기업에 선의란 없다, 이윤이 있을 뿐”

기업에서 인간관계라는 것은 권력관계예요. 권력관계에 기댄다는 것은 노동자성이 결여돼 있기 때문에 오는 거예요. 회사가 잘해주겠지라고 온정에 기대는 거죠. 기업에 선의란 없어요. 기업엔 이윤이 있을 뿐이죠. 선의는 사람에게 있죠. 그런데 사람의 선의에만 기대는 건 얼마나 불확실한 일이에요? 1년 계약을 할 때 형식적인 서류일 뿐이라는 선의를 믿었겠지만 결국 관철된 것은 기업의 논리죠.

노조원1 노동자 주제에 회사 걱정을 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마인드프리즘 특유의 분위기가 작용한 것 같아요. 김미성씨가 선한 설립자, 선한 투자자를 말했는데 마인드프리즘에는 선한 것이 최우선시되는 정서적인 문화가 있어요. 그 문화 안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나의 권리를 생각하기보다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우리에게 치유받았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흔들릴까봐 두려웠어요. 또 정혜신 전 대표가 지금 세월호를 치유하는 힘든 곳에 있는데 누가 될까 두렵고 그 이름을 감히 거론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도 컸어요. 정혜신 전 대표는 이미 마인드프리즘의 대표가 아닌데 그에게 책임이 있나요?

당연히 있죠. 마인드프리즘이라는 기업의 수익성에서 정혜신 박사가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었을 거예요. 정혜신 박사가 어떤 전망과 가치를 갖고 기업을 시작했다면, 그 기업의 노동자들이 이 전망과 가치를 지속하며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책임도 있죠. 그 부분에서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죠.

노조원2 회사에서는 이틀 전 ‘노조 때문에 영업이 어렵다. 다음달부터는 매출과 급여를 연동하겠다. 전 직원이 영업을 고민하라’는 폭탄 발언을 했어요. 직원들 사이에 소요가 일어났어요. 노조원이 아닌 직원은 노조원들에게 ‘너네 다 희망퇴직할 때 나가지 왜 남아서 회사를 망하게 하느냐’고 말하기도 했어요. 노조에 대한 거부감과 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한다는 논리는 왜 생긴 건가요? 그리고 회사가 정말 망한다면 그건 노조 탓인가요?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이런 상황에도 많은 사람들이 노조에 참여하지 않는 상황, 기업의 어려움을 노조에 돌리는 모습 등은 정말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네요. 우리가 지금 8시간 노동하는 건 100여 년에 걸친 노동운동의 결과예요. 1831년 하루 16~18시간 일하던 프랑스 리옹 지방의 견직공들이 일으킨 파업으로 노동시간은 14시간이 됐고, 1886년 무참히 진압된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8시간 노동제 획득을 위한 것이었어요. 지금 우리가 8시간 일하는 건 세계 여러 노동자들이 흘린 피의 대가이기도 합니다. 구조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마음들을 다독이자는 설립 이념과 가치를 지향하는 회사에서 구성원의 마음에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경영 행위가 일어날 때 그에 대한 저항이 없다면 엄청난 모순이에요.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바로잡겠다는 노조 활동으로 마인드프리즘의 경영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지만, 그 핑계가 사실이라도 그건 노조 구성원들의 책임이 아니라 노조를 죄악시하는 한국 사회에 책임이 있는 거죠.

뒤늦게 노조를 설립하고 노동자성을 인식했지만 그래도 이 방향에 들어섰다는 것, 이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과정이 없다면 저는 더 이상 누구 앞에서도 치유활동가라는 이름으로 설 수 없을 거예요.

노조는 기업 신념 지키기 위한 보루

미국의 사회사상가 나오미 울프가 “싸우는 과정 자체가 싸움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고 했죠. 마인드프리즘 노조가 걸어가는 길이 사람의 마음을 돌본다는 가치와 맞닿아 있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한 걸음걸이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어요.

노조원3 한 영업사원이 얼마 전 단체 메일을 보냈어요. “마인드프리즘은 10년 동안 마음을 케어하는 콘텐츠를 진정성 있게 판매하는 신념 있는 회사라고 말하면서 영업을 해왔는데, 1월12일부터 마인드프리즘 이야기가 기사화되면서 영업이 힘들어졌다”는 내용이었어요. 메일을 받고 오히려 저희의 논리는 더 탄탄해졌어요. 저희의 노조 활동은 그 신념을 지키겠다는 활동이 뜨겁게 타오르는 거예요. 지난 10년 동안 마인드프리즘에서 그저 당당한 피종속인일 뿐이었다면 이제 내가 종속성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제일 소중한 거예요.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