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등교시간 도입, 시험 축소, 학생 휴가제도·휴일 보장….
2014년 5월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학생들이 꼽은 10대 교육정책 중 일부입니다.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 절절함이 묻어납니다. 당시 교육·인권·청소년 단체들이 모인 ‘인권친화적 학교 + 너머 운동본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더랬습니다.
2014년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야간자율학습(야자)·보충수업·0교시는 추억 속 일상일 뿐일까요. 은 궁금했습니다. 다른 지역, 다른 학교에 다니는 다섯 학생을 수소문한 까닭입니다.
학교에 따라 학생들의 생활은 달라집니다. 2009년 이후 자율형 공립고, 기숙형 공립고 등 전교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교가 늘어났습니다. 구진수·송민욱 학생은 일반 공립고에 다닙니다. 특성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박상진 학생은 기숙사에서 생활합니다. 정아림 학생은 전국 7개 국제고 중 한 곳에 다닙니다. 신호준 학생은 혁신학교로 지정된 공립고에 진학했습니다. 학생들은 8월18∼22일 중 평일 3일간의 일상을 시간대별로 기록했습니다. 점심시간, 종례 뒤 야자 전, 취침 전에 ‘짬짬이’ 전화·문자 인터뷰를 병행했습니다. 이러한 취재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생활을 재구성했습니다. 야자를 하지 않겠다고, 자율적으로 ‘선택’한 학생은 호준뿐입니다. 다른 학생들은 최소 11시간, 최대 16시간까지 학교에서 생활합니다. 이러한 생활을 원하든 원치 않든, 교문 밖을 나가는 건 자유롭지 않습니다. 다섯 학생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_편집자
잠결에 사감선생님 목소리가 들린다. 전교생이 함께 생활하는 기숙사에 기상 시간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다. 5분 이내에 밖으로 나가 줄과 열을 맞춰 서야 한다. 그러곤 15분간 아침운동을 한다. 점호에 참석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 운동을 마치자마자 기숙사 방으로 다시 올라왔다. 등교 시간인 아침 7시 전까지 눈을 붙였다.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쪽잠을 자도, 잠이 늘 부족하다. 정말이지, 6시 기상은 너무 가혹하다. 중학교 때는 7시간30분은 잤는데. 지금은 6시간도 충분히 자지 못한다. 늦지 않게 학교에 갔지만, 너무 졸려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이런 상태로 아침밥을 먹었다.
7시40분부터 30분간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영어 듣기를 해야 한다. 졸음과 두통이 가시지 않으니 영어도 들리지 않는다.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교실을 감시한다. 졸려도 엎드릴 수가 없다. 졸다 깨다 어느새 8시20분. 1교시 수업이 시작됐다. 여전히 집중이 안 된다. 다른 애들도 졸고 있다. 2교시는 특성화 분야에 맞춘 전문교과 수업을 들었다. 부족한 국·영·수 공부는 종례 뒤 오후 4시30분에 시작되는 방과후 수업으로 보충한다. 방과후 수업을 들을지 말지 선택할 권한이 내게는 없다. 수업이 없어도 교실에서 자습을 해야 한다. 고향에서 제법 떨어진 학교에 진학하겠다고 결정한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집 근처에는 애니메이션 분야를 가르쳐주는 학교가 없다. 취업을 우선시하는 다른 특성화학교와는 다른 점도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그때 선택을 후회한다.
진수 ▶ 8월22일 아침 7시45분오늘도 겨우 눈을 떴다. 아침밥은 대체로 엄마가 갈아주는 토마토주스다. 등교 시간은 아침 8시10분. 자전거로 5분 거리에 학교가 있다. 간밤에 6시간가량 잤다. 아침마다 등교 시간이 조금만 늦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경기도 학생들은 9시에 등교한다는데 정말 부럽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머리를 군대처럼 깎아야 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다. 중학교에 다니면서는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만류한 건 엄마였다. 지금도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데, 왜 멀리까지 가려고 하느냐는 말씀이었다. 우리 학교 애들은 성적이 낮아 수시로 대학을 가야 한다. 내신 따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8시10분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10분간 조회를 한다. 번호가 매겨진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넣으면 선생님이 걷어간다. 야자가 끝난 뒤에야 휴대전화를 돌려받을 수 있다. 종종 야자나 자습 시간에 휴대전화 소지 여부를 검사한다. 1교시가 시작되기 직전, 10분간 잠을 잘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영어 수업을 준비하느라 잠을 못 잤다. 1교시부터 계속 졸았다. 멘붕. 같은 반 학생 중 5~6명은 1교시에 잔다. 점심시간은 50분이다. 항상 너무 짧다고 느낀다. 급식실이 작아 전교생이 한번에 들어갈 수 없다. 자리를 비워주어야 다른 학생들이 밥을 먹는다. 늘 그렇듯 10분 만에 후다닥 밥을 먹었다. 남는 시간에 교내 순찰을 돌았다. 선배들이 담배만 피우지 않았어도 내가 이러고 있지는 않을 텐데. 선도부를 하겠다고 지원한 건 봉사활동 시간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봉사활동 시간이라도 쌓아놓으면 대학 갈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오후 1시20분. 5교시 수업이 시작됐다. 1교시만큼 조는 애들이 많은 시간이다. 그래도 오늘은 지구과학 수업이다. 내가 좀 좋아하는 과목이다.
두통의 습격민욱 ▶ 8월18일 오전 11시20분
쉬는 시간 10분을 포함해 100분간 이어진 수학 수업이 끝났다. 2~3교시가 모두 수학 수업이었다. 이런 걸 블록타임제 수업이라고 한다. 왜 하는지는 모르겠다. 집중력이 떨어진다. 머리가 아프다. 지긋지긋한 만성 두통이다. 고등학생이 된 뒤 얻은 선물이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3층 교실을 나서서 1층에 있는 보건실에 다녀왔다. 병원에 가봤지만 두통의 원인은 뾰족하게 알 수 없다. 모든 질환은 스트레스 때문 아니겠는가. 요즘엔 심장이 이상하다. 얼마 전 등교하면서 병원에 들렀더니 정밀검사를 받아보잔다. 이것저것 검사가 많아 4교시 중에나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생물학적 나이는 열일곱. 신체 나이는 50대인듯. 점심시간이 끝난 뒤 5교시가 시작됐다. 많게는 15명가량이 잠에 빠져드는 죽음의 시간대다. 1교시도 다들 조는 분위기이긴 하다. 7교시가 끝난 뒤인 오후 4시30분. 월·화·수·목·금 모두 종례 시간은 일정하다. 사실 월요일 7교시엔 아무 수업도 잡혀 있지 않다. 그래도 종례 시간을 앞당기지 않는다. 보통 자습을 하는 시간이다.
호준 ▶ 8월20일 낮 12시10분
점심시간이다. 밥을 먹은 뒤 피곤해 인스턴트 커피를 마셨다. 졸음을 쫓기 위해 일주일에 서너 번은 점심시간 때나 오후 4~5시쯤 커피를 마신다. 고등학생이 된 뒤 피곤하면 커피를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조금은 버티게 해주니까.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 집에서 저녁을 먹고 1시간만 자려고 누웠다가 밤 11시까지 쭉 자버렸다. 알람 소리도 듣지 못했다. 부스스 깨어나,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 단체 회의록을 정리했다. 새벽 2시에 다시 잠을 청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내가 좋아서 시작한 단체 활동인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시간도 없고 마음의 부담도 커진다. 삶이 각박해지니 주체적인 활동을 줄이게 된다. 무기력해진다. 4시간40분 뒤, 부스스 눈을 떴다. 오늘이 수요일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든다. 6교시 수업만 있는 날이다. 오후 4시가 아닌 3시에 수업이 끝나면, 나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기분이다. 혁신학교에도 야자가 있다. 보통 한 반에 5~6명이 야자를 신청한다. 나는 야자를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도서관에 간다. 야자도 학교 수업처럼 규율이 있다. 중간에 교실을 나간다거나, 화장실을 자유롭게 가지 못한다. 수업이 끝난 뒤 도서관으로 가서 밤 11시까지 자습을 했다. 문과 학생이지만 거의 수학 공부만 했다. 수학은 너무 어렵다. 커피를 마신 효과일까. 잠은 딱히 오지 않았다. 그래도 피곤하다.
다리도 아프다. 밤 12시, 내 방이다. 바빠서 1년간 치지 못한 기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먼지 쌓인 기타를 보면 쓸쓸하다. 바쁜 이유로 못 만나 헤어진 애인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올해 초 밴드 모임도 하고 그랬는데, 결국 망했다. 열정을 쏟을 시간이 부족했다. 잠을 자야 할 시간이다. 6시간 정도 자는 잠. 그래도 알차게 자보려고, 알람 애플리케이션에서 백색소음(거슬리는 주변 소음을 덮어준다는 소음)을 켠다. 참 처량하다.
아림 ▶ 8월22일 새벽 2시잠이 오지 않는다. 친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아이스버킷 챌린지 동영상을 보며 웃었다. 야자를 끝내고 기숙사에 돌아온 건 3시간 전이다. 학교에서 ‘야자를 하겠느냐’고 물어본 적은 없었다. 학생 중 누구도 야자를 빠지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야자를 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출석을 체크하긴 하지만, 야자 시간엔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야자 때문에 미치겠다’고 하는데, 공감이 안 되긴 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오히려 자습 시간 연장을 원한다. 그래서 야자 뒤 밤 12시30분까지 공부하는 연장자습 제도가 생겼다. 연장자습은 하지 않는다.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야자 뒤 방에서 요가를 했다. 허리가 좋지 않은 탓이다. 별명이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다. 무릎도 좋지 않고 위염도 있다. 올해 들어 새로 얻은 병이 있다. 치료를 위해 약을 꾸준히 먹고 있는데 그것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틈만 나면 잠을 잔다.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를 많이 자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에 다닐 땐 졸았던 적이 없다. 이제 늙은 건가 싶기도 하고. 1학기에 과제가 많아서 잠을 못 잤다. 과제가 정말 ‘핫’한 시즌에는 잠을 자지 못한다. 학기 초인 요즘엔 에세이 쓰기, 원서 읽기, 수학 문제 풀기같이 자잘한 과제만 나온다. 내내 바쁘다가 약간의 잉여 시간이 주어졌다고 할까. 안 자던 잠을, 잘 수 없다. 추석 연후 이후, 과제는 다시 ‘핫’해질 것이다. 어느새 새벽 3시48분. 6시 기상 시간까지 2시간만이 남았다. 억지로 잠을 청했다. 등교는 아침 7시45분. 1교시는 8시30분에 시작이다. 중간에 비는 시간엔 자습을 한다. 오전 수업이 힘들긴 하지만, 9시 등교제를 반대한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 늦게 일어나게 해주는 것보단, 배우는 양을 줄여 일찍 자게 해주면 좋겠다. 학교 수업은 대부분 영어로 진행된다. 같은 반 학생 절반 정도는 국적이 다르거나,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오래 산 애들이다. 토종 한국인인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해 처음 단어장이란 걸 외우고 있다. 절대적 실력은 늘었겠지만 상대적 실력은 나아진 게 도통 안 보인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으니, 스스로를 칭찬할 거리가 없어 지쳐버린다. 악순환인 거다. 그래도 난 ‘당연히’ 행복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오고 싶었던 학교에 합격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 1년 365일 중에 유난히 힘 빠지는 날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생활이 힘들다고 할 순 없다.
멈춰버린 시계진수 ▶ 8월21일 저녁 8시30분
시계가 멈춰버린 것 같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진다. 야자 2교시가 끝나려면 25분이나 남았다. 야자 1교시에 너무 많이 자버려서 졸리지도 않다. 오늘따라 숙제도 없고 정말 할 일이 없다. 그저 멍할 뿐. 마음이 편한 상태와는 조금 다르다. 야자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학원을 다녀야 야자에서 빠질 수 있다. 그러니까 학원과 야자 중에 선택을 해야 한다. 같은 반 학생 중 절반이 야자를 하지 않는다. 대부분 학원으로 가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것 같다. 나는 학원이 잘 맞는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야자를 안 해도 된다고 하면? 아마 학원을 가거나, 친구들과 PC방을 갈 것 같다. 간혹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우리가 공부를 시키는 건 너희를 위해서라고. 야자 시간에 잠 못 자게 하는 선생님도, 우리 잘되라고 그러는 거겠지. 종례 시간은 이미 4시간 전에 지나갔다. 그 이후 방과후 수업이 있었다. 이번 학기엔 수학(월·수)과 배드민턴(화·목) 수업을 듣기로 했다. 방과후 수업이 없는 금요일엔 자습을 한다. 야자 2교시가 끝난 뒤에도 학교에 남는 학생들이 있다. 각 반에서 성적순으로 몇 명씩 뽑아놓은 애들이다. 드디어 야자가 끝났다. 인근 학교에서 야자를 마친 여자친구를 볼 수 있다. 집으로 데려다주면서 30분 보는 거다. 그나마도 여자친구가 학원에 가는 날엔 불가능하다. 다른 애들보단 부모님과 사이가 좋은 편이라 행복하다고 느낀다. 아직까진 걱정거리가 딱히 없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대학 문제나 성적 때문에 고민이 생기겠지만.
상진 ▶ 8월18일 밤 9시30분야자 2교시 시작. 80분 뒤면 기숙사로 돌아간다. 졸리긴 하지만 버틸 만하다. 학교에선 야자 동의서를 나눠주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야자 시간엔 기숙사를 열어주지 않는다. 더구나 ‘반대’에 체크하면 교무실에 불려간다. 같은 반 학생 2명을 빼고는 다 야자를 한다. 각 반에서 10명 정도는 야자 2교시가 끝난 뒤, 새벽 2시까지 ‘심야 자습’을 뛴다. 효율적이지 않을 것 같아 시험 기간을 제외하고는 심야 자습을 하지 않는다. 야자를 하지 않아도 된다면, 아마 대부분의 학생은 그대로 자습을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선택할 자유를 주는 건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 종일 학교에 있어야 하다보니, 교내엔 비밀 커플이 많다. 선생님들한테 걸리면 난리가 나기 때문에 ‘아이돌’처럼 숨어서 만난다. 밤 11시, 기숙사에 돌아와 잠시 쉬었다. 50분 뒤엔 휴대전화를 비롯한 모든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강제로 자야 하는 시간. 곧바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 그런데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고민이다. 내 생활은, 행복하지 않다.
민욱 ▶ 8월18일 밤 10시등교한 지 12시간 만에 집으로 향한다. 오늘도 야자를 2교시까지 다 끝냈다. 야자를 신청하지 않으면 교무실에 불려가 ‘왜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부모님의 눈치도 살펴야 해 부담스럽다. 한 반에 5~6명이 야자를 하고, 나머지는 학원에 가거나 집으로 간다. 경기도에선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밤 10시 이후엔 야자를 할 수 없다. 또 다른 조례를 통해 학원교습을 밤 10시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부와 안녕을 고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다. 야자를 마친 뒤 집에서 과외를 받거나, 독서실로 향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밤 11시가 넘어 샤워를 마치고 방 안에 앉았다. 수행평가 준비를 하다보니 새벽 1시가 넘었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고, 독서록을 작성했다. 새벽 2시30분쯤 잠이 들었다. 3시간30분 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 시작됐다.
정리=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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