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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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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자위를 합니까?

등록 2001-11-07 15:00 수정 2020-05-02 19:22

무지와 잘못된 통념에 싸여 있던 금기, ‘즐거운 성’을 위하여 공론의 광장에서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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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를 많이 하면 건강에 해로운가요?”(20대 학생)

“질삽입은 물론 음핵(클리토리스)을 자극해도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데 불감증이 아닌가 걱정돼요.”(30대 미혼)

“여자친구가 성관계는 아프다고 피하는데 성기를 애무해주면 흥분합니다.”(20대 미혼남성)

“남편에게 자위하는 사실을 들켰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40대 기혼)

“성행위 때 흥분하지 못하는데 자위를 하면 도움이 될지, 자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30대 기혼)

여성의 고민, 고민들…

몇몇 인터넷 성상담코너에 오른 질문들이다. 이 질문에 대해 비뇨기과 의사들조차 100% 꼭 맞는 정답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다. 그만큼 성은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인 문제이다. 특히 ‘여성의 자위’는 줄곧 개인적인 영역에만 묻혀 있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여성운동의 오랜 화두를 되새기지 않더라도, 여성의 성에는 언제나 가부장적 전통이 뒷받침된 ‘정치적인’ 배경이 깔려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고전적 주제이나 ‘여성에게도 성욕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우리 사회에서 불과 몇년 전까지 논쟁이 되곤 했다. 아주 오랫동안 여성은 ‘성의 주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 수많은 금기가 생겨났고, 그 금기는 남성은 물론 여성 개개인에게도 왜곡된 관념과 은밀한 환상만 남긴 채 ‘성의 기쁨’을 앗아갔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의 자위’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웬만한 나이가 되면 남성의 자위에 대한 정보는 갖고 있다. 그러나 여성 스스로도 여성의 자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체험도 없고 정보도 없다. 한국성의학연구소(이윤수 비뇨기과 부설)가 성인여성 1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대다수는 자위를 해본 적 없거나(70%), 현재는 하고 있지 않다(18%). 다른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과반수는 자위를 통해 오르가슴에 이르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또다른 상담내용을 보자.

“남편과 저는 서로를 존중해주고 주변에서는 이상적인 부부라는 부러움을 삽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결혼 전에는 한달에 두번 정도 관계를 가졌는데 결혼하고 몇달 뒤부터는 성생활이 뜸해졌습니다. 심지어 올해는 딱 한번의 관계를 가졌습니다. 얼마 전 남편이 말하더군요. 결혼 전에는 제가 성행위를 즐기는 줄 알았는데, 별로 즐거워하지 않는다고.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어서 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남편은 자위를 권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이 어떤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 말이 상처가 됩니다. 전 이제 남편과 섹스할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성욕을 느끼면서도 성행위 때 쉽게 흥분하지 못하는 제가 문제인 듯싶습니다.”(결혼 2년차 주부)

공개상담실에 오른 이 글을 몇 군데 건강사이트와 여성포털사이트 운영자에게 보내 보았다. 돌아온 답변은 여러 가지였다. “진지한 대화로 풀라”는 점잖은 충고에서 “혹시 그동안 좋지도 않으면서 좋은 척한 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라”는 책임론에 이르기까지 여러 스펙트럼을 그렸다. 그렇다면 상담을 청한 이 여성의 경우 자위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문일 수 있지만, 많은 여성에게는 결코 우문이 아니다.

성담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90년대 이래 우리 사회에서 성은 ‘봇물터진다’는 표현이 들어맞을 정도로 공개적인 담론의 광장에 거리낌없이 등장했다. 한쪽에서는 포르노와 음란물에 대한 경고가 넘치지만 다른 쪽에서는 의미있는 성교육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이른바 성의 사회화 과정을 거쳐가는 중이다. 그런데 뭔가 빠진 게 있다. 영페미니스트들의 모임인 ‘달나라딸세포’의 편집위원 이소리(28)씨는 “심지어 공중파에서 청소년의 자위에 대한 도움말까지 나오지만 여성의 자위는 없는 걸로 치부한다”고 불만스러워한다. 이씨는 이 사이트의 웹마스터로 일하며 자위에 대한 궁금증들이 쏟아지는 걸 보고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정말로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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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자위란 언론매체의 선정적인 페이지를 장식하는 판타지의 한 종류이거나 여성학 이론서에 나오는 이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자위를 하고 싶지 않다거나 생활에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몇년 전 한 친구는 자신은 샤워기를 이용해서 한다며 섹스보다는 자위가 더 즐겁다고 귀띔했다. 샤워기를 이용하는 방법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나만의 자위방법을 알고 있다.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느낌이다. 중요한 건 구성애 아줌마의 말처럼 오이를 넣는 것도, 뭔가를 질 속에 넣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의 자위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못했을 뿐 온라인상이나 친교모임에서는 꾸준히 이야기되는 주제이다. 11월23, 24일 콘서트를 앞두고 있는 가수 지현씨의 대표곡은 <마스터베이션>. 지난해 안티미스코리아페스티벌에 처음 선보인 이 노래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소리소문없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현씨는 “어릴 때부터 남몰래 고민해온 문제에 대해 사람들과 함께 호흡해보고 싶었다”고 곡을 만든 취지를 설명한다. “주로 여성 관련 행사에서 부르는데 사람들이 처음에는 놀라워하다가 곧이어 무척 즐거워한다.”

서울 이화여대 앞에서 성생활용품점을 운영하는 김영업(52)씨는 “6년 전 문을 열었을 때에는 남자 이용객이 훨씬 많았으나 이제는 남녀 이용객의 비율이 거의 반반”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섹스숍 1호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이 가게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것은 마사지기와 남성성기 모양을 본뜬 여성용 자위기구들. “언젠가 노부부가 함께 와 진동 자위기구를 사간 적이 있다. 가게를 하다보니 온갖 상담도 하게 되는데, 파트너가 없는 사람은 물론이고 파트너와 좋은 관계를 위해서 기구를 찾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면 ‘여성의 자위’가 빗장이 풀린 걸까? 최근의 흐름만 갖고 예단하기는 힘들다. 비뇨기과 전문의 이윤수씨는 “오르가슴 장애가 있는 사람에 한해 자위를 권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자위를 섹스의 한 형태로 적극 설파하기에는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형서점의 건강과 여성 관련 코너에는 각종 성생활지침서들이 꾸준히 비치되고 있다. ‘부부를 위한’이라는 제목이 점차 사라지고 ‘스스로 즐기는’이나 ‘여성을 위한’ 등의 부제가 따르는 책이 나오는 것 역시 눈길을 끈다.

정보가 없다보니 엉뚱하게 알려져

여성의 성을 구체적이고 도발적으로 다뤄 지난봄 잇따라 화제가 됐던 <버자이너 모놀로그>(북하우스 펴냄)와 <아주 작은 차이>(이프 펴냄)에 이어 이번에는 여성의 자위에 관한 가이드북 한권이 출판을 앞두고 있다. 11월 중순 나올 예정인 <네 방에 아마존을 키워라>(원제 Sex for One, 현실문화연구 펴냄). 지은이 베티 도슨은 뉴욕에서 활동하던 화가 출신으로, 성학(Sexology)으로 박사학위를 따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정력적으로 대중강의를 하는 성전문가이다. 74년 초판 발행 이래 96년까지 4차례 개정판을 내오며 미국 등 영어권지역 여성들의 성교과서로 읽혀온 이 책은 베티 도슨이 30년간 꾸려온 바디섹스그룹(성워크숍)의 임상보고서이기도 하다. 베티 도슨은 여성들에게 “적극적으로 자위하라”고 권고한다. “자위는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행위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 몸을 잘 모르는 이에게 만족할 섹스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남성보다 특별한 여성의 오르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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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자위를 해도 되는지 묻고, 다른 쪽에서는 자위를 적극 권하는 가이드북이 나오는 게 우리 사회 여성의 성이 처한 현실이다. <아주 작은 차이>를 번역한 김재희(여성포털사이트 w21.net 기획이사)씨는 “여성의 성이 여성의 시각이 아닌, 남성의 시각에서 논의됐기 때문에 정복하거나 보호할 그 무엇으로만 여겨질 뿐, 탐색과 연구의 대상이 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그 이유를 분석한다.

실제 청소년 성상담실에는 여성의 자위에 대한 질문이 간간이 들어오지만, 대부분 남자청소년들의 질문이다. ‘아하! 성문화센터’ 박현이 상담부장은 “아이들에게 여성의 자위에 대해 설명해주면 모두 눈이 동그래진다”고 말한다. 성교육이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일부 학교현장에서마저 남성의 자위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는 반면, 여성의 자위에 대해서는 특별히 다루지 않는 탓이다. 박 부장은 “정보가 없다보니 여성의 자위에 대해 전혀 엉뚱하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실제 청소년들이 자주 들어오는 상담사이트에 가면 “여자친구가 자위를 하면 레즈비언이 돼 나를 만나지 않을까 겁난다”라는 남학생의 질문이나 “우연히 목욕을 하다 흥분한 적이 있어요. 혹시 제가 변태가 아닐까요?”라는 여학생의 질문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여성의 자위에 대해 잘못된 신화와 통념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자위를 하면 소음순이나 질의 모양이 변한다거나,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성감이 떨어진다는 식의 내용이다.

자위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현대의학에서는 여성의 경우 음핵(클리토리스)을 통해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질삽입으로 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이 음핵이 질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근육으로 둘러싸인 여성의 질은 그 자체로 쾌감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여성의 오르가슴은 남성과는 달리 나이가 들수록 더 농밀해질 수 있고, 대체로 노년기에 이르러서도 음핵의 감각은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여성지와 인터넷매체 등에 성 관련 글을 많이 써온 프리랜서 박지은(가명·35)씨는 “내 경우에는 이론에만 강하고 실전에는 약했다”고 자신의 체험을 털어놓는다.

“우리 부부는 늦게 결혼해 성관계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매번 너무 격렬하고 너무 빨리 끝났다. 나는 아마도 삽입섹스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날 남편이 곯아떨어진 다음에 자위를 했다. 오랜만에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이 들을까봐 소리를 내지 않느라 힘들 정도였다. 그뒤로는 틈틈이 성관계 전이나 뒤에 자위를 하곤 했다. 어느날 남편에게 자위를 해보자고 권했다. 남편은 약간 당황하는 눈치였다. 우선 남편의 자위를 도와주고, 그 다음에 내가 자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알고 보니 남편 역시 나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늘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뒤로 우리 부부는 편하게 누워 서로를 만지며 자위를 하기도 하고, 천천히 느리게 성관계를 맺기도 한다. 전에는 성관계 다음날 늘 뻐근한 기운이 남았는데 요즘에는 상쾌하다.”

여성의 성에 대한 사회적 맥락을 중요하게 여겨온 여성학자들은 “성관계에서 만족을 얻으려면 사랑에 대한 환상을 경계하라”고 말해왔다. 그 결과 상당수의 여성은 성관계 자체를 두려워하고 상당수의 남성은 성적실패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성관계의 대안? 성관계의 일부!

베티 도슨은 “즐거운 성은 지식과 인내가 따라야 한다”고 충고한다. 실제로 그가 이끄는 워크숍에서는 참가 여성들이 남성과 같은 성관계의 포즈를 취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삽입 뒤 사정에 이르는 3분 남짓한 ‘통계상의 시간’ 동안 팔꿈치나 손바닥으로만 몸에 힘을 지탱한 채 움직여본 여성들은 이런 자세를 힘들어했다. 거꾸로 남성 참가자에게 여성의 포즈를 취하게 해도 마찬가지였다. 베티 도슨에 따르면 “남성은 타잔, 여성은 제인식의 전통적인 성역할이 무의식적으로 내재돼 있거나 그것만이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한 삶의 반쪽을 영영 이해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긴 체험이기도 하다.

자위를 통해 부부관계의 새로움을 찾게 됐다는 프리랜서 박씨는 이렇게 말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기가 무엇을 갖고 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자위는 성관계의 대안이 아니라, 성관계의 일부라는 이야기이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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