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언제, 어느 선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난 그냥 코피인데 저쪽은 쌍코피…. 정당방위가 성립되려면 나머지 한쪽도 코피를 내야 해!” 최근 누리꾼 사이에서 한동안 회자된 웹툰 ‘한국 경찰이 제시하는 정당방위 성립 요건’의 한 토막이다. 단순한 우스개만은 아니다. 야채빵맨이 그린 이 웹툰은 경찰청이 밝힌 ‘경찰 수사 단계에서의 정당방위 8가지 기준’을 기초로 한 것이다.
<font size="3">가정폭력 피해자 정당방위 인정 ‘0건’</font>
경찰은 이 자료에서 △방위행위여야 △도발하지 않아야 △가해자보다 심한 폭력은 안 돼 △흉기나 위험한 물건 사용 안 돼 △상대가 때리는 것을 그친 뒤 폭력은 안 돼 △상대의 피해 정도가 본인보다 심하지 않아야 등의 원칙을 들고 있다. 경찰의 이같은 원칙이 공개되면서 누리꾼들의 빈축을 샀지만 기실 경찰은 어디까지나 ‘적법한 범위’에서의 정당방위 요건을 안내한 것뿐이다.
정당방위권은 로마법 이래 자연법상 권리 중 하나로 인정돼왔다. “누구도 자신에 대한 침해를 방관할 필요가 없다.” “법은 불법에 양보할 필요가 없다.” 정당방위권을 이해할 수 있는 두 개의 열쇠다. 단순히 자기방어를 한다는 의미를 넘어, 형법 안에서 정당방위는 개인의 자유권과 사회질서라는 가치의 균형점을 형성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경우는 많지만 정당방위가 인정된 판례는 드물다. 특히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남편 살해사건에서는 한 차례도 정당방위가 인정된 적이 없다. 이는 해외 사례에 비춰봐도 예외적이다.
2012년 프랑스에서는 남편의 지속적인 구타와 성폭력에 시달려온 한 여성이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정당방위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담당 검사는 “그녀가 남편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공권력의 불충분한 개입과 사회적 무관심이 낳은 결과”라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2006년 남편을 총으로 쏴 죽게 한 가정폭력 피해자가 2010년 정당방위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우리 형법이 정한 정당방위의 성립 요건이 지나치게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형법은 ‘상당한 이유’, 상당성을 정당방위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상당성의 개념 자체가 일반적이고 추상적이어서 해석자의 태도에 따라 정당방위의 허용 범위 내지 한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사회통념’에 준해 상당성을 평가하는 지금의 분위기에선 소수자가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정당방위 인정과 관련해 대법원이 보여온 보수적인 태도도 하나의 이유다. 한 로펌 소속 변호사는 “정당방위를 대법원이 잘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일선 경찰서나 하급심 법원에서도 되도록 정당방위를 주장하기보단 형량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font size="3">양날의 칼처럼 </font>물론 정당방위에 대한 폭넓은 해석은 양날의 칼과 같다.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미국 사회에선 ‘정당방위’가 자주 논란의 중심에 선다. 지난해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지머먼 사건’이 대표적이다. 자율방범대원인 조지 지머먼이 무고한 흑인 소년에게 총을 쏴 숨지게 한 사건이지만, 플로리다주 법원 배심원단은 이를 정당방위로 인정해 무죄 평결을 내렸다. 소년이 먼저 자신의 얼굴을 때렸고 콘크리트 조각을 손에 들고 있었다는 주장이 인정됐다. 정당방위권이 “누구나 자신에 대한 침해를 방관하지 않도록” 하는 권리로 인정되려면 법의 내용이 아니라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중요한 셈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font color="#C21A1A">■ 참고 문헌 </font>‘정당방위의 근본사상에 관한 연구’, 최석윤, (2010)
‘정당방위의 상당성 요건에 대한 해석론’, 김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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