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0일 울산 동구 봉수로 울산과학대학교 본관 앞, 30명 남짓의 노동자가 모였다.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외친다.
“지금부터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노동탄압 규탄집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학생 몇 명이 쫓아온다. 그중 한 명은 총학생회장이다. 학생회 선전물에서 얼굴을 본 적 있다. 학우들에게 항상 ‘올인’하는 총학생회장이라고 했다. 그래서인가, 총학생회장의 얼굴이 굳었다. 학우들의 시험 기간이기 때문이다
“시험 못 봐서 인생 망치면 책임질 겁니까?”
자식 같은 학생, 부모 같은 노동자
고등학교 3학년이 최고 벼슬이고, ‘명문’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성공의 척도인 사회이기에 총학생회장의 말에 흠칫한다.
“자식 같은 학생들 생각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부모 같은 이들이 왜 학생들 생각은 안 해줄까 싶다. 시선을 돌리니 젖은 생쥐 꼴로 빗물 흐르는 바닥에 주저앉은 청소노동자들이 보인다.
‘청소노동자들이 학생들의 학업권에 피해를 준다.’
이것이 울산과학대의 주장이다. 총학생회 입장도 같아 보인다. 학업권 피해라는 것은 소음과 쾌적하지 못한 공간일 텐데,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130여 일 동안 청소 일을 멈추고 생활임금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고 있다. 대학은 파업 농성에 대해 업무방해 가처분 신청을 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퇴거 불응에 따른 강제이행금이 하루에 1명당 30만원씩 부과됐다.
법원의 결정 뒤 보름을 버티고, 파업에 참여한 이들이 모두 합해 7천만원가량의 벌금을 내야 하는 형편이 된 10월20일 아침, 법원이 고용한 집행용역들이 농성장에 들이닥쳤다. 청소노동자들은 맨발에 슬리퍼 꿰차고 잠옷바지 입은 채 본관 밖으로 끌려나왔고, 농성장은 철거됐다. 하필 비가 내렸고, 서넛씩 모여 비닐 한 장 머리 위에 덮어썼다. 이들 나이가 예순 전후이고, 학생들이 막내 자식 같아 보일 나이다.
이것이 노동조합이 대학 교정에서 규탄집회를 벌인 이유다. 총학생회는 항의했고, 노동조합 관계자들은 오히려 학생회가 나서 학교에 말을 해달라고 했다. 노동조합 쪽은 “대학이 파업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계속된 면담 요청에도 대학 쪽은 공식적인 답이 없다.
대학 쪽의 태도는 분명하다. 대학이 직접 고용한 직원이 아닌, 청소용역·파견업체 소속의 간접고용 노동자다. 고로 대학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울산과학대학교 미화용역업체 대표이사 일동’ 명의의 입장이 담긴 성명을 교내에 부착했다. 같은 내용의 가정통신문이 방학 중인 학생들에게 전달됐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에게 전국 최고 수준의 임금을 제공해왔다.”
땅 주인의 ‘명’ 받드는 학생들전국 최고 수준이라는 월급을 보자. 기본급 월 108만원에 성과급 100%, 여름휴가비, 명절 귀향비. 이를 합산하면 연봉 1550여만원. 기본급 108만원을 시급으로 계산하면 5210원. 2014년 최저임금이다. 이 금액이 동종 업계 최고 대우라는 주장은 두 가지 가능성을 담고 있다. 거짓이거나, 청소노동에 대한 임금이 낮아도 너무 낮거나.
대학의 ‘최고 임금’ 주장에 따라, 일부 언론은 전국의 청소용역 노동자 임금을 두고 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월 100만원에 못 미치거나 살짝 넘는 고만고만한 임금에 대해 ‘많고 적음’이 논해졌다. 정신만 약간 차리면,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청소노동자 월급이 끽해야 100만원대 초반이라는 사실이다.
청소노동자 대부분의 나이가 예순이다. 이쯤 되면 배우자 없이 홀로 남겨진다. 자식이 결혼을 한다. 혼수를 하고 집을 해간다. 높아지는 실업률에 직장을 잃고 돌아온 자식도 있다. 2013년 법원이 산정한 1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85만8252원(2012년 민주노총 산정 1인 가구 ‘표준’생계비는 187만2294만원). 100만원 남짓한 돈으로 한 달 살기 빠듯하다. 남는 돈이 없다. 노후가 걱정된다.
그럼에도 다들 그 수준으로 받으니 불평해서는 안 된다? 이를 거부하고 파업에 들어간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주장은 ‘생활임금’에 상응하는 임금 인상이다. 이들은 현수막과 교정 나무에 매단 ‘소원 리본’에 썼다.
‘일하고도 빚지고 삶, 더 이상은 못 살겠다.’ 이 현수막과 리본은 교수와 학생들의 손에 의해 떼어졌다.
지난 10월16일, 울산과학대는 총장과 교직원, 교수, 학생들까지 500여 명이 동원된 행사를 열었다. 참여한 이들의 임무는 교정 곳곳에 달린 리본 끈과 파업 현수막을 떼는 것. 총장이 직접 칼을 들고 다니며 현수막을 떼는 광경이 청소노동자들이 찍은 사진에 담겼다. 당시를 기록한 영상과 음성녹음 파일 속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해맑았다.
“학생들! 이거 누가 떼라는데?” “교수님이오.”
다른 학생이 말한다. “땅 주인이 자르라는데, 잘라야죠.” “땅 주인이 누군데?” “총장님이오.”
일부는 얼굴을 가리고 도망가기도, 몇몇은 개의치 않고 깔깔 웃기도 했다. 학점을 주거나 수업시간으로 인정해준다고 해서 나왔다고 말한 학생도 있었다. 노동조합이 ‘학점을 빌미로 노동탄압에 학생을 동원한 사실’을 문제 삼았으나 울산과학대는 ‘사실무근’이라 부정했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는 “학생들의 자발적 봉사”라 말하기도 했다(울산과학대는 10월1일 ‘클린캠퍼스’라는 봉사활동 캠페인단을 발족했다).
동원과 자발의 경계는 애매하지만, 교직원과 교수가 일부러 감춘 사실만은 분명하다. 교내 파업 관련 시설물은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인해 법원의 관리 대상이 되었다. 이를 임의로 훼손하는 행위는 법의 처벌을 받게 된다. 사건 발생 며칠 전, 교직원 1명이 현수막을 철거하다 현행범으로 이송된 일이 있었다. 교수와 교직원들은 학생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그 결과 수백 명의 학생들을 위법행위로 이끌었다.
현수막과 함께 버린 더 나은 미래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이날 울산과학대는 파업 현수막만 버린 것이 아니다. 권리와 관용 등 많은 것들이 함께 버려졌고, 그중 가장 큰 것은 예비 노동자인 학생들의 미래다.
생활임금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를 거부한 채, 학생들은 ‘소수점 몇 자리가 달라지는 학점 때문에 내 인생을 망칠까’ 마음 졸인다. 이들이 도서관에 앉아도 시대는 흘러가고, 비정규직 800만 시대가 왔다.
100만원 남짓한 월급조차 과한 것이 아니냐고 되묻는 사회가 졸업 뒤 학생들이 발 디딜 곳이다. 울산과학대와 같은 태도로 노동을 대하는 고용주와 기업이 어떤 제재도 받지 않는 사회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간접고용, 저임금 노동이 지뢰밭같이 놓인 현실에서 발 아래 지뢰를 피해 위태롭게 뒤뚱거리는 예비 노동자들. 뒤뚱거리는 삶이 변화할 가능성을, 학생들은 제 손으로 철거한 것이다.
울산=글·사진 희정 기록노동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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