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 저와 같은 학번인 김명수 교수님 지도학생들을 ‘MS아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어쩌다 우연찮게 김명수 교수님의 지도학생들이 다들 MSI사의 노트북을 사용해서이기도 했지만, 교수님께서 지도학생들을 친근하게 대하셨기에 교수님 성함의 이니셜을 따 ‘김명수 교수님의 아이들’이라는 뜻으로 ‘MS아이’라 스스로 칭하곤 했습니다.
‘MS아이’라 불리던 지도학생들제 편지에 대한 다른 학생들의 반박문이 공개됐다죠? 그 반박문을 쓴 동문들께서 말씀하셨다시피 교수님은 학생들의 논문 통계를 직접 봐주셨고 영문 초록도 하나하나 검토해주셨습니다. 제 학위 논문의 영문 초록 역시 교수님이 손수 봐주셨습니다. 교수님은 다정다감한 분이셨고 반박문에 있듯 무척이나 소탈한 성격이십니다. 그래서 전 많이 힘들었습니다. 교수님을 미워할 수 없었거든요.
그것이 힘들었습니다. 제 분노의 화살이 대학사회의 권력층인 교수집단보다 오히려 저와 같은 학생들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이 2년 내내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왜 저 사람은 교수님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걸까. 왜 저 사람은 뒤에서 욕을 하면서도 교수님 앞에서는 방긋방긋 웃는 걸까. 왜 저 사람은 수업을 일찍 끝내면 좋다고 하는 걸까. 왜 저 사람은 논문 지도를 받는 대신 교수님과 좋은 식당에 밥 먹으러 다니기만 할까….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전 그저 강자에 저항하기보다 약자를 미워하는 비겁자였습니다.
그래서 반박문을 읽으면서도 많이 속상했습니다. 왜, 지금도, 우리는, 우리끼리 이렇게 싸워야 하는 걸까요? 해명하고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반박문을 쓴 다른 제자들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아닌 바로 교수님인데 말입니다. 2년을 같이 보낸 제 대학원 동기가 함께 겪었던 일들을 부정하는 반박문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청문회에 증인으로 다른 제자들이 나설 것이라는 소식 역시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교수님 자신은 ‘청문회에 가서 밝히겠다’는 말 외에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으십니다. 결국 저는 교수님을 겨누는 총알이 되고 반박문을 쓴 학생들은 교수님의 방패막이가 되는 꼴이 아닙니까. 그렇게 기어이 비극적인 청문회는 열리나봅니다.
교수님. 저는 지난 편지도 그리고 이번 편지도 몹시 떨면서 한자 한자 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지난 편지가 공개된 뒤 많은 분들이 제가 실명과 신분을 모두 밝히고 글을 썼다는 점을 걱정해주셨어요. 네가 그렇게까지 해야 했느냐는 타박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교수님께 지금 부탁드리는 것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 요구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그리고 스스로 했던 과거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요. 그래서 저는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최대한으로, 제 자신을 걸어 교수님께 지금 일고 있는 의혹에 대해 말씀하시고 인정해주세요, 라고 부탁드렸습니다.
하지만 만약 교수님께서 인사청문회 자리에 서게 되신다면, 그리고 교육부 장관이 되신다면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서울대병, 학벌 병폐 없앨 고민이 담기길부디 교수님의 경험에 비추어 한국의 교육에 대한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입니다.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교육부 장관으로서 교수님께서 그리시는 한국 교육의 청사진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시겠지요. 교수님께서 교육부 장관이 되고 싶어 하셨다는 것은 여러 번 말씀하셔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은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조교 출신인데도 서울대 교수가 되지 못한 시간들이 부추긴 거라는 사실 역시 들어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하시며 한국의 서열화된 대학사회가 비수도권 학벌을 가진 제자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그래서 제자들의 진로가 어떻게 좌절돼가는지를 긴 시간 지켜본 결과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교수님을 뵈며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 교수님. 교수님께서 그리시는 한국 교육의 청사진에 한국의 서울대병, 학벌·학력으로 인한 병폐를 없앨 수 있는 고민이 담기길 제자로서 소망합니다.
또 한 가지. 교육부 장관이 되고 싶고 서울대 교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은 어떤 면에서는 잘못됐지만 어떤 면에서는 누구나 가지는 욕망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교육은 수많은 모순의 집합체이고 평생 교육을 고민해오신 분으로서 학계를 떠나 직접 개혁의 선두에 서고 싶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죠. 하지만 교수님. 지금 교육부 장관이라는 자리는 학자와 다릅니다. 학계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는 다른 사람과 다른 생각을 더 많이 발굴해내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 세상을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지만, 교육부 장관은 상대방과 나의 다름을 강조하거나 나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자리가 아닙니다. 심지어 지금 교수님께서 후보자로 지명받으신 교육부 장관이 어떤 자리입니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이후에 줄줄이 드러나는 정부의 무능력과 부정부패를 바로잡고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안정감과 신뢰를 되찾기 위해 교육부총리로 승격시키겠다 말해지는 자리입니다. 어느 때보다 사회 각계각층과 소통하고 마음을 모아내려는 노력이 절실한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의 후보자로 임명받으신 분이 특정 집단(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나 특정 의제(교육감 직선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강력히 피력하고 그 주장을 관철시킬 것이라는 의지를 천명하는 게 과연 적합할까요? 그것이 민주정치입니까? 한 행정조직의 수장은 자신의 의지대로 조직을 좌지우지하는 독재자가 아니라 조율하고 중재하는 행정자라는 게 교육행정을 전공하며 제가 교수님께 배운 것이었습니다.
논문 한 편 발표하지 못할지도어쩌면 이 글로 저는 교수님을 다시는 뵙지 못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한국에서는 박사과정은 물론 논문 한 편 발표하지 못할 겁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건 정말 교수님께서 그 길을 가지 않으시길, 그래서 교육 현장에서 수많은 이들이 교수님을 원망하고 저 역시 장관으로서의 교수님을 현장 교사로서 비판하게 되는 더 큰 비극은 막아야겠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교수님. 부디 ‘우리 교수님 그런 분 아닙니다’라는 공허한 반박문에 기대기보다는 스스로 인정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세월호 사태를 봉합하는 정부에 앞장서서 그간의 신념도 철학도 버린 채 권력에 복무하는 교수님의 모습을 제가 보지 않을 수 있기를 정말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제자 이희진 드림.추신) 대리수업은 없었다고 반박한 김명수 교수님의 제자 10명 중 3명이 저와 재학 시기가 겹치는데 3명 다 직장 생활을 하며 야간 수업과 논문 지도만 받으셨으니 풀타임 학생들의 상황을 잘 모르실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사실관계를 밝히자면, 제가 대신 했던 수업은 2010년 교육학과 학부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학개론 수업이었습니다. 또 제 동기인 노지영 선생님이 반박문을 공개했는데 스스로 밝히셨듯 노지영 선생님 역시 연구실 생활을 하지 않고 야간 수업만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교수님 지도제자들만이 박사과정에 합격했다는 점을 들어 김명수 교수님께서 학생들 간의 총애 경쟁을 벌이게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김명수 교수님의 제자 3명은 모두 현직 교사였기 때문에 졸업 뒤 2년간 해당 시·도교육청에서 의무복무를 해야 하는 등의 사정으로 3명 다 박사과정 입시에 응시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학위 과정을 중도에 포기하면 현직 교사로서 교원대 대학원에 다니면서 받은 교육청의 금전적 지원을 일체 배상해야 하기에 일반제로 입학한 노지영 선생님이 알지 못하는 압박을 교수님들께 더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반박문을 제시한 다른 제자분들이 김명수 교수님의 표절 의혹 논문 ‘원저자’라는 것입니다. 반박문 이전에 원저자로서 표절 의혹부터 밝히는 것이 수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문들끼리의 사실 공방은 이미 비극인 상황을 파탄으로 이끌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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