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아직 풋내를 떨치지 못한 앳된 얼굴의 영정을 자꾸 문지를 뿐이었다. 아들 범훈(24)이 배를 타러 나가기 전에 찍은 사진이니, 벌써 3년 전의 모습이다. 아들이 원양어선에 오른 뒤, 김유동(60)씨는 그와 명절을 함께 보낸 기억이 별로 없다. 지난해 7월 보았던 그을은 얼굴이 아들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이제 나흘 뒤면, 그 그리운 아들이 부산항에 도착한다. 차가운 주검이 되어, 범훈이 돌아온다.
<font size="3">3년 6개월 더 일한다고 본 보상</font>아들은 일찍 철이 들었다. 돈 때문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김유동씨는 평생 조경 일을 했다. 불황으로 그나마 일감마저 끊겼을 때 그는 아내와 갈라섰다. 아들 범훈은 혼자 자취생활을 하며 고등학교를 다녔다.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며 대학에서 경영학을 택했지만, 또래 친구들이 공부에 매진할 때 그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해야 했다. 속에 있는 말을 좀체 꺼내놓는 법이 없던 아들은 어느 날 명태잡이배를 타겠다고 했다. “산업기능요원으로 원양어선에서 3년을 일하면 군복무도 해결하고 돈도 벌 수 있어요, 아버지.”
가족이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싶다던 아들의 꿈은 지난해 12월1일 물거품이 됐다. 김범훈씨가 탔던 501오룡호(사조산업 소속)는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거친 날씨 속에 침몰했다. 무리한 조업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과실이 드러났으므로 김씨를 비롯한 오룡호 선원의 가족들은 “모두 책임지겠다”는 회사와 정부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다. 믿음은 머지않아 무너졌다. 아직 5명이 실종 상태지만 정부는 사실상 수색 작업을 접었고 사조산업은 일방적인 보상안을 내놨다. 수습된 선원들의 주검이 고국의 땅에 닿기도 전에 사고 처리를 마무리하려는 모양새였다.
고장운 가족대책위원장은 “언론 보도에서 사조산업은 1인당 3억여원을 받는다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회사가 제시한 금액은 3500만원 수준이고, 사조산업 쪽이 밝힌 3억원대 보상액은 선원들이 선원법에 따라 의무 가입한 보험사에서 지급하는 금액이다. 그나마 선장을 제외하면 보험금은 3억원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보상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족보상금은 선원들 평균임금 1300일치에 165%의 가중치를 더해 산정한다. 3년6개월 정도만 추가로 일할 수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중년의 가장을 잃은 가족에게도, 약관의 아들을 잃은 부모에게도 가혹한 셈법이다. 업체의 과실을 따져물은 뒤 “보상이 아닌 배상을 받고 싶다”고 고 위원장은 덧붙였다.
여론의 무관심이 아니었다면 회사도, 정부도 좀더 진정성 있는 대책을 내놓았을지 모른다. 지난 1월5일 견디다 못한 오룡호 사망·실종자 가족 50여 명은 서울 서대문구 사조산업 본사 건물에서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거리로 나선 가족들을 향해 “뭐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라고 묻는 건 인근 박물관에 견학을 온 초등학생들뿐이었다. 며칠째 외교부 청사 앞에서 “아들을 살려내라” 외쳐도 가족들을 맞으러 나오는 이는 없었다. “시민단체든 어디든 우리 얘기를 들어줄 만한 데는 다 찾아가보자”고 말하는 가족들의 목소리에서 물기가 배어났다.
<font size="3">아들이 하고 싶었던 사업은 무엇이었을까</font>지난 1월11일, 실종자 5명을 제외한 6명의 주검이 부산항에 도착했다. 유가족 일부는 사망자들의 주검 인수를 미루기로 했다. 그 가운데 2등 항해사 고 김범훈씨도 있다. 아버지는 끝내 아들이 하고 싶었던 사업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먼 바다까지 나가 홀로 지내며 범훈이 구하고자 한 미래가 무엇인지 묻지 못했다. “자기 살길은 자기가 찾겠다고 배를 탄 건데…. 애비가 무능력해서 제대로 용돈도 못 준 게 한스럽지요.” 김유동씨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정인선 인턴기자 insun9782@naver.com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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