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는 낯선 땅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사하라 남쪽의 척박한 ‘검은 아프리카’에 속하는 이 나라에 대해 평균적인 한국인이 알고 있는 정보는 얼마나 될까.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다음과 같은 정보를 상술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시바 여왕의 나라, 초콜릿과 감귤향을 모두 갖고 있다는 특산품 ‘이르가체프’ 커피, 아프리카에선 유일하게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동맹국…. 여기서 더 나아가기 어렵다.
출처도 원작자도 표기하지 않은 채외교부라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까. 외교부가 정·재계 고위급 인사의 현지 방문시 또는 언론사 기자들의 취재시 제공하기 위해 만든 60여 쪽 분량의 ‘에티오피아 알기’ 자료(2011)는 다음과 같은 정보를 담고 있다.
“에티오피아가 아프리카에서 원조임을 자랑하는 게 여럿인데 팬 아프리카 컬러(아프리카 국기에 자주 등장하는 초록·노랑·빨강으로 구성된 색 조합)도 그중 하나다. (…) 현재 베냉, 세네갈, 카메룬, 토고, 콩고, 기니, 부르키나파소 등 약 19개의 국가에서 자국의 국기에 팬 아프리카 컬러를 사용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황제의 나라였던 에티오피아가 아프리카의 큰형님으로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 않는가.” “커피, 하면 세계 최대의 생산국인 브라질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커피의 발상지는 에티오피아라는 게 정설이다. 커피의 어원도 에티오피아의 커피 산지인 ‘카파’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생경한 지역인 에티오피아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다룬 생생한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외교부 산하 아프리카협력센터의 누리집(africacenter.mofa.go.kr)에서 이 자료를 받아본 윤오순 연구원(현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 소속)은 황당함을 금할 수 없었다. 신문에 연재한 자신의 글을 조사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베껴놓은 자료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누가 이런 자료를 썼나 궁금하기도 하고 신이 나서 읽고 있는데 제가 많이 아는 표현이며 이야기들이 등장하는 거예요. 설마 하면서 읽고 있는데 어떤 페이지는 제가 감정을 실어 쓴 표현들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썼더군요.” 에티오피아의 커피 관광을 주제로 영국 엑세터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윤 연구원은 2006~2008년 에티오피아에서 지낼 당시 경험을 에 40여 편에 걸쳐 연재한 바 있다. 에티오피아의 국가 개황을 담은 자료에서 외교부는 당시 발표된 그의 글 일부를 통째로 옮겨 적었지만 출처도, 원작자도 표기하지 않았다. 타인의 자료를 무단 이용한 외교부의 이 자료에는 ‘내부 자료로서 무단 배포를 절대 금한다’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공식 발간 자료가 아니더라도, 출처를 밝히지 않고 연구자의 글을 베껴쓴 것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연구자와 창작자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그를 침해한 격이죠.” 정민영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의 지적이다.
지적재산권 보호해야 할 정부가
비포장도로를 배낭 하나 메고 찾아다니며 발품 팔아 모은 정보였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오지에서 모뎀을 이용해 사진 몇 장과 원고를 보내려면 하루 나절을 꼬박 기다려야 했다. 일본과 영국에서 에티오피아 지역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일본·영국의 장학금을 받은 적은 있어도 우리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적은 없었다.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공들인 ‘지식’의 무게가 너무 가볍게 다뤄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저처럼 밖에서 지원 없이 외롭게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연구에 큰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노력조차 인정해주지 않는 데 좌절감을 느꼈습니다.”(윤 연구원)
‘표절 사태’는 당시 트위터 등에서 회자되면서 외교부의 사과로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2012년 8월 외교부 아프리카과의 담당자는 “알기 쉽게 소개된 아프리카 관련 자료가 없다보니 생긴 일”이라며 윤 연구원에게 구두로 사과했다. 이미 발간된 자료는 폐기·삭제하고, 자료 갱신이 필요할 때 다시 자문을 구하기로 하는 선에서 윤 연구원도 사과를 받아들였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영국에서 학위 과정을 마친 뒤 국내에 돌아와 올 초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윤 연구원은 에티오피아 이외의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도 파악하기 위해 외교부 아프리카협력센터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2013년 6월 작성된 자료 가운데 에티오피아 개황 자료도 들어 있었다. “커피, 하면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커피의 발상지는 에티오피아라는 게 정설이다. 커피의 어원도 에티오피아의 커피 산지인 ‘카파’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윤 연구원의 문장들이 여전히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번엔 외교부 감사관에 공식 항의했다. 그는 “뒤이어 벌어진 일에 더 화가 났다”고 말했다.
“담당자가 내가 일하고 있는 연구소의 소장에게 연락해 문제 해결을 요청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문제인데 연구소 회의에서 느닷없이 ‘이 문제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상사의 말을 들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지요.” 윤 연구원은 ‘압력’으로 받아들였지만 전화를 건 외교부 아프리카과의 관계자는 다르게 설명했다. “출장 중에 상황을 전달받았기 때문에 연락처를 갖고 있던 연구소장에게 연락해 ‘상황을 잘 처리할 테니 윤 연구원에게 잘 말해달라’고 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관행적으로 판단해 원저작자인 윤 연구원이 발표한 신문 기사 내용의 출처를 명확히 밝히지 못한 책임이 있다. 윤 연구원에게 사과하고 자료 폐기, 향후 발간 자료의 수정 등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오해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 발주 연구용역에 의지하는 작은 연구소가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국내에서 아프리카 지역연구의 지위는 미미하다. 외교부가 고위급 인사 배포용이나 내부 교육용으로 제공할 자료를 인터넷에서 그러모아 ‘짜깁기’식으로 내놓은 이유도 단순하다. 외교부 내에 적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국내의 아프리카 연구는 서구나 일본에 비해 아주 미비한 실정이다. (…)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편견과 무지 등으로 인해 학문적 연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
가장 많은 유엔 회원국을 보유한 대륙, 아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대륙이지만 1990~2011년 아프리카 전체 대륙에 대한 국내 연구 논문은 4600여 건으로 중국 3만8800여 건, 미국 3만여 건에 견줘 10~15%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아프리카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그나마 연구 지역과 주제도 한정돼 있다. “남아공, 나이지리아, 알제리, 리비아 등 아프리카 대륙에서 정치적·경제적으로 영향력이 큰 나라에 편중되어 있다. 아프리카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역 전문가의 양성이 시급하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에티오피아 지역을 연구한 전문가도 윤 연구원 한 사람이다. 윤 연구원은 당부했다. “워낙 국내 정보가 없어서 아프리카 지역 정보를 파악하려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나 <cnn>의 정보를 주로 활용합니다. 떠도는 정보, 제한된 정보로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아프리카 대륙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흩어진 정보들 가운데 전문지식이 가진 소중함을 알고 아프리카 연구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 참고 문헌
‘한국과 영국의 아프리카 연구현황 비교 분석’(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1)</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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