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가 10월1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앞으로 감청 영장을 거부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지난 10월13일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는 머리를 숙였다. 며칠 전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식에서 활짝 웃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초췌한 모습이었다. 긴급기자회견장에는 원래 책상이 놓여 있었지만, 이 대표는 책상을 치우고 서서 말하겠다고 했다. 앉아서 ‘사이버 사찰’ 논란에 대해 사과할 순 없었다. 이 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감청영장에 대해 집행에 응하지 않겠다. 실정법 위반이라면 그 벌은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압수수색 집행 기간 ‘밴드 가입 이후~2013년 12월’이석우 대표가 감청영장 집행에 불응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이버 사찰’ 논란은 일단 잦아드는 모양새다. 사이버 사찰 논란은 9월16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촉발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국민의 불안이 쌓이게 돼서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법무부와 검찰이 철저히 밝혀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작 국민의 불안을 걷잡을 수 없게 만든 장본인은 검찰과 경찰이었다. 대검찰청은 9월18일 네이버·카카오 등을 불러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었다. 검찰은 9월25일 허위사실 유포 행위에 대해 상시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검찰의 ‘사이버 유언비어·명예훼손 상시점검 방안’ 자료를 보면, 검찰은 “인터넷 모니터링 시스템을 활용해, 유언비어·명예훼손의 주요 타깃으로 지목된 논제와 관련된 특정 단어를 입력·검색하여 실시간 적발, 증거 수집”을 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포털사와 핫라인을 구축해 실시간 정보와 관련 자료를 공유”하겠다고 했다.
시민들의 불안감은 갑자기 커졌다. 인터넷을 실시간 감시하고 포털사와 핫라인을 구축하겠다는 검찰의 엄포에 ‘엄지손가락’들은 사이버 망명을 택했다. 검찰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감시 대상이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스마트폰 메신저 서비스를 카카오톡 대신 국외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 등으로 옮기는 행렬에는 갈수록 불이 붙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10월1일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폭로였다. 정진우 부대표는 서울 종로경찰서로부터 ‘2014년 5월1일부터 6월10일까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대화 상대방의 아이디 및 전화번호, 대화 일시, 수·발신 내역 일체, 그림 및 사진 파일 전체를 압수수색’했다는 내용을 통보받았다고 했다. 다음카카오 쪽은 서버에 남아 있던 6월10일치 내용만 수사기관에 넘겨줬다고 했지만, 정진우 부대표에겐 수사기관에 어떤 정보를 넘겨줬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모든 사이버 대화 내용을 들여다보려는 경찰의 움직임도 포착됐다. 10월15일 철도노조 조합원인 박세증씨가 공개한 동대문경찰서의 통지문을 보면, 압수수색 집행 기간은 ‘밴드 가입 이후~2013년 12월’로 돼 있다. 압수수색 대상은 가입된 밴드 및 대화 상대방의 가입자 정보와 대화 내용으로 광범위하다. 박씨가 네이버 서비스인 밴드에 가입한 뒤 남긴 내용을 모두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압수수색영장을 받고 “가입한 밴드 이름만 제공했고, 채팅(대화) 내역은 없어서 대화 상대방의 인적 정보 및 대화 내용은 제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밴드는 카카오톡과 달리 주로 게시판 서비스이기 때문에 대화 내용 제출을 피해간 것이다.
‘썸’ 타고 있다면 이게 필요할 거야‘사이버 사찰’ 문제는 ‘빅브러더’ 논란으로도 옮겨가고 있다. 다음카카오의 ‘강수’로 실시간 감시에 대한 우려는 잦아들고 있지만, 기업과 정부가 개인정보를 손쉽게 수집할 수 있게 만든 정보기술(IT)의 발달은 시민사회에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과제를 던졌다.
강정수 오픈넷 이사는 지난 10월15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사이버 정치사찰, 어디까지 왔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기업에 의한 감시 가능성을 봐야 한다. 영장을 통해 가져가는 것이 아닌, 기업이 이미 구축하고 있는 개인 이용자에 대한 정보에 국가기관이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장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기업의 데이터 수집 능력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물건을 살 때 내는 신용카드와 포인트 적립 카드는 소비자가 어디서 어느 시간대에 물건을 구매하는지, 어느 지역으로 이동하는지 손쉽게 파악하게 해준다. 기업은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개인의 온라인 이용 패턴까지 분석해 선호할 만한 국외 호텔이나 항공권 등에 대한 정보를 누리집이나 전자우편을 통해 알려주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를 위해 기업은 지속적으로 소비자의 관심사항 등 정보를 수집하고 이른바 ‘빅데이터’에 관심을 가진다. 무작위로 전자우편을 보내는 것보다 대상이 정확할수록 마케팅의 성공률이 높기 때문이다.
SNS인 페이스북 등도 이런 실험을 진행한 것으로 강정수 이사는 전했다. 페이스북은 연애를 하지 않다가 커플로 변한 46만 쌍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보니, 이들은 사귀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서로의 페이스북에 ‘좋아요’(like)를 누르는 게 증가하다가 사귀기 10일 전부터 ‘좋아요’가 감소했다. 직접 만나는 횟수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분석이 정확하다면 사귀는 패턴에 따라 연애에 필요한 데이트 장소, 레스토랑 등에 대한 광고를 보낼 수 있게 된다. 인간의 행위가 패턴으로 예측되는 것이다. 경품 행사 등으로 기업 누리집에 가입시켜 개인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초보적인 활동이다.
페이스북뿐만 아니다. 국내 여러 포털과 SNS 등은 이용자가 자주 보는 뉴스를 분석해 그 사람에게 ‘맞춤형 뉴스’를 제공하려 한다. 연령별·지역별로 분류돼 이미 제공되고 있다. 이를 분석하면 이용자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많은지, 어떤 정치적 성향을 지녔는지 예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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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것은 이 정보의 가치를 국가기관에서 알아볼 때다. 기업은 마케팅이나 광고 등을 위해 이용자 정보를 축적하고 패턴을 파악하지만, 국가가 이 정보를 손에 쥐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케팅 자료는 곧 정치 자료가 된다.
예를 들어 검찰이나 경찰에서 범죄 예측을 하는 데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특정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분석해 이들이 자주 하는 행위와 비슷한 패턴을 가진 개인을 똑같이 추적하는 식이다. 영화는 이미 이런 미래를 상상했다. 2002년 개봉한 는 2054년 살인을 예측해 범인을 미리 체포하는 프리크라임 시스템을 소개한다. 미래에 발생할 살인 범죄를 예지자들이 알려주고, 정부는 이 예언을 근거로 미래의 범죄자를 체포한다.
모든 시민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닌 관리와 감시의 대상이 된다. 컴퓨터는 예지자를 대신하게 되고, 범죄 대신 다른 목적으로 시민을 관찰하고 검열하는 게 가능해진다.
이제야 다음카카오 “투명성보고서 내겠다”지난해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빅브러더’ 논란에 휩싸였다.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연방수사국(FBI)이 ‘프리즘’이라는 일급기밀 프로젝트를 통해 수백만 명의 전화 통화 기록을 수집하고 9개 IT 업체의 서버를 들여다본 사실이 과 등의 언론을 통해 폭로됐다. NSA가 업체 서버를 통해 개인의 검색기록·사진·전자우편·채팅 정보 등을 수집했다는 것이다. 구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애플·유튜브 등이 이 프로젝트에 협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구글 등의 기업들은 “정부가 접속할 수 있도록 백도어(일부러 만들어놓은 보안 구멍)를 제공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은 입수한 자료에 “2012년의 경우, 전년 대비 정보 수집 양이 스카이프 248%, 페이스북 131%, 구글 63% 늘었다고 적시돼 있다”고 전했다.
‘빅브러더’ 논란에 데인 애플은 지난 9월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누리집을 통해 “몇 년 전부터 인터넷 서비스 사용자들은 무료 온라인 서비스를 쓰면 자신이 고객이 아니라 상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광고주들에게 (정보를) 팔 목적으로 여러분의 전자우편 내용이나 웹브라우징 습관을 바탕으로 프로파일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구글 역시 정기적으로 투명성보고서를 낸다. 국가별로 정부기관으로부터 정보 제공 요청을 얼마나 받는지 누리집을 통해 알린다.
그동안 국내 업체는 이런 논란에 무심했다. 다음카카오는 이제야 투명성보고서를 낸다고 밝혔고, 네이버는 검색에 관한 보고서만 있을 뿐 개인정보 보호 보고서에 대해서는 우선 지켜보겠다고 했다. ‘사이버 사찰’ 논란은 업체들이 웹이나 모바일을 통해 이용자 정보를 수집해 이윤을 얻는 데는 집중했지만 개인정보 보호 등에는 소홀했음을 보여준다.
기업들 수집 정보는 늘어만 가는데…반면 기업들이 수집하는 정보의 양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다음카카오는 카카오톡을 바탕으로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카카오페이’, 이용자 맞춤형 뉴스 서비스인 ‘카카오토픽’, 이용자들끼리 쇼핑정보를 공유하는 서비스 ‘카카오픽’을 잇따라 내놓았다. ‘카카오택시’ 등도 계획 중이다. 한 사람이 택시를 타고 어디로 이동하고, 어떤 정치적 성향의 뉴스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지, 어디서 누구를 만나 밥을 먹는지 다음카카오의 서버에만 접근할 수 있으면 다 알게 되는 것이다.
“기업은 이윤 확대를 위해 이용자 정보를 계속 수집할 것이다. 기업이 개인정보를 프로파일링하는 것을 어떻게 제한할 수 있을지, 국가기관으로 정보가 가는 것을 차단할 수 있을지 제도적 장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범국민적으로 스마트폰이 없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지 않나. 투명한 관리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강정수 오픈넷 이사)
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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