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성(이하 김) “하나만 물어보자. 난 마인드프리즘이라는 회사와 전 대주주 김범수 다음카카오톡 의장과 맞선다는 데 공포가 있어. 겁나. 나랑 상대도 안 되는 거대한 존재와 맞서는 게 두려워. 너는 ‘쌍차 노조’라는 큰 조직이 있어서 그런 건 없었니?”
이창근(이하 이) “나도 두려움이 있었죠. 조직의 크기와 두려움은 큰 연관이 없어요. 고통은 자기 몫이지. 다만 앞으로 갈 거냐, 뒤로 갈 거냐(싸움을 그만할 거냐) 두 갈래 길 가운데 나는 앞으로 갈 때 불안과 공포가 덜했어. 그래서 계속 앞으로 간 거지.”
김 “지금은 어때? 공포감이 없어?”
이 “나는 다 뺏겼잖아요. 더 뺏길 게 없으니 두려움도 없어요.”
김김 “나도 다 뺏겨야 이 공포가 없어지는 거야?”
1월21일 저녁 8시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남문 앞. 굴뚝 위에 올라가 있는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과 치유활동가 김미성(44)씨가 영상통화를 했다. 김씨는 닷새 전인 1월16일 1년간 일해온 심리치유기업 마인드프리즘에서 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다. 2011년부터 쌍용차 노동자·가족 치유 공동체 ‘와락’과 쌍용차 노동조합이 만든 서울 대한문 분향소에서 해고자들의 마음을 돌보는 일을 해온 김씨는 “나도 이제 초보 해고자야”라고 말했다. 이날도 오전 9시 서울 역삼동 마인드프리즘 건물 앞에서 출근 시위를 하고 낮 12시30분 역삼역 앞에서 점심 시위를 한 뒤 서울 명동에서 환경운동가와 2시간 동안 ‘공감대화’를 마치고 평택으로 향했다. 이창근 실장, 김정욱 사무국장이 굴뚝에 올라간 뒤로는 일주일에 두세 차례 굴뚝을 찾는다.
마인드프리즘은 2004년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가 세운 심리치유기업이다. 고문피해자 트라우마 치유, 쌍용차 해고노동자·가족 치유, 5·18 피해자들을 위한 심리치유 프로그램 등을 함께해왔다. 2013년엔 ‘대한민국 직장인의 마음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다’는 내용의 ‘직장인 마음건강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을 알리는 기자회견엔 정혜신씨와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함께 자리했다. 김범수 의장은 2012년 마인드프리즘의 지분 70.5%를 인수했다. 김 의장은 이 기자회견에서 “꿈꿀 수 있는 사회와 마음이 건강한 사회 두 가지를 삶의 목표로 삼았다. 1번 과제는 카카오톡을 통해서, 2번 과제는 마인드프리즘을 통해서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장이 지분을 인수하고 차입금 형태로 투자하면서 마인드프리즘 조직은 커져갔다. ‘직장인 마음건강 캠페인’의 단초가 되는 ‘내마음보고서’ 개발도 시작됐고 직원도 9명에서 28명까지 3배로 늘어났다. 김미성씨도 이 과정에서 채용됐다. “당초 정규직으로 제안받았지만, 와락 활동을 겸해야 해서 1년 계약직으로 계약서를 썼어요. 계약 당시 회사는 ‘이건 형식일 뿐 기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고요.”
지난해 7월부터 마인드프리즘에서는 권고사직·계약종료 등 노동자의 고용을 박탈하는 단어들이 경영진의 결정에 따라 통보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7월20일께 김범수 의장의 친동생인 김화영 전 대표가 팀장 회의에서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직원 8명 권고사직 명단을 작성했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경영 위기 극복 등을 함께 논의하자며 ‘직원대표단’을 꾸리고 논의 테이블을 만들었지만 경영진은 권고사직이 희망퇴직으로 마무리된 뒤부터 회의 테이블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계약직원 2명의 계약 종료에까지 이르렀다. 마인드프리즘 직원 10명은 계약 종료를 철회하라는 벽보를 붙였고 회사는 이들에게 ‘복무 규율에 충실하라’는 서면 경고장을 보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맥락을 살필 때 정혜신과 김범수라는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정혜신씨는 지난해 5월 ‘세월호 유가족을 돌보는 데 전념하겠다’는 결정을 하고 마인드프리즘 대표직을 사퇴했다. 정 대표의 사퇴 다섯 달 만인 10월31일 “돈을 보고 마인드프리즘을 하는 게 아니다. 사회공헌재단으로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던 김범수 의장이 마인드프리즘에서 발을 빼는 모양새를 취했다. 친동생 김화영 대표가 이날 사퇴하면서 김범수 의장의 지분 70.5%를 신임 대표로 지목한 김창성·박인정에게 양도하고 김 의장이 차입금 형태로 투자한 26억5천만원의 부채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큰 투자자와 상징적 존재였던 설립자가 빠져나가면서 마인드프리즘이 겪고 있던 경영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회사는 경영 위기를 인력 조정을 통한 비용 감축으로 해결하려는 모양새다. 김창성·박인정 공동대표는 1월22일 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회사의 극심한 경영 부진 속에서 워크숍 사업이 지속적으로 어려웠고 향후 수주도 저조해 현 2.5명 체제에서 1명이 운영할 규모를 만들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며 “계약 종료는 회사의 존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취해진 부득이한 의사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이 의사결정에 대해 김미성씨는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 회사가 ‘너의 능력은 필요 없어’라는 신호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자 능력 없는 나 개인에 대한 모멸감이 느껴졌다.” 그는 개인에게 모멸감을 주는 회사가 다른 사람의 모멸감을 치유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고 “내가 좋아하는 기업 마인드프리즘의 가치를 지키고 싶기 때문”에 저항을 시작했다.
저항은 ‘치유활동가’라는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해고자를 치유할 때 해고 과정의 폭력성에 눈감으면서 치유할 수는 없다. 희망퇴직이든 권고사직이든 계약 종료든 법의 영역을 넘어서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모두 직장이 사라지고 생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해고다. 해고자를 상담해온 내가 나의 해고 상황을 방관하고 다른 해고자와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돌본다면 나는 괴물이다. 이 일을 계속하려면, 내가 느끼는 부당함을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
마인드프리즘은 기업인 동시에 노동자 투쟁에 ‘심리치유’라는 영역을 안착시키는 역할을 한 사회 인프라이기도 하다. 이창근 실장은 굴뚝 위에서 기자에게 말했다. “김미성씨와 마인드프리즘은 7년간의 쌍용차 투쟁에서 ‘노동자 심리치유’라는 영역을 해고자 투쟁에 자리잡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마인드프리즘이 지금 김미성씨를 해고하는 건 어렵게 자리잡은 ‘노동자 심리치유’라는 영역을 부정하는 것으로 비칩니다. 김범수 의장은 자신이 뱉은 말을 잘 주워담아야 합니다.”
정혜신 전 마인드프리즘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정혜신씨는 그 이유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 표명을 하는 것보다 비공개적으로 일을 해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내가 실질적으로 신경을 써야 하는 다른 일이 있다는 걸 알면 나를 배려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상담받는 일에 부담을 가질 것이어서 안정적 상담이 어려워진다. 지금 심리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어서 그 부분이 말도 못하게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마인드프리즘 노사는 1월22일 저녁 1차 단체교섭을 열었다. 지난해 12월29일 노조가 생긴 뒤 첫 대화다. 회사는 “고통 분담 차원에서 희망퇴직 기준을 계약 종료자에게 적용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미선 마인드프리즘 노동조합 사무장은 “회사가 이전보다 열린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환영하며 퇴직이 아닌 계약 연장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노사는 1월28~29일 2차 교섭을 열기로 했다. 1천만 직장인의 ‘마음’을 돌보겠다는 기업이 17명 사원의 마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지 지켜보는 ‘눈’이 많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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