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중앙합동신문센터 전경. 2008년 12월 개소한 이후, 지난 4월4일 일부 공간이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됐다.국가정보원 제공
2012년 10월30일. 중국 옌타이 공항을 나선 유가려(27)씨가 제주공항에 들어섰다. 한국에 정착해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오빠 유우성(34)씨와 함께였다. 출입국 심사대에 ‘탈북자’라고 신고했다. 공항 조사실에서 국가정보원 직원으로부터 3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이날 밤 늦게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 도착한다. 2013년 4월26일 인신구제청구 재판을 거쳐 자유로운 몸이 될 때까지 반년 가까이 합신센터에서 지내게 될 줄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그는 합신센터에서 조사받는 동안 ‘오빠와 나는 간첩’이라는 허위 자백을 하도록 폭행·협박·회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2014년 4월4일, 합신센터를 지키던 철문이 열렸다. 대한민국에 정착하길 원하는 모든 탈북자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에 따라 임시보호시설인 합신센터에 수용돼 조사를 받는다. 정보기관 및 군 관계자들이 진짜 북한이탈주민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절차다.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되면, 하나원으로 옮겨져 사회 적응 교육을 받게 된다. 회색빛 철문 주위로 담장과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다. 주위에 야산이 있고 주택가는 보이지 않는, 인적이 드문 곳이다. 국정원은 국가보안목표시설 ‘가’급이라며 합신센터에 대한 취재를 막아왔다. 그러나 돌연 태도를 바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상대로 합신센터를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국정원 증거 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발표를 앞둔 시점이다. 도 지난 4월4일 합신센터 방문에 동행했다. 휴대전화 소지 및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 않았다.
20만1788m²(약 6만1천 평) 부지에 들어선 합신센터(건평 7443평)는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이다. 심사동·교육후생동·사무동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서로 연결돼 하나의 건물을 이룬다. 안내하는 직원도 방향을 헷갈릴 정도로 내부는 복잡했다. 직원들 안내를 따라가다보니, 건물 어디쯤에 서 있는지 잘 가늠되지 않았다. 최대 54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4월 현재 350여 명이 머물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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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탈북자들은 성별로 4~5명이 한방을 사용하다가, 조사 순서가 되면 조사실과 가까운 독방으로 옮긴다. 식사는 직원들이 가져다준다. 기자들에겐 크기가 다른 독방 두 개가 공개됐다. 침대·용변기가 설치된 방에는 샤워부스·옷장 등도 갖춰져 있다. 일반 원룸과 비슷한 형태였다. 조사는 5일가량 이어진다. 위장 탈북 혐의 등이 발견돼 조사 기간이 5일을 넘어가면, 두 배가량 넓은 33m²(약 10평) 크기의 독방으로 옮긴다. 넓은 독방 입구에 들어서자, 바로 왼편에 또 다른 문이 나타났다. 잠겨 있었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조사 공간과 연결돼 있다는 설명이 들렸다. 독방 출입문은 밖에서만 잠글 수 있는 구조다. 합신센터 쪽은 2013년 가을께부터 수용자들이 독방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카드키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복도를 걸어다니는 탈북자들을 볼 순 없었다. 의무실에서 만난 탈북자는 경직돼 보였다. 센터에서 나눠준 트레이닝복을 입은 그는 이름과 번호가 적힌 A4용지 크기의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있었다. 가려씨는 합신센터에 들어오자마자 독방에 수용됐다. 당시엔 방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고 달력도 없었다. 조사 기간의 대부분을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설치된 독방에서 생활한 것으로 확인됐다. 센터 쪽은 구두로 본인 동의를 얻은 뒤, 24시간 모니터를 한다고 했다. 화장실이 보이긴 하지만, 깨끗한 화질은 아니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CCTV 관련 설명에서 혼선“물통에 물을 채우려고 (복도에) 나갔다 빨리 안 들어가면, 스피커를 통해 방 호수와 이름을 언급하며 빨리 들어가라고 재촉한다. 방은 24시간 내내 카메라로 감시받았다. 샤워를 하거나 용변을 볼 때도 카메라가 보였다. 샤워부스는 유리로 돼 있는데, 아랫부분은 불투명하게 돼 있지만 윗부분은 아니었다. 서게 되면 다 보이니까 쪼그리고 변기 뒤에 숨어서 샤워를 했다.”(유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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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m²(약 6평)가량의 공간인 1인 조사실에도 CCTV가 설치돼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컴퓨터가 놓인 책상이 보인다. 조사관이 앉는 자리다. 맞은편으로 탈북자 자리가 있다. 센터 쪽은 CCTV와 관련한 설명에 혼선을 빚었다. 조사관의 폭언 등을 감시하기 위해 모니터용으로만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기간 조사자에 대해서는 본인 동의하에 녹화를 한다고 밝혔다. 녹화 파일은 2~3개월 동안 보존한다고 했지만 명확한 원칙은 없었다. 가려씨의 조사 장면도 녹화됐지만, 해당 파일은 이미 삭제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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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조사를 받아야 하는지, 말을 전혀 해주지 않았다. (조사를) 심하게 하면, 새벽 6시30분에 기상을 시켰고 새벽 1~2시까지 조사를 받았다. 2013년 3월, 변호인이 찾아와 접견을 신청한 사실도 몰랐다. 직원과 산책할 때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하니, 지금 아버지와 전화하면 다 도청되기 때문에 전화할 수 없다고 했다.”(유가려)
센터에서 인터뷰를 주선한 50대 탈북자는 남쪽에 정착한 가족과 면회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름을 밝히길 꺼린 탈북자는 “사실관계 확인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전화 통화나 면회가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센터 쪽은 조사관이 휴대전화를 빌려주는 경우 외에도,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곳이 따로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이러한 시설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자백’ 순간에도 변호인 접견은 금지가려씨가 재북화교임이 드러난 건 조사 초기인 2012년 11월 초였다. 그 뒤 오빠의 간첩 혐의와 관련된 조사가 이어졌다. 그의 진술은 ‘나도 간첩’임을 자백하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피의자 신분이었던 셈이다. 진술을 거부하거나 변호인 조력을 받을 수 없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1단독 양석용 판사 등은 지난 3월, 가려씨 조사 과정에서 국정원이 변호인 접견을 금지한 것은 위법하다고 결정했다. 국정원은 일부 형사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갖고 있다. 보호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조사와 간첩죄 혐의 수사가 뒤섞여 진행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최근 발간한 ‘2013 인권보고서’는 북한이탈주민 보호 여부를 결정하는 행정절차와 간첩죄 혐의 수사 절차의 주체가 명확히 분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흉악범이 증가한다고 해서 고문 도입을 이야기할 수 없듯, 간첩이 증가한다고 행정절차에 불과한 심사 과정에서 간첩죄 혐의 수사를 하는 위법적인 관행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흥=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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