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기에 폭로된 두 건의 교수 성폭력 사건을 두고 각 대학의 결정이 엇갈렸다. 서울대학교가 명명백백 진실을 드러내는 길을 택한 반면, 고려대학교는 얼렁뚱땅 덮고 가는 길을 택했다. 학생들은 고려대가 교수 성폭력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지 않다며 반발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가’
지난 12월4일 서울 고려대 안암캠퍼스에는 여러 개의 대자보가 나붙었다. 대학원생(23) 제자를 상대로 지속적인 성희롱을 벌이고 강제 추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이 학교 이아무개(54) 교수와 학교 쪽을 향한 것이었다. 지난 11월29일 고려대 쪽은 교내 양성평등센터와 경찰 양쪽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이 교수의 사표를 수리했다. 사표 수리를 통해 면직되면 징계인 해임이나 파면 처분을 당하는 경우와 달리 재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진상 조사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조사와 징계 주체인 학교가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는 교내에 붙인 대자보에서 “학교는 교수의 사표를 수리함으로써 퇴직금, 향후의 재취업 기회까지 보장해주었다. 이 사건에서 학교는 대학원생이 학교 내에서 최약자의 위치에 처해 있으며, 학교는 인권 유린 및 탄압으로부터 약자를 보호해줄 구조적 여건은커녕 한 줌의 성의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사법적 절차와는 별도로, 대학원생과 교수의 실제적 터전인 학교가 인권침해 사건을 다룰 수 있는 자체적인 제도와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서울대, 중앙대, 카이스트처럼 대학인권센터를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장폐천-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가’. 스스로 ‘성추행 피해학생의 동기들’이라고 소개한 대학원생들 역시 이같은 제목의 대자보에서 “고려대학교는 평소와 다른 신속한 사표 수리 결정으로 ‘제 식구 감싸기’를 일관하고 있습니다. 교수 스스로가 떳떳하다면 학교 행정 절차에 따라 스스로 억울함을 밝혀 명예를 지키면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서울대와 고려대 학교 당국의 대응 조처를 조목조목 비교하며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잘못된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학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이윤아(27·가명)씨는 “피해 학생이 씻기 힘든 고통을 안고 살아가게 됐는데 지도교수는 아무 불이익도 받지 않고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피해 학생의 고통을 치유하고 또 다른 학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명백한 진상 조사가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려대쪽 “교원신분 박탈, 최선의 조처”
고려대와 달리 서울대 쪽은 인턴 여학생과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강석진(53) 수리과학부 교수의 사표를 수리해선 안 된다는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지난 12월1일 ‘자연대 교수 관련 사항에 대한 서울대학교 입장’이란 제목의 사과문을 내고 사표 수리 방침을 철회하는 등 발빠르게 후속 조처에 나섰다. 강 교수는 12월3일 서울대 교수로서는 처음으로 ‘성추행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고려대 대외협력처 관계자는 “교내 양성평등센터가 해당 교수에 대해 조사를 시도했으나 조사를 거부해와 징계에 필요한 절차를 밟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표를 수리해 최대한 빨리 교원 신분을 박탈하는 것이 학교 쪽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처였다”고 설명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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