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본연의 결과 질감을 살려 가구를 만드는 충남 태안의 목수 이중희(왼쪽)씨 가족. 이중희씨의 작업실에는 이씨가 직접 딸을 위해 만든 그네가 걸려 있다. 목수의 작업실은 딸의 놀이터이자 아내와 함께 일하는 공간이다.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금리. 자동차로 10분 거리엔 너른 개펄을 품은 서해 바다가 있고, 소나무 숲이 아늑하게 에워싼 마을. 그곳에 ‘나무작업실 숲’이 있다. 목수 이중희(38)씨가 나무를 다루고 가구를 만드는 곳이다. 10월7일, ‘나무작업실 숲’ 옆엔 이중희씨 가족이 살 집을 짓는 일이 한창이다. 목수 부부 단둘이서 짓고 있다. 목수의 아내 김소연(37)씨는 작업실 앞에 ‘먹는 정원’을 만드는 중이고, 5살 딸 미루는 유치원을 다녀오면 나무작업실에서 열심히 논다. 이중희 목수는 6년 전인 2008년 충남 서천에서 목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 전에는 인테리어, 마을 축제를 위한 시설물 공사 등을 했다. 그때는 기술자에 가까웠다면, 2008년부터는 우리 숲의 나무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가구를 만드는 예술가에 가깝다. 지난 4월 ‘서천 시대’를 마감하고 목수의 고향인 태안으로 작업실을 옮겨 집을 짓는 중이다.
이중희 목수는 학교에서 목수일을 배우지 않았다. 태안에서 나고 자란 그는 “7살 즈음 아버지에게서 나무 깎는 자귀질을 처음 배웠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주변 산에 굴러다니는 나무를 주워다 농기구 등을 직접 만드시는 걸 보고 자랐다. 그게 몸에 익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내 김소연씨는 최근 펴낸 세 가족의 시골살이를 담은 책 에서 “그는 사람을 선생으로 두지 않는 부류의 목수였다. 그가 얻은 가르침은 나무와 실제의 물건으로부터 왔다”고 썼다. 버려진 고가구에서 짜맞춤을 공부하고, 폐가의 부서진 솥뚜껑에서 쐐기박기를 익히는 식이다.
그 때문에 목수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가구를 만들어왔다. 6년 전, 그가 처음 만든 좌식의자(사진1)는 “밭에 그늘을 지우니, 쓸데없이 장독만 가리니, 손 가는 게 귀찮으니” 마을 어르신들이 베어가라고 한 매화·살구·참죽·아카시아 나무를 짜맞춰 만든 것이었다. 나뭇가지의 굴곡을 매끈하게 깎아내지 않고 그대로 살려 휘어진 부분에 등을 편하게 기대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의자는 숲의 나뭇가지 몇 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이 모양새는 나무 본연의 모습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가구를 만드는 목수의 목공 철학을 보여준다.
문제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만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매화와 살구나무가 터서 갈라졌다. 목수는 그제야 “건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읊조렸다. 게다가 살구나무, 매화나무 같은 낙엽송은 나무가 달달해서 벌레들이 좋아한다. 그때 만든 의자에는 벌레구멍이 송송 나 있고, 지금도 나무가루가 나온다. 아직도 벌레가 나무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몸소 겪으며 지금은 살구나무 같은 달달한 나무는 가구 목재로 쓰지 않죠.”
시행착오를 거치며 6년이 흐른 지금, 나무 본연의 성질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목수의 철학은 변하지 않았다. “원목의 형태가 잘 살아 있는 탁자의 제작”을 의뢰해온 한 주문자에게 목수는 휘어진 모양을 그대로 살려 베고 건조해둔 소나무 원목을 보여줬고 의뢰인은 그것에 만족했다. 나무 본연의 형태가 살아나 역동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탁자(사진2)가 됐다. 최근 만들고 있는 아내를 위한 의자의 앉는 부분 양쪽 가장자리는 소나무 껍질을 그대로 살렸다.
시골 목수 이중희씨는 가구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나무를 직접 구해서 베고 건조·보관·제재하는 작업도 한다. 나무를 다듬을 때는 나무 본연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다.
나무 본연의 모습을 살리는 건 목수가 직접 나무를 구해 베고 건조·보관·제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목수는 가구 작업 틈틈이 숲과 마을을 돌며 나무를 보러 다닌다. 시골에선 누구네 집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어떤 나무가 지금 애물단지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어르신들이 “이 나무 좀 베어가라” 할 때도 종종 있다. 속이 꽉 찬데다 나뭇결까지 훌륭한 참죽나무, 감나무, 은행나무도 다 그렇게 구했다. 태풍이라도 지나가면 피해 상황은 안타깝지만, 목수에겐 대목이다. 강한 바람에 쓰러진 나무를 점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쓰러졌다고 즉각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의 수분이 내려가는 11월부터 죽은 나무에 곰팡이가 슬지 않는 3월까지가 정부가 허가한 벌목 기간이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목수는 누가 나무를 가져갈까 전전긍긍한다. 이름표라도 붙여두고 싶다. 이러저러한 사연을 갖고 만난 나무를 목수는 최대한 본래 모습을 살리는 방식으로 다듬는다. 결대로 쪼개기도 하고, 밑동째 두기도 하고, 나무껍질이 훌륭하면 껍질도 그대로 둔다. 그리고 3년이란 시간을 들여 뒤틀리지 않게 건조한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나무 작업’은 도시 공방에선 하기 어렵다. 도시 공방은 대부분 공장에서 대량으로 제재·건조된 수입 집성목이나 합판을 쓴다. 목수의 작업실이 ‘가구 공방’이 아니라 ‘나무 작업실’인 이유다.
그가 시골 목수를 택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우리 숲에서 자란 나무를 몸으로 직접 만나고 싶어서다. 시골 중 태안을 택한 이유는 가구재로 적합한 소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이중희 목수는 해송을 좋아한다. “육송은 햇볕의 방향에 따라 몸을 비틀며 자라는 반면, 해송은 센 바닷바람을 맞고 커서 한 방향으로만 자란다. 그래서 건조 뒤 나무를 켰을 때 뒤틀림이 덜하다. 또 해송은 나무 자체에 기름 성분이 적어서 기름을 흠뻑 잘 먹어 마감이 잘된다.”
이리하여 이중희 목수가 만든 가구들은 대부분 ‘근흥면 소나무’가 원재료다. 가구 목재의 원산지를 알 수 있는 방식을 그는 ‘로컬 목공’이라고 부른다. ‘로컬 푸드’만 건강한 게 아니라 ‘로컬 목공’도 건강하고 착하다. 반경 100km 이내에 있는 나무로만 가구를 만들기 때문에 그가 쓰는 나무는 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열대림을 훼손하며 벌목되는 것이 아니다. 수입 집성목에서 주로 쓰는 유독성 약품 처리도 걱정할 필요 없다. 이 목수는 “집성목을 켜면 먼지 냄새가 나는데, 근흥면 소나무를 켜면 신선한 솔 향이 난다”고 했다. ‘태안의 한 제실 옆에서 자라던 소나무’ ‘근흥면 송씨 일가의 30년을 지켜봐온 감나무’ 같은 사연은 덤이다.
이 목수는 소중한 나무로 만든 것인 만큼 가구가 그 주인과 평생 함께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최대한 주문자와 많은 대화를 한다. 가구 주문을 받으면 불가피하지 않는 이상 한 번은 꼭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많게는 10여 차례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며 디자인을 이야기한다. 지난 6월엔 경기도 군포에 사는 11살 태우네가 “지금은 엄마와 아들이 나란히 앉을 수 있고, 먼 훗날에는 아이가 짝꿍과 차 한잔 할 수 있는 탁자 겸 책상을 만들어주세요”라는 주문을 했다. 디자인을 조율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지만 목수는 “주문자가 가구를 바라보는 태도가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이 가구와 평생 함께하려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목수의 아내는 목수를 ‘번역자’라 부른다. “주문자가 가구에 자신의 생활과 바람을 담아 제작을 의뢰하면, 목수는 그 이야기를 가구라는 형식으로 풀어내는 번역자 같습니다.”
시골 목수가 짓는 집은 작업실 바로 옆에 있다. 목수가 가구를 만드는 곳이 바로 세 가족의 삶터다. 작업실 앞뒤에서 먹는 정원을 조성하는 일만으로도 바쁜 목수 아내는 ‘매의 눈’으로 가구의 마감을 책임진다. 자칭 “목공실 강아지 7년”으로 웬만한 목공용어는 다 꿰고 있으며 오일 마감은 목수보다 더 꼼꼼하다. “최고의 가구는 ‘추억이 담긴 가구’라고 생각해요. 우리 숲의 발자국이 담긴 목수의 가구가 모든 주문자와 평생 함께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마감을 소홀히 할 수 없어요.” 딸 미루에게 목수의 작업장은 놀이터다. 작업실 한쪽, 잘 짠 공구함의 맨 아래 왼쪽에는 딸 미루의 공구들이 있다. 미루의 분홍색 장갑, 분홍색 삽, 전용 전동드라이버도 있다. 5살 미루는 작업실에서 굴러다니는 나뭇조각에 전동드라이버로 구멍을 뚫고 나사못으로 다른 나무를 고정해 헬리콥터를 만들고, 아빠에게 직접 주문해 얻어낸 싱싱카와 자동차를 타고 작업실 근처를 누비며 엄마의 정원에서 까마중, 앵두, 토마토를 따 먹는다.
목수 가족의 하루는 땅거미가 내리면 저절로 끝난다. 야근은 어지간하면 없다. 산과 들로 둘러싸인 작업실은 어두우면 그걸로 끝이다. 목수의 아내는 인터뷰가 끝난 뒤 전자우편으로 하루가 마감되는 풍경을 전했다. “사위가 어두워질 때 기계와 바닥에 쌓인 톱밥을 부대에 쓸어담습니다. 소지품을 챙기고 전깃불을 끄고 꼬리 치는 문지기 나무(목수가 키우는 풍산개)에게 인사하고 미루가 놀던 나뭇조각과 볼트·너트를 정리하고 세 식구가 손을 잡고 함께 집으로 올라갑니다(집이 지어질 동안 근처 부모님 댁에서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올라가며 달을 보고, 숲 속에 살지도 모를 도깨비에 대해 얘기하고 길바닥에서 혹시 만날지 모를 독사를 조심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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