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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경남 울산시 온산공단 인근 지역 주민 1천여 명이 전신마비를 겪었다. 이미 2년 전부터 온산 주민들은 까닭 없는 통증과 피부병, 눈병을 앓기 시작한 터였다. 공업단지로 조성된 1974년 이후, 온산 일대는 공장 폐수로 어장이 말랐다. 중금속에 농수산물도 오염됐다. 사람이라고 성할 리 없었다. 정부는 공해병을 부정했다. 한국 최초의 ‘공해병’을 규명하겠다고 나선 의사나 학자는 없었다. 주민들은 그저 산 너머 마을로 집단 이주됐을 뿐이다. 결국 온산병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밝혀지지 않은 온산병온산병 문제는 환경운동가들에게 뼈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온산병은 환경성 질환이라는 점을 입증할 양심적인 의사 한 명이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군부독재 시기라곤 하지만 소신 있게 나설 전문가 한 명이 없어서 피해자들은 사라지고 말았어요.”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의 설명이다. “우리 사회에 전문가는 많아요. 정작 문제를 해결하고 피해자의 친구가 돼줄 전문가가 없어서 문제죠.”
한국 학계, 특히 과학계에서 ‘정부’의 입장은 금과옥조다. 최근 발간된 1~2월호에서 김우재 생물학 박사는 “과학은 우리나라에서 국가적 사업의 일환으로 수입됐으며, 기술과 결부돼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영역에 국한됐다. 한국 사회의 과학은 경제발전의 도구이고, 과학자들은 국가주의의 노예일 뿐이었다”고 비판했다.
그처럼 공고한 침묵을 깬 것은 2005년 ‘황우석 사태’다. 의심한 적 없는 전문가의 윤리와 전문성에 대해 시민들이 회의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시민과학자들과 젊은 생명과학자들이 공고한 황우석 동맹에 도전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서 결국 숱한 다윗들의 모임인 ‘브릭’(생물학연구정보센터)이 승리했다. 쉽고도 천박하게 말하자면, 이후 한국 사회는 ‘돈 되는’ 공부를 하고도 ‘돈 안 되는’ 일을 하는 이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대항전문가’들이다.
이들은 특히 과학 영역에서 전문지식의 암흑상자를 열고, 전문가를 자처하는 주류 지식권력의 민낯을 드러낸다. 정부와 주류 지식권력이 맺어온 동맹에 대항하고 정책 결정에 ‘전문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이견을 낸다. 서구에선 1960~70년대에 정부의 군사·외교 정책에 대항하고 반전평화운동에 참여하는 전문가 집단이 나타났다.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영국의 광우병 사태, 지구온난화 문제 등은 기폭제가 됐다. 시민들이 직접 전문지식을 반박하거나 대항전문가들과 연대해 정부의 공식 입장에 대항했다.
국내 대항전문가 그룹을 연구해온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우리 사회는 특히 많은 정책 결정이 주류인 ‘지배지식동맹’에 의해 결정된다. 지배지식동맹은 정부의 정치적 결정에서 정치적 성격을 지우고 정치적 논쟁을 피하게 만드는 중요한 정치적 파트너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가 직면했던 사회적·정치적 논란의 많은 부분이 전문지식과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 백혈병 사망(2007),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2008), 4대강 사업 논쟁(2008), 천안함 침몰(2010) 등을 계기로 정부·주류지식권력과 시민·대항전문가 사이에 지식다툼이 벌어졌다.
보수언론의 광우병 논리를 뒤집은 말조지 오웰은 소설 에서 ‘노블랑그’라는 조어로 지식인들이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애매한 표현들을 비판했다. 주류 지식인·전문가들은 대중과 소통하기보다 자신들만의 노블랑그를 생산하는 데 주력한다. ‘과학적 인과관계가 없다’는 말은 정부와 기업, 전문가들이 공식적인 입장 발표에서 즐겨 사용하는 노블랑그다. 예를 들면 이렇게 쓰인다. “고압 송전탑 인근에서 전자파에 장기 노출되면 암이 진전된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복잡한 전문용어는 여전히 대중에겐 번역이 필요한 다른 세상의 언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다른 세상의 언어가 필요한 땅은 더 넓어진다는 게 문제다. 과학기술은 해당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면 건드릴 수 없는 ‘암흑상자’가 되었다. 이 복잡하고 낯선 언어를 번역하는 것이 대항전문가의 역할이다.
‘번역자’로서 대항전문가들은 일반 대중의 말을 전문지식으로 번역해 논리를 만들고, 전문지식을 대중의 말로 바꾸어 대중을 설득한다. 2008년 광우병 촛불 당시 복잡한 광우병·자유무역협정(FTA) 관련 지식을 촛불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던 것도 대항전문가들의 기여 덕분이다.
당시 과학·법률·통상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정부-‘어용과학자’ 카르텔에 대항해 꾸린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내 전문가자문위원회는 과학과 통상, 법률의 복잡한 전문지식이 뒤섞인 자료들을 ‘광우병 10문10답, Q&A’를 통해 쉽고 빠르게 전달했다. 단박에 이해되는 비유는 필수다. 2010년 촛불 2주년 당시 “광우병으로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보수언론의 논리를 두고 우희종 교수는 이와 같이 응수했다. “그럼 이명박 대통령과 기자분들은 예방주사 안 맞습니까?” 역학의 기본은 ‘사전 예방’이다. 병에 걸린 사람이 없다고 사전 예방 원칙을 포기하겠느냐는 일침이었다.
박상표 국장은 당시 모였던 각 분야 대항전문가들 가운데서도 촛불시위 국면에서 치열하게 주요 쟁점의 논거를 만들어낸 전문가로 꼽힌다. “2006년에 노무현 정부가 ‘소의 치아로 나이를 감별해서 30개월 미만 쇠고기를 수입하면 안전하다’는 논리를 폈는데 박상표 국장이 치아 감별은 오류가 많다는 걸 지적했어요. 박 국장이 등장하면서 논쟁이 상당한 구체성을 띠게 된 거죠.”(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박 국장은 당시 기자회견문이나 반박 자료 작성을 도맡아 어려운 전문지식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썼다.
국정원 직원 연구실 찾아와 “깨끗하시네요”산업의학과 전문의인 공유정옥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 활동가도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삼성직업병 통역자’로 소개하곤 한다. 악성 림프종을 앓고 있는 전 삼성반도체 노동자 송창호씨는 김종영 교수의 논문 ‘삼성백혈병의 지식정치’(2013)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제가 무슨 약품을 썼다, 무슨 일을 했다고 말하고 이것이 위험한 것이었다 말을 하면 그 사람들(반올림 전문가들)은 뭐가 위험한지, 수치로 얘기를 해요. 제가 백날 말한 것보단 단 하나의 숫자로 나오는 게 열배 백배 좋아 보여요.”
삼성은 처음부터 줄곧 ‘질병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불확실성의 전략을 택했다. 반올림과 환자들은 더 많은 과학적 증거 자료를 찾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전문가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정말 자신이 없었다. 삼성의 외압 가능성을 떠나 백혈병의 산재 인정 자체가 낯설고 증거는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문제를 밀고 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전문지식을 갖춘 대항전문가의 존재는 그럴 때 빛난다.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지만 국내에 번역된 자료는 없었다.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공유 활동가가 합류하면서 외국 문헌을 취재해 1차 자료를 만들 수 있었다. 이 노무사는 “당사자의 의심이 맞고, 비슷한 사례가 어딘가엔 있을 것이고, 유의미한 근거가 있다고 힘을 실어줄 전문가가 초기 단계에서 중요하다. (대항전문가는) 우리 사회에서 소수라도 꼭 필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타협 없는 대항전문가의 길은 가시밭길이다. 국립대학인 서울대에서 근무하는 우희종 교수조차 그로 인한 불이익을 아직도 자주 겪는다. 우 교수는 광우병 관련 연구비를 신청했다가 심사위원으로부터 “그때 정부에 반대했던 사람이 왜 이런 연구를 한다는 거냐”는 말을 들은 뒤 연구 승인을 받지 못했다. 보수언론으로부터 ‘선동세력’으로 낙인찍히고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으로부터 앞뒤 없는 표절 공세에 시달렸다. 국가정보원 직원이 연구실로 찾아와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교수님, 깨끗하시네요.”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양심학자 기다리기보다 활동가 스스로박상표 국장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박 국장의 한 친구는 “광우병 반대 움직임을 이끈 입장이다보니 경찰과 국정원의 상시적인 감시를 겪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우석균 정책위원장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악의적인 보도나 댓글, 이런 공격이 해마다 이어졌죠.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최전선에서 포화를 맞으면 다치게 됩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승승장구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 당시 정부 쪽 ‘전문가’였던 이영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2013년 대한민국학술원 신규회원으로 등록됐다.
우희종 교수는 박 국장의 경험이 자신의 경험과는 조금 달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우리(교수) 같은 사람은 촛불 이후 연구비 신청이나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건 감내할 수 있는 어려움이죠. 기댈 곳이 없는 전문가들이 정직한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정부 권력, 숱한 반대 세력의 음해를 견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 교수는 덧붙였다. “박상표 국장의 선택은, 우리 사회에 ‘앞으로 건전한 시민과학자가 등장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봐요.”
전문지식이 쟁점으로 부상하는 일은 앞으로 더 많아질 전망이다. 김종영 교수는 이제 우리 사회가 ‘포스트 전문가’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한다. “정부가 정책 결정을 독점하는데 이를 막으려면 대항전문가를 키워낼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풀뿌리 연구소들이 보통 뜻있는 독지가가 자금을 낸다든지 해서 시민 후원으로 운영되는데 우리는 그런 전통이 약하죠. 방법을 고민할 때입니다.”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전문성을 결합한 운동에 대해 시민사회에서도 관심이 높아졌다. 현재 환경운동 쪽에서만 20명 가까이 관련 박사 학위를 받거나 연구를 진행 중이다. 산업공학을 전공한 뒤 뒤늦게 환경보건학 박사 학위를 받은 최예용 소장도 그중 한 명이다. “과거엔 해당 분야의 양심적인 학자가 관심을 기울여주길 기대했지만 그렇게 하면 속도도 느리고 사실관계 확인도 잘 안 돼요. 활동가 스스로 논문을 쓰거나 최소한 공동작업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어요.”
“박상표 국장은 굉장히 좋은 본보기”갈 길은 멀다. 학위를 따고도 열악한 시민운동 진영에서 자신의 전문 분야를 지속적으로 훈련하긴 어렵다. 국내에 희소한 식품안전 영역을 공부하기 위해 유럽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왔지만 단체 살림을 돌보느라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활동가도 있다. 최 소장은 덧붙였다. “학위를 딴다고 곧바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부한 활동가들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시기에, 필요한 영역에서 구실을 하려면 일정한 훈련 기간이 필요하겠죠. 인터넷 자료가 아닌 원 자료들을 찾아 계속 문제를 제기한 박상표 국장은 굉장히 좋은 본보기입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참고 문헌김종영, ‘대항지식의 구성: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운동에서의 전문가들의 혼성적 연대와 대항 논리의 형성’, 2011
김종영·김희윤, ‘삼성백혈병의 지식정치: 노동보건운동과 현장 중심의 과학’, 2013
김지원, ‘4대강 개발의 지식정치: 대항전문가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2011
변혜진, ‘촛불운동 전후 광우병 위험 ‘과학논쟁’에 대한 연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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