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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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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구조 점심엔 구급대원 저녁엔 화재 진압

인력부족·초과근무·형편없는 장비, 개개인의 불안을 안고 일단은 달려가야 하는

현직 소방관 4인 방담… 새로운 승진제도에선 ‘달리기 못하는 소방관’ 선발 가능성
등록 2014-06-17 17:11 수정 2020-05-03 04:27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소방관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한다. 지난 6월7일부터 화재 진압복을 입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하는 소방관의 모습.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소방관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한다. 지난 6월7일부터 화재 진압복을 입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하는 소방관의 모습.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6월12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 5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세월호 참사 대국민 담화의 후속 조치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문패만 갈아 달았다”거나 행정관료의 “잔칫상”이라고 혹평한다. 특히 느닷없이 ‘사형선고’를 받은 소방관은 서울 광화문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벌인다. 은 지방에서 일하는 현직 소방관 4명을 만났다. 나이는 30~50대, 경력은 9~20년차였다. 고질적인 인력 부족으로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소방관은 근무평정 점수가 깎일까봐 자비로 병원을 다니고 구급차를 수리하고 있었다. 최근 소방관의 입사·승진 제도가 바뀌어 수영 못하는 해경에 이어 달리기 못하는 소방관이 탄생할 위기라고 했다. 해법은 간명하다. 소방관을 경찰처럼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_편집자


사회- 국가안전처 신설은 무엇이 문제인가.

소방관 1(50·경력 20년차)-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에서 무능을 드러낸 안전행정부가 ‘셀프 개혁’을 주도했다. 자기들 잘못은 드러내지 않고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해체하는 것으로 끝내려 한다. 재난관리 컨트롤타워를 재난총괄과에서 안전관리국으로 승격할 뿐이다. 안전행정부에서 국가안전처로 문패만 바꿔 달겠다는 뜻이다. 지휘권자가 재난 현장을 몰라 주춤하고 엉뚱한 명령을 내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또다시 반복될 위험이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만들 때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켰는데 재난전문가인 소방 쪽은 아예 부르지 않았다. 탁상공론은 재검토해야 한다.

소방관 2(32·경력 9년차)- 힘있는 조직은 건드리지 않고 힘없는 조직만 희생양으로 삼았다. 해경과 소방방재청은 해체하고 행정관료의 1급 자리는 오히려 늘렸다. 제 밥그릇 챙기기다.

직장협의회도 구성하지 못하게 폐쇄적

국가안전처(장관급)에는 현장 대응 3개 본부(소방·해양안전·특수재난)와 더불어 행정공무원이 중심인 2~3개 본부가 생긴다. 소방방재청장은 현재 차관급인데 소방본부장은 1급이다. 소방관의 수장은 강등됐지만 행정관료의 1급 자리는 늘어난 셈이다. 소방방재청 소속인 300여 명만 국가안전처로 옮기고 나머지 4만 명 가까운 현장 소방관은 달라지는 게 없다.

소방관 3(39·경력 9년차)- 국가안전처에 특수기동구조대를 신설해 초기 대응 능력을 높이겠다는데 실효성이 없다. 몇백 명을 훈련해도 현장에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난 상황에서 인명 구조는 초기 5분에 달려 있다. 그 시간 내에 구조대원이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 특수구조대는 그렇지 못하다. 해경의 특수구조단도 세월호 참사 현장에 몇 시간이 지나서 도착했다. 일선 소방서의 구조대원을 더 교육하고 그 수를 늘려주는 게 낫다.

사회- 일선 소방관들이 이런 의견을 제시해야 하지 않나.

소방관 1- 노동조합은 고사하고 직장협의회도 구성하지 못하는 폐쇄적인 조직이라 가능하지 않다. 일선 소방서에서 조직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소방관들이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진다. 몇 년 전 소방발전협의회가 만들어졌을 때도 윗선에서는 가입자를 찾아내려고 수소문했다.

사회- 공론화할 창구가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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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4(37·경력 12년차)- 전국공무원노조가 그 역할을 하는데 소방관에겐 그런 것이 없다. 다른 공무원들은 술자리에서 조직의 문제점을 얘기하고 의견을 내자고도 하더라. 낯설고 부러웠다. 갈라진 낙엽처럼 만날 밟혀와서 소방관들은 패배 의식에 휩싸여 있다. 뭔가를 추진하면 처음에는 해보자고 하다가 곧바로 빠질 준비를 한다. 시간외 초과근무수당 소송을 할 때도 그랬다.

소방관은 2교대로 일했다. 하루 24시간 일하고 24시간 휴식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매달 100시간 이상을 초과 근무해야 한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는 예산이 없다며 초과 수당을 30~40시간분만 지급했다. 2009년 소방관이 소송을 냈고 법원이 잇따라 승소 판결을 하자 지자체가 뒤늦게 합의에 나섰다.

소방관 3- 당시 소송에 앞장섰던 사람들은 나중에 뒷조사당하고 꼬투리 잡혀 파면되고 그랬다.

소방관 2- 지방에선 인사권이 엄청나다. 지자체가 워낙 커서 보복성 인사를 당하면 출퇴근이 불가능해진다. 서울과는 참 다르다.

구급과 운전을 빼면 화재 진압은 1명이?

소방 조직은 이원화돼 있다. 소방방재청은 중앙정부 소속이지만 일선 소방관은 지자체가 인사권과 예산권을 쥐고 있다. 전체 3만9519명 중 지방직이 99%, 지방 소방 재정 중 지자체 재원이 98.2%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소방안전 분야 국비부담률은 평균 67.7%인 반면 우리나라는 국비보조가 1.8%에 그친다. 그래서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의 인력 부족과 장비 노후화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의 119안전센터는 1일 근무인원이 최소 10명이다. 펌프차에 4명(지휘 1명·운전 1명·진압 2명), 물탱크차에 2명(운전 1명·진압 1명), 구급차에 3명(운전 1명·구급 2명)이 탑승한다. 이들은 2인1조로 활동해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를 동시에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지방은 1일 5명만 근무한다. 구급과 운전을 빼면 화재는 1명이 진압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느 시골 지역에선 아직도 나 홀로 소방관이 혼자 차 몰고 가서 혼자 불을 끈다.

지방 소방관의 장비는 부족하고 낡았다. 화재 현장에서 생명줄과 다름없는 무전기가 소방관 1인당 하나씩 지급되지 못한다. 긴급 구조활동을 할 때 신는 활동화가 떨어졌는데 2년 넘게 지급이 안 된다. 헐어버린 소방장갑을 그대로 쓰거나, 심지어 본인이 직접 돈을 들여 사기도 한다.

소방관 1- 인원이 모자라서 ‘멀티소방관’이 생겼다. 10명 몫을 4명이 해야 하니까 궁여지책으로 나온 제도다. 사람 잡는 일이다.

소방관 2- 아침에 구조했다가 점심에 구급대원으로 일하고 저녁에는 화재 진압을 나간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소방서의) 요구대로 움직여야 한다. 구급차, 화재진압차 등 차량이 다 다른데 열쇠를 한 꾸러미씩 들고 다니며 한 사람이 몬다. 나도, 동료도, 시민도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소방관 4- 그래서 순직자가 늘었다. 어제 밥 먹고 술 먹던 동료가 그렇게 떠난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 전문성이 필요한데 마구 시킨다.

소방관 1- 사고 현장에서 소방관의 구조 활동은 이성적 판단이 아니다. 반복적인 훈련이 낳은 동물적 감각이다. 그런데 손에 익지 않은, 잘 해보지 않은 구조 활동을 그날 아침에 배당받아 수행하면 당연히 안전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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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3-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근무 환경이 열악한 지자체를 소방관들이 피한다. 처음에 멋모르고 공채로 들어갔다가도 떠난다. 다른 시·도로 갈 수 있으면 새로 시험을 보거나, 직급을 낮춰서라도 빠져나간다.

살아남기 위한 지방 소방관의 몸무림이다. 현장 출동 인력이 부족해 안전사고가 해마다 8명씩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 5년간 순직한 소방관은 29명, 공상자는 1626명이었다.

사회- 세월호 참사와 비슷하다. 임의 선장이 지휘했고 그날 처음 승선한 선원도 여럿 있었다.

소방관 2- 그렇게 개개인이 불안 요소를 갖고 출발해 한꺼번에 터지는 순간, 대형 사고가 일어난다.

소방관 3- 구급차를 몰고 가는데 운전자가 없다고 대형 물탱크차로 느닷없이 옮겨타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럼 몇 년 만에 낯선 탱크차를 몰고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사이렌도 제대로 못 울리고 정신없이 말이다. 안전행정부령의 ‘소방력 기준 규칙’만 지킨다면 다 사라질 문제다. 지금은 그 기준을 충족하는 지방 소방서가 하나도 없다.

2만4412명 필요한데 1462명 충원

정부는 초과근무수당 지급 소송에 잇따라 패하자 2012년부터 소방관을 3교대로 운영하고 있다. 소방방채청이 2013년 1월에 펴낸 ‘소방공무원 처우개선을 위한 토론회’ 자료를 보면, 3교대를 할 때 필요한 인력은 5만4969명이다. 당시 교대근무 인력이 3만557명이었기에 2만4412명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소방인력은 최근 3년간(2010~2012년) 1462명만 늘렸다. 필요한 인원의 6% 충원이다. 이런 추세라면 16년이 지나야만 3교대 인원이 확보된다. 소방관은 그동안 몸으로 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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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4- 며칠 전 구급대원으로 환자를 옮기다가 주저앉았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까 허리디스크라고 하더라.

소방관 3- 구급대원들을 조사해보면 디스크는 기본이다. 구급차를 3년 이상 타면 다 걸린다. 척추 5번, 6번 디스크는 무조건 있다. 소방력 기준에 맞게 구급대원을 태워주지 않으니까 환자를 거의 혼자 들어야 한다.

소방관 4- 현장에서 다쳐도 스스로 치료해야 한다. 공상을 신청하면 근무실적이 깎인다. 모든 게 점수에 반영된다.

소방관 2- 왜 미리 안전하게 대처하지 못했느냐고 책임을 묻는 식이다.

소방관 3- 보험이나 공상 처리를 하려고 들면 일거수일투족을 다 털어버린다.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소방관 4- 윗사람들은 ‘다치지 말라’고 지시한다. 인력도 부족한데 그게 맘대로 되나. 그러니까 자비로 메꿀 수밖에 없다.

소방관 3- 다치면 10건 중 3~4건만 공상 처리한다. 구급차로 교통사고를 내도 보험 처리하지 않는다. 10년 일하면 구급차 수리하는 데만 수백만원씩 깨진다.

소방관 2- 빨리 현장에 가야 하니까 위험 요소가 있다. 그래서 자동차보험도 들어놓는 것이고. 하지만 실제로 활용하지 않는다. 보험료 올라간다고 싫어한다.

소방관 1- 지자체장이 소방본부장에게 안전사고를 줄이라고 지시하면 본부장은 일선 소방서장에게 “사고 나면 각오해”라고 말한다. 현장까지 그 얘기가 전해진다. 결국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공론화하거나 기록에 남기지 말라는 뜻이다.

소방관 3- 십시일반하는 문화가 있다. 만약 구급차 교통사고로 200만원이 들면 본인이 100만원을 내고 나머지는 동료들이 모아준다. 인사 사고가 나도 개인적으로 합의를 보고 넘어간다. 공무 집행 중에 발생한 사고인데도 말이다.

소방관 1- 주취자가 소방관을 폭행할 때가 있다. 그러면 민형사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합의하라고 종용한다. 소방관에게 잘못이 없어도 그런다.

소방관 3- 민원이 들어오면 무조건 무릎을 꿇으라는 식이다.

소방관 1- 그런 윗사람을 아랫사람이 따르겠나. 내부적으로 곪고 있다.

소방관 4- 인사권과 예산권을 거머쥔 지자체장에게 소방본부장이 굽실굽실한다. 소방 현장을 몰라도 한마디 하면 일선 소방서를 쥐 잡듯이 잡는다. 힘없는 조직, 지방직 공무원이 겪는 비애다.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현실적 이유다.

경험 없는 관료로 채워진 지휘선

사회- 사고 위험은 현장에 늘 있는데 조직은 보호하지 않는다. 엄청난 스트레스겠다.

소방관 4- 최근까지 법률상 소방관은 인명 구조 상황에서 사망해야만 순직이었다.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다가 교통사고가 났거나 고양이를 구하려다 떨어져 숨졌으면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소방관 2- 그렇다고 우리가 구조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얼마나 많은 소방관이 수십 년간 피해를 입어왔는지.

소방관 3- 현장을 모르는 사람들이 윗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행정이다. 어느 지방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구급대원이 전염성 질병에 걸린 환자를 이송하면 보고서를 추가로 써야 한단다. 예를 들어 구급일지에 ‘4년 전 결핵을 앓았다고 함’이라고 썼다면 추가 보고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징계 대상이다. 한 지역에서 수십 명이 그렇게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병명을 영어로 쓰면 열외였다.

사회- 사고 예방 활동은 어떤가.

소방관 3- 지금 눈에 보이는 건물은 다 소방 대상물이다. 관리자는 2~3명뿐이다.

소방관 2- 사고가 터지면 사전 소방 점검을 어떻게 했느냐고 따진다. 그 인력으로 예방하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상황인데.

소방관 1- 대형 건물은 소방시설 점검을 위탁수수료를 주고 외주업체에 맡긴다. 시설주 입장에서는 무료로 소방서가 검사해주다가 돈을 내는 유료로 제도가 바뀐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외주 소방 점검을 제대로 받았는지 또 소방서가 감독하도록 돼 있다.

소방관 2- 외주업체에 소방시설 점검을 맡긴 경우 소방관은 10~20분 서류만 보는 것이다. 소방인력이 부족하니까 그런 제도를 만들어놓고는 화재사고가 발생하면 또 소방서 책임으로 몰아간다. 소방시설 전문업체는 3인1조로 대형 건물을 며칠씩 점검한다. 중소형 건물도 하루 종일 본다. 하지만 소방관은 하루에 건물 10개씩을 점검해야 한다.

사회- 앞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

소방관 3- 세월호 참사 직전에 소방방재청에서 새로운 승진제도를 공문으로 보내왔는데 현장에서 승진할 길은 더 좁아졌다. 자격증을 따거나 체력을 키워서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확 줄이고 근무평정의 비중을 높였다. 윗사람 눈치를 더 보며 살라는 얘기다. 신규 소방관을 뽑을 때도 체력이 선발 점수에 포함됐는데 이제는 당락만 결정한다. 걸어다닐 정도의 체력이면 합격이다. 대신 글로벌 인재를 키운다며 영어 점수를 넣었다.

영어 점수 포함, 체력은 당락만 결정

사회- 수영 못하는 해경에 이어 달리기 못하는 소방관이 나올지 모르겠다.

소방관 1- 필기시험이 우수해도 체력 점수 탓에 불합격하는 일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윗사람들은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사람보다 책상에서 펜대 굴리는 사람을 원한다. 들어와서도 현장보다는 내근해야 승진에 유리하고.

소방관 3- 이렇게 10~20년이 지나면 사고 현장을 지휘해야 하는 소방서장·소방본부장들이 현장 경험이 거의 없는 행정관료 출신으로 채워질 것이다. 재난 현장의 지휘는 머리가 좋다고, 공부를 많이 했다고,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재난은 바로 현장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지휘관이 필요한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사회·정리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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