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640억짜리 시험, 0점짜리 운영

MB 시절 토익·토플 대체하겠다며 만든 ‘국산’ 영어능력평가시험…

잦은 오류로 고교생용 시험은 전면 중단, 성인용 시험도 신청자가 단 수백 명
등록 2014-07-24 15:11 수정 2020-05-03 04:27
지난 7월5일 서울 숙명여대에서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1급 시험을 치르는 모습. 이날 시험에선 5문항에서 그림이 표시되지 않는 오류가 발생해 수험생들이 혼란을 겪었다.

지난 7월5일 서울 숙명여대에서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1급 시험을 치르는 모습. 이날 시험에선 5문항에서 그림이 표시되지 않는 오류가 발생해 수험생들이 혼란을 겪었다.

“아예 재시험을 치르게 하는 거예요? 5문항만?”

시험감독관이 전화기 너머로 다급하게 물었다. 지난 7월5일 숙명여대에서 치러진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니트) 1급 시험장 앞에서였다. 오후 5시25분 시험이 이미 끝났지만, 응시자들은 시험장을 떠나지 못했다. 시험 도중 듣기·읽기 영역에서 5문항의 그림파일이 표시되지 않는 오류가 발생한 탓이다. “이게 뭐야, 시간 아깝게.” “그냥 안 본 셈 치지, 뭐.” 시험장을 나서며 응시자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두 번째로 니트 시험에 응시했다는 ㅂ씨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시험이 이렇게 부실해도 되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응시자 442명, 그중 40%가 재시험

니트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토플·토익 등을 대체하는 ‘국산 영어시험’을 표방하며 핵심 국정 과제로 추진됐던 사업이다. 결국 무산되긴 했지만 수학능력시험과 연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있었다. 시험 개발, 헤드셋과 칸막이를 갖춘 시험장 구축 등 2008년부터 640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쓰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전체 사업을 관할하며, 시험 운영 및 시행은 국립국제교육원(성인용 1급)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고교생용 2·3급)이 나눠 맡았다.

그런데 니트는 시행 2년 만에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올해 2차 시험이던 지난 7월5일 발생한 시험 오류가 처음도 아니다. 지난해 6월엔 고교생 대상 시험에서 응시자들이 종료 직전에 답안을 확인하려 하자 해당 화면이 뜨지 않는 오류가 발생했다. 시스템 개발 업체가 임의로 테스트 데이터베이스(DB) 자료를 삭제하는 바람에, 응시번호와 답안을 전산상에서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 일어난 오류였다. 그 뒤 니트를 수능에 도입하겠다는 계획은 철회됐고, 지난해 6월 이후 고교생용 2·3급 시험은 전면 중단된 상태다. 성인용 1급 시험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1회 시험 신청자가 수백 명 수준(2014년 1차 시험 837명)에 머문다. 채용에 니트 성적을 인정해주는 기업도 단 2곳뿐이다.

지난 7월5일 치러진 시험에 응시한 인원도 전국 14개 시험장에서 총 442명에 그쳤다. 그나마 이 가운데 40%가량은 재시험을 봐야 한다. 교육부 실태조사(7월7~11일) 결과, 9개 시험장의 183명이 시험 과정에서 오류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미숙 국립국제교육원 NEAT팀장은 “이미지 제작 요원이 정해진 작업환경이 아니라 개인 노트북에서 이미지를 작업한 게 원인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시험 작업 과정에서의 사소한 실수와 교육부의 관리 소홀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응시자들에게 돌아간다. 교육부는 지난 6월부터 초·중·고교 교장 등을 대상으로 재외교육기관장 해외파견자 선발시 인정해주는 영어시험을 기존 텝스(TEPS)에서 니트 1급으로 대체했다. 이번 시험은 오는 9월부터 진행될 재외교육기관장 해외파견자 정기 선발 접수 직전의 마지막 시험이다. 국립국제교육원은 8월에 시험 성적표를 예정대로 발표할 계획이지만, 재시험 외에 일부 응시자들의 피해를 구제할 방안을 따로 마련하진 않고 있다.

고교 교사들, 졸속 시행 감사 청구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니트 1급 응시료 수입이 2억도 안된다. 그런데 올해 니트 1급 사업 예산이 20억원이나 된다. 서울대에서 개발한 텝스 등 민간시험이 있는데 굳이 국가시험을 따로 운영하는 건 혈세 낭비다”라고 꼬집었다. 니트를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6월에는 고등학교 교사 1719명이 니트 졸속 시행에 대한 국민감사 청구서를 감사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글·사진 박선희 인턴기자 starking0726@naver.com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