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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데서 이기고 온 사람아.
굴뚝에선 쉴 틈 없이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무엇을 태운 것일까. 어떤 색이 탈색됐고 무엇을 지운 뒤 연기는 하얗게 변했을까. 하얀 서릿발이 허리를 곧게 펴고 여적 보초 서는 여명의 마당에 햇살의 기운이 붉다. 26명의 인생이 밝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모조리 불살라져버린 이곳 쌍용차 굴뚝. 하얀 연기 되어 밤낮으로 온몸을 휘감으며 말을 걸고 하소연을 한다. 악몽은 잠을 갉고 바람은 폐까지 연기를 밀어넣는다. 서러운 손짓을 하며 허공에 흩날리는 연기 속에서 아침을 맞는다.
이제는 마음이 놓였을까.
햇살 오는 곳 손짓하고 햇살 맞을 곳 안내하고 연기는 사라진다. 홍조 띤 태양은 뜨거움을 토하며 산을 넘고 송전탑을 지나 마침내 이곳 굴뚝으로 햇살을 비춘다. 등 굽은 노동자가 살아난다. 하얀 연기 서리 맞은 노동자의 붉은 피를 돌게 한다. 죽은 것이 산 것을 살리는 시대. 산 것이 산 것을 살려야 하는 시대. 공장 굴뚝의 하얀 연기는 환기와 순환의 고단함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쌍용차에도 그렇게 봄은 오고 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 ‘봄’
평택=사진·글 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경기도 평택공장 굴뚝에서 찍은 2014년 12월26일의 일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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