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하늘이 봄비를 흩뿌리고 있었다. 서울 여의도 공항 활주로에 서 있던 공군5공수비행단 소속 C46 몬슨905 수송기의 프로펠러가 굉음을 내며 돌기 시작했다. 군 정기 운항기인 이 수송기는 군인 등 11명을 태운 채 대구를 향해 출발했다. 이륙한 지 10분이 지났을까. 서울 뚝섬 상공을 지나던 수송기는 뒤뚱거리다 이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검은 연기에 휩싸인 수송기가 향한 곳은 서울 신당동의 산비탈 판자촌이었다. 불길에 휩싸인 수송기는 판자촌에 있던 천부교 전도관의 지붕을 먼저 들이받고, 판잣집 10여 채를 덮친 뒤에야 멈춰섰다. 이날 사고로 군인과 주민 등 6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재민만 160명이 생긴 서울 도심의 대참사였다.
청와대 중심 반경 6.5km 비행금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 사고는 1967년 4월8일 서울에서 실제 벌어졌던 일이다. 아직까지도 서울 도심에서 일어난 최악의 항공기 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군용 등으로 쓰이던 서울 여의도 공항은 1971년 성남 서울공항(K-16)이 생기면서 사라졌지만, 서울 도심의 항공기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 11월16일 김포공항을 출발해 잠실 헬기장으로 향하던 LG전자의 자가용 헬기가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를 들이받고 추락해 탑승자 2명이 사망한 사고도 이 가운데 하나다.
서울 하늘 속 역사를 살펴보면, 그동안 도심에서 발생한 헬기 사고 대부분은 군·경찰 등 국가기관이 주인공이었다. 민간 항공기 사업이 활성화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C46 수송기 추락 사고가 벌어진 뒤에도 서울 도심에는 항공기 사고가 이어졌다. 1976년 7월28일에는 경찰 치안본부의 항공대 소속 헬기가 서울 염창동의 한 공장 옆 공터에 추락했다. 당시 사고로 조종사와 내무부 장관 비서관 등 2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6년 9월에는 방역 작업을 하던 서울시 소방본부 항공대 소속 헬기가 서울 성동구 중랑천변에 추락했고, 1998년 1월에는 훈련 비행 중이던 육군항공사령부 소속 군용 헬기가 서울 신길동 독서실 건물 옥상에 떨어졌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사고로는 2001년 5월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소속 헬기가 올림픽대교 중심부 조형물에 부딪친 사고다. 그러나 헬기가 서울 도심에서 초고층 건물을 들이받은 사고는 LG전자의 자가용 헬기가 처음이다.
LG전자의 자가용 헬기 같은 민간 항공기의 서울 도심 사고가 늘어나게 된 것은 정부의 ‘비행금지구역’ 완화와도 관계가 깊다. 박정희 정권이 출범한 1963년에 처음 설정된 비행금지구역은 국가 안보 등의 이유로 항공기의 출입 자체를 금지하는 영역을 말한다. 비행금지구역은 ‘휴전선 비행금지구역’(P518)과 ‘수도권 비행금지구역’(P73)으로 나뉜다. 현재는 다소 완화됐지만, 처음 비행금지구역이 지정됐을 때는 휴전선 이남부터 서울의 한강을 포함한 한강 이북 지역 대부분이 비행금지구역이었다. 현재 민간에 개방한 대통령 별장인 충북 청원군의 청남대 일대(P112)도 비행금지구역이었다.
이 가운데 서울 도심과 관계가 깊은 지역은 P73이다(54쪽 그래픽 참조). 청와대 등을 중심에 두고 반경 6.5km(3.5해리)에서는 그 어떤 고도에서도 항공기의 운항이 불가능하도록 정해둔 것이다. 이 구역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보안 강화 등을 이유로 반경 8.3km(4.5해리)로 확대됐다. 한강 대부분을 포함하는 한강 이북 지역 도심이 이 영역에 포함됐다.
홍보용 대형 풍선 띄우는 것도 금지항공업계에서는 빗장처럼 걸어둔 서울 하늘을 열어달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항공기는 점점 늘어나는데 제한된 비행 경로로만 다니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P73을 침범한 여객기를 향해 쏜 포탄이 서울 도심에 떨어지는 사고도 있었다. 1974년 12월16일 저녁 일본 오사카를 출발해 서울 김포공항으로 들어오던 대한항공 DC8 여객기가 방향을 잘못 잡아 비행금지구역인 서울 여의도~서울역~남산~왕십리를 통과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서울 도심에 설치한 대공포의 경고사격으로 종로·청계천·창신동 등에 유탄이 떨어져 1명이 죽고 27명이 다쳤다. 현재 P73 구역은 A구역(비행금지구역)과 B구역(완충지역)으로 나눠 이처럼 불가피한 사고 등을 최소화하고 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닫혀 있던 한강 상공의 하늘이 열린 결정적인 계기는 서울 성수대교 붕괴 사고였다. 1994년 10월21일 성수대교 상판이 내려앉아 32명이 사망한 이 사고 당시, 인명 구조를 위해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경찰 헬기가 15분 만에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비행금지구역인 한강을 따라 갈 수 없어, 관악산 밑으로 도는 항로를 따라갔기 때문이다. 당시 소방·항공 관계자 등은 “한강을 가로질러 갔다면 약 4분 거리라 인명 구조 등에 더 용이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민간 헬기사업을 활성화하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비행금지구역을 줄이고 한강 상공을 민간 항로로 개방하면, 민간 헬기 노선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1991년에 만들어진 잠실 헬기장을 이용하는 김포공항~잠실의 헬기 운항로가 있었다. 대전 엑스포가 열린 1993년에는 김포~잠실 헬기장~대전 행사장으로 가는 노선을 1700여 명이 이용하기도 했다. 그 뒤 1994년 삼성항공이 잠실~용인 자연농원(현 에버랜드) 운항 사업을 시작했고, 1995년에는 서울의 중심지인 한강대교 중심부에 있는 노들섬(중지도) 안에 헬기장이 생겼다.
그러나 지금도 국방부와 청와대 경호를 맡고 있는 수도방위사령부 등은 서울 도심의 비행금지구역을 오고 가는 것 자체를 엄격하게 통제한다. 항공촬영을 위한 비행체를 띄우거나 홍보용 대형 풍선을 띄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무선조종(RC) 헬기에 카메라를 달아 대형 행사용 항공촬영을 전문적으로 하는 한 프로덕션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2~10kg의 촬영 장비를 150m 미만 상공에 띄우는데, 서울 도심의 비행금지구역인 경우에는 몇 달 전부터 국방부와 수도방위사령부 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허가도 정부 주관 행사가 아닌 경우에는 승인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항공업계 등에선 특정 고도만 운행을 제한하는 게 아닌 무제한 고도로 서울 도심의 비행금지구역을 정해둔 것은 과도한 규제가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시계비행 방식’(VFR)의 한계 지적서울 도심에서 헬기 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하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시계비행 방식’(VFR)의 한계를 지적한다. 항공기 비행 방식으로는 조종사가 직접 눈으로 지형과 장애물을 확인하면서 다니는 ‘시계비행 방식’과 항공기 안 계기·지표 등을 통해 운항하는 ‘계기비행 방식’(IFR)이 있다. 계기비행 방식은 야간비행이나 악천후, 그리고 대형 여객기를 몰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국토교통부 항공정보서비스(AIP)는 시계비행을 위한 구체적인 지표를 정해둔다. 예를 들어 남쪽에서 용산 헬기장을 향해 날아오는 경우에는 경부고속도로 상공을 따라가다가 반포대교 중간 지점, 동작대교 중간 지점, 정사각형 굴뚝을 경유해 들어가는 것이 그렇다. 중지도에서 잠실을 갈 때도 동작대교~청담대교~영동대교 중간 지점을 통해 잠실 헬기장으로 드나들도록 정해두고 있다. AIP에서는 “항공기 조종사는 아파트 단지, 인구밀집 지역과 학교 지역 상공의 비행을 최대한 회피해야 하며, 야간에는 항공기의 모든 외부 등화를 점등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승연 국토교통부 운항정책과 사무관은 “항로를 구성하려면 전파가 중요하다. 헬기는 다른 항공기에 견줘 낮게 날고 도심 등에서는 직진 성능이 있는 전파가 제대로 잡히지 못하는 탓에 시계비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도심을 오가는 헬기 등이 계기비행을 하려면 관제시설 등을 촘촘히 배치해야 하지만 그만한 인력이 없는 것도 문제다. 현재 헬기는 헬기장에서 이착륙할 때 특정 지역에서만 관제시설과 통신을 한다.
이번 사고로 서울 도심을 지나다니는 항공기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도 한층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부랴부랴 “기상 상태가 나쁠 때 도심 내 운항 제한 방안을 마련하고, 헬기 안전에 관한 종합 대책도 내놓겠다”고 나섰다. 그런 점에서 국회 입법조사처가 11월22일 LG전자 자가용 헬기의 충돌 사고와 관련해 운행 안전성을 개선하는 내용을 담아 발표한 보고서에 주목해볼 만하다. 이 보고서는 “현재 헬기에서는 따로 정하지 않고 있는 헬기 운행에 대한 최저 기상 기준을 항공법 시행규칙에 추가해 도심 운행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국토교통부가 운항기술 기준을 보완해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헬기 운행에 대한 최저 기상 기준 설정이 시급하며, 악천후에 특별 계기비행 방식을 빌려서 무리하게 운영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밖에 초고층 빌딩이 늘어난 환경에 따른 보완책도 제시했다. 보고서는 “교통량이나 장애물이 많고 절차가 어려운 도심 내 지역에 대해서는 특정 공역을 지정해 통제하고, 자가용 헬기·항공기를 위해 시계비행을 보조하는 항공 관제 시스템을 적용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서울 도심 하늘길도 지상의 꽉 막힌 도로처럼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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