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펼쳐진 인공의 초록. 골프장은 먹이사슬의 끝과 끝을 잇는다. 한번 들어가면 걸어서는 쉬 나올 수 없는 고립의 공간에서, 돈으로 벽을 둘러친 자연 속에서, 아직 낡은 욕망이 거래되는 그린의 골짜기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만난다.
젊은 귀족 자제를 가리키는 프랑스어 ‘카데’(cadet)에서 유래한 골프 경기보조원 캐디는 오늘 대한민국의 그린 위에서 그 기원과 멀리 떨어져 있다. 알려진 대로 벌이는 비교적 넉넉하나 그 이상 몸과 마음이 골병 든다. 한국의 골프 인구는 500만 명에 육박하지만 골프문화의 발전은 산업의 성장세를 뒤따르지 못했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에게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망신은 그 구태의 단면이다. 경기보조원 최초의 노동조합을 구성했다가 해고된 김경숙 전 전국여성노조 88컨트리클럽 분회장 등 전·현직 여성 경기보조원 4명의 목소리를 통해 경기보조원들의 삶과 바람을 재구성했다.
가슴 아니고 모자에 명찰을 다는 이유그 ‘애기’, 참 대단하다. 얼마나 참았을까. 성희(32·가명)씨는 뉴스를 보며 분이 끓었다. 홀마다 성추행을 당했는데, 아홉 번째 홀에 가서야 23살의 캐디는 제 자존을 희롱하는 권력자의 손에서 벗어났단다. 경기보조원 경력 10년을 넘긴 성희씨는 자신이 교육했던 후배들을 떠올렸다. “하여간 높은 자리에 있는 인간들일수록 더하다니까.”
경기보조원 1명과 ‘내장객’(골프장 방문객) 4명을 태우도록 고안된 카트에 어쩌다 실습차 수습 경기보조원들을 태울 일이 있으면 영감들은 제 옆에 젊다 못해 어린 캐디를 앉히려 혈안이었다. “아이고, 우리 애기 왔네.” 은근슬쩍 허리나 허벅지를 만지면 20대 초반의 신입들은 수치심에 어쩔 줄 몰랐다. 괄괄한 성격의 성희씨는 그 꼴이 보기 싫어 일부러 자신이 가운데 자리에 앉아 어린 후배를 영감들로부터 떼어놓곤 했다.
골프장에선 다른 스포츠에 비해 유독 성적인 은유가 자주 동원된다. 스포츠보단 접대의 장으로 먼저 구축된 한국 골프문화의 영향일 것이다. 원래 하던 백화점 일보다 돈이 된다는 이유로 갓 스물을 넘겨 캐디 일을 시작했을 때 성희씨도 점잖은 체면의 남성들이 쏟아내는 음담패설에 치를 떨곤 했다. “이름 좀 보자며 가슴에 단 명찰을 더듬는 일이 하도 많아서 대부분의 중견 캐디들은 명찰을 아예 모자에 달아요.”
대한골프협회의 골프 규칙을 보면 ‘캐디’는 규칙에 따라 플레이어를 원조하는 사람이다. 크게 경기를 위한 전문직인 프로 캐디와 골프장에 전속돼 내장객을 보조하는 하우스 캐디로 나뉜다. 전국 400여 개 골프장과 계약을 맺고 일하는 하우스 캐디는 4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그들 역시 단순한 짐꾼이나 서비스직만은 아니다. 목표 거리 측정, 장애물·그린 상태에 대한 조언 등을 능숙하게 해내야 한다. 경기보조원의 노동에는 경험치에 따른 전문성의 영역과 서비스의 영역이 혼재돼 있다. 골프를 ‘스포츠’로 즐기는 이들이 경기보조원을 전문지식을 갖춘 안내자로 대우하는 데 견줘 ‘접대’나 ‘과시’ 행위로 즐기는 이들이 그날의 짐꾼이나 몸종쯤으로 부리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일단 라운딩을 나서면 내장객의 수준이 어떠하건 경기보조원들은 그날의 캐디피(일당)를 주는 내장객에게 군말 없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골프장에서 캐디들은 그날의 경기가 끝나면 내장객으로부터 직접 캐디피를 받는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지만 마치 ‘팁’처럼 생색이 난다.
윤주(35·가명)씨는 과거 여당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했던 한 전직 장관을 최악의 내장객으로 꼽았다. 제발 그 전직 장관이 국회의원에 당선돼 자신이 일하는 골프장에 오지 않기를 기도한 적도 있다. 그린에 나서면 그는 먼저 셔츠의 단추를 풀고 목을 내밀었다. “아가야.” 사지 멀쩡한 그의 목에 왜 꼭 캐디가 손수건을 감아줘야 하는지 윤주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매 홀마다 성추행당해도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해”카우보이 모자를 즐겨 쓰던 전직 장관은 매 홀마다 모자를 벗고 머리를 내놨다. 그가 숱 없는 머리를 드러낼 때마다 동반한 경기보조원은 냉수를 채워온 아이스박스에서 손수건을 빨아 그의 머리에 얹어줘야 했다. 18홀 골프장이었다. 약한 비가 오면 비옷도 입지 않은 채 그에게 우산을 받쳐줘야 했고 거센 비가 오면 라운딩을 재개할 때까지 클럽하우스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그들 일행을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골프장엔 또 얼마나 자주 오던지! “모든 공직자가 그렇진 않겠지만, 전 공무원이라면 치가 떨려요.” 윤주씨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야”라고 불리는 일은 다반사다. 걸핏하면 욕을 내뱉는 내장객도 있다. 내기 골프를 하는데 경기보조원이 실수로 거리를 못 맞추면 욕이 날아온다. 20년 넘게 경기보조원으로 일해온 남희(46·가명)씨는 “손님한테 갈×(남자들에게 몸을 파는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 같다는 말도 들어봤다”고 했다. “미친 ×들, 썩을 ×들.” 여자에게 원수진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여성 경기보조원들을 싸잡아 욕하는 내장객도 있었다. “고객이 따귀를 때려도 참고 경찰을 안 부르는 건 그 사람이 나한테 돈을 주니까 그런 거예요.” 남희씨가 이를 꼭 물고 말했다.
5~6시간의 라운딩 시간 동안 내장객의 추태를 감당하는 것은 고스란히 경기보조원의 몫이다. 경기보조원들은 그게 더 갑갑하다. 한두 차례라면 실수로 넘어갈 일이겠지만 한번 희롱을 시작한 내장객들은 대개 골프장 쪽의 적절한 제재가 없으면 같은 폭력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박희태 전 의장을 고소한 경기보조원 역시 매 홀마다 성추행을 당하고 골프장 쪽에 캐디 교체를 부탁했다고 주장한다. “여러 번 추태를 부리는 손님을 경기과에 보고해도 어느 골프장이나 답은 비슷해요. ‘야,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넘겨. 네가 어떻게 했기에 손님이 너한테 욕을 하겠니?’” 성희씨의 하소연이다.
캐디들 사이엔 ‘골프장이 사람(고객 수준)을 만든다’는 말도 있다. 일부 회원제 골프장에서는 내장객만 경기보조원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보조원도 고객 평가를 하도록 하고 있다. “손버릇이 좋지 않다, 욕을 잘하는 손님이니 주의하세요.” 같은 평가가 누적되면 3개월 동안 회원 자격이 정지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폭력과 멸시의 뿌리는 경기보조원들의 불안정한 고용 형태에 있다. 캐디들은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택배 기사, 퀵서비스 노동자와 같은 ‘특수고용직’이다. 골프장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맺고 건당 10만~12만원의 캐디피를 받는다. 대부분의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그러하듯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노동관련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감수하게 될 불이익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카트에 부딪혀도 공에 맞아도30여 년 동안 경기보조원으로 일한 뒤 현재는 경기보조원들을 위한 자문활동을 하고 있는 김경숙 전 전국여성노조 88컨트리클럽 분회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회사가 ‘쓰다 버릴 수 있는 애들’이라고 생각하는데 내장객들이 경기보조원의 인권을 존중할까요? 골프장의 정규직 여사원들이 내장객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법의 보호를 받는 이와 받지 못하는 이의 차이에 대해 고객들도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거죠.” 이런 처지에 분노해 2000~2003년 88컨트리클럽 등 전국 13개 골프장에서 경기보조원 노동조합이 설립됐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노동 탄압으로 대부분 와해되거나 유명무실해졌다.
성희씨는 ‘쓰다 버려진’ 캐디 친구들을 몇 안다. “카트 사고가 많이 나고요. 타구 사고로 공에 맞아 눈이나 이빨도 많이 다치는데, 회사에서 나 몰라라 할 때가 많죠.” 성희씨의 오랜 친구는 카트 전복 사고로 다쳐 ‘살아 있는 지옥’ 병이라고 불리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앓고 있다. 골프장 내 시설물 미비로 친구는 평생 통증과 싸워야 하지만 골프장은 10원의 위로금도 내주지 않았다.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경기보조원들은 2008년부터 산재보험에 임의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골프장은 신입 직원을 맞아들일 때 산재보험 ‘가입’ 신청서 대신 ‘제외’ 신청서를 내민다. 역시 ‘노동권’에 어두운 신입 경기보조원들은 요식행위에 가까운 절차를 그냥 넘기기 일쑤다. 성희씨는 몇 년 전 골프장에서 뿌린 농약 때문에 얼굴이 부어 3개월 동안 통원 치료를 받았지만 전혀 비용을 보전받지 못했다. “시켜먹을 대로 다 시켜먹으면서 정작 사고가 나면 니들이 원해서 일하는 거 아니냐고 하니까 억울하죠.”
노동자로서 보호받아야 할 땐 개인사업자 취급받지만, 정작 개인사업자로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부분에선 어떤 노동자보다 처참하게 부림당하는 것이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이중적 지위다. 실수에 가해지는 ‘벌당’(벌로 서는 당번)은 업체 관리자의 악덕을 그대로 반영한다. 법과 제도가 보호하지 못하는 노동자는 ‘갑을’ 관계의 역학에 가림막 없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지난 추석까지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2년 동안 일했던 남희(46·가명)씨는 관리자와의 마찰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잘못에 비해 지나친 벌칙에 반감을 가진 것이 죄였다. ‘대기’(내장객 방문이 예정된 시각) 시간을 넘기면 5분만 지나도 1만원씩 벌금을 냈다. 남희씨가 근무한 곳은 회원제가 아닌 ‘퍼블릭’ 골프장이어서 예약보단 당일 방문 고객이 많았다. 시도 때도 없이 근무 일정이 바뀌었다. 졸다가 메시지를 못 보고 대기 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지출하는 벌금이 적지 않았다.
매일 자신이 사용한 카트를 충전하지 않거나, 충전한 뒤 전원 플러그를 뽑고 가지 않은 게 한 차례만 적발돼도 벌당을 했다. 벌당 대상자는 5시간 동안 잡초를 뽑거나 ‘디보트’(파인 땅을 반듯이 정리하는 것)를 해야 한다. 월급이 아니라 내장객이 주는 캐디피만으로 생활하는 캐디들은 라운딩을 나가지 못하면 돈을 벌지 못한다. 카트 충전을 잊었다는 이유로 회사가 시키는 노역을 일당 없이 하는 셈이다.
남희씨는 경기보조원들을 관리하는 주임에게 벌당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가 ‘해고’를 통보받았다. 해고 절차도 간단했다. “내일 가운(캐디 유니폼) 가지고 오세요.” 처음 입사할 때 받았던 유니폼을 반납하는 것으로 회사와의 고용 관계는 끝났다. 제대로 된 이유 하나 없이 잘린 게 억울해 “해고통지서라도 달라”고 며칠을 우겼다. “당신은 일용직 노동자도 아니고 개인사업잔데 무슨 해고통지서가 필요하냐”고 했다. 머리를 쥐어짜도 방법이 없었다.
공공기관 위탁업체도 상황은 마찬가지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남희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30대까지도 겁이 많으니까 참았는데 40대가 되니 저도 모르는 자아가 너무 많이 생기는 거예요. 20년 캐디 경력인데, 내 능력에 자신 있는데 부당하게 벌을 주는 걸 참을 수 없는 인간이 돼버린 거지. 19살 딸이 있어요. ‘나는 죽었습니다’ 하고 참고 다니면 되는데 그게 안 되니까 미치겠는 거야.”
공공기관 위탁업체라도 ‘쓰고 버리는’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성희씨도 7년 동안 일했던 경기도 화성상록골프클럽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됐다. 화성상록GC는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는 골프장으로 공무원들이 이용한다. 지난 2월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은 화성상록GC가 경력단절여성들을 채용해 공익에 앞장서는 것처럼 홍보하기도 했다.
성희씨는 “2007년 입사한 뒤 경기보조원들을 관리하는 조장 업무를 맡아 방문객 컴플레인 한 번 없이 성실하게 일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고용 상태를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2013년 출산휴가를 허락받고 지난 8월 업무에 복귀하려 하자 캐디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경기과장은 “이미 퇴사 처리됐다”고만 했다.
실랑이 끝에 복귀하게 됐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저 업무 배치와 관련해 동료에게 불평했을 뿐이다. 이를 알게 된 경기과장은 지난 8월24일 “캐디들은 의견을 말할 수 있으나 불만을 갖지도 표출하지도 마라. 퇴사니까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통보했다. ‘괘씸죄’에 걸린 것이다. 이튿날부터 성희씨는 실직자가 됐다. 7년 동안 일자리를 지켰지만 잃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정당한 퇴사 사유도 알 수 없었어요. 잘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해고가 부당한지 정당한지는 알 수 있도록 기준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 납득을 하지요.”
온갖 곳에 전화를 해보았지만…10년, 20년을 일했지만 벼락같은 해고 통보를 받은 뒤에야 남희씨도, 성희씨도 ‘특수고용직’ 노동자라는 자기 신분을 정확히 알게 됐다. “일을 시작한 뒤 한 번도 캐디 일을 후회하지 않았어요. 해고 뒤 대한법률구조공단, 노동위원회, 근로복지공단,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데는 다 전화해본 것 같아요. 하나같이 했던 말은 이거예요. ‘근로자가 아닙니다.’ ‘근로계약서 쓰셨어요?’ 너무 절망적이었어요.” 성희씨가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관심 가질 일은 단지 ‘손녀 같은’ 여성을 향한 권력자의 탐욕스런 손길만이 아니다. ‘노동자’가 아닌 한, 앞으로도 그 욕망에 손쉽게 짓밟힐 경기보조원들의 숱한 자존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미국 최고 의사’ 84살 김의신 “암에 좋은 음식 따로 없어, 그 대신…”
다 ‘내가 했다’는 명태균, 이번엔 “창원지검장 나 때문에 왔는데…”
“대통령 술친구 이긴 ‘김건희 파우치’…낙하산 사장 선임은 무효”
법원, KBS 박장범 임명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기각
관저 유령건물 1년8개월 ‘감사 패싱’…“대통령실 감사방해죄 가능성”
이재명 ‘법카 유용’ 혐의도 ‘대북송금’ 재판부가 맡는다
핵탄두가 ‘주렁주렁’…푸틴이 쏜 ‘개암나무’ 신형 미사일 위력은
일상적 불심검문에 대학생·시민들 ‘불복종’…공권력 바꿨다
임영웅 ‘피케팅’ 대기 2만1578번 “선방”…‘광클 사회’ 괜찮나?
홍준표, 이재명 법카 기소에 “마이 묵었다 아이가? 그저 망신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