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뚜껑이 덜그럭거리기 시작했다. 뚜껑 아래에선 ‘철거왕의 정·관계 로비 명단’이 끓고 있다. 10월2일 김명수 서울시의회 의장이 구속됐다. 다원그룹 이금열 회장( 973호·975호·976호 참조)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다. 언급되는 액수는 억대다. 냄비 안엔 누가 더 있을까. 검찰은 냄비 뚜껑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을까.
추진 방식 달라 갈등 심했던 신반포 1차 사업
수원지방검찰청은 김 의장이 서울 신반포 1차 재건축사업의 편의를 봐준 대가로 거액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김 의장의 집무실과 자택 외에도 서울시청 주택정책실과 재건축조합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서울시 재건축 담당을 소환 조사하며 추가 관련자가 있는지 찾고 있다.
신반포 1차 사업 이면엔 ‘누군가의 힘’이 필요했던 배경이 있다. 개발 방식을 둘러싼 이견으로 1~19동(도급제: 시공사는 도급계약만 하고 사업 손익은 조합원 책임)과 20~21동(확정지분제: 조합원은 확정된 지분만큼만 부담을 지고 추가 손익은 시공사 책임)의 재건축이 분리 추진됐다. 조합은 하나인데 추진 방식이 달라 유불리를 놓고 갈등이 심했다. 10년째 표류하던 사업이 지난 1월29일 서울시 건축심의를 통과했다. 검찰은 난항을 겪던 심의가 처리되는 과정에서 김 의장이 ‘어떤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 의장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뇌물 준 주체를 주목해야 한다. 조합이 아닌 이 회장 쪽이다. 신반포 1차에서도 ‘철거 쪼개기’를 통한 다원의 이익 부풀리기(975호 줌인 참조)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철거는 시공사인 대림산업이 맡았다. 조합과 대림 간의 계약은 ‘거주자의 이주’와 ‘건축물 철거에 따른 지장물의 철거’를 포함한다. 계약서는 ‘기존 건물의 철거 및 잔재처리’와 ‘도로, 통신, 가스, 상하수도, 지역난방 설치공사’ ‘폐석면조사비, 폐석면처리비, 지장물(전기, 상수, 하수, 통신, 가스 등) 이설(철거)’을 포괄하고 있다.
지난 4월2일 조합은 20·21동의 지장물 이설공사 계약(21억320만원)을 경북전기·프라나건설·케이원엔지니어링과 별도로 맺는다. 시공사와의 계약에 포함되는 내용을 다른 업체와 추가로 계약하는 방식이다. 3개사는 재개발·재건축 지역마다 ‘삼총사’로 등장하며 부당이득을 취하는 다원그룹 계열사들이다. 그동안 별도 회사처럼 입찰하다가 신반포 1차에선 하나의 계약서에 동시에 이름을 올려 도장을 찍은 사실도 특이하다. 낯익은 이와소종합건설도 정비기반시설 공사 명목으로 65억7800만원의 계약(5월7일)을 따냈다. 가재울 4구역(서울 서대문구) 뉴타운사업에서 공사비를 과다 계상해 조합원 부담을 가중시킨 혐의(973호·976호 표지이야기 참조)로 재판대에 오른 다원의 토목공사 업체다. 삼무개발이 이주촉진 업무를 10억1640만원에, 다원이엔씨가 폐석면 해체 처리공사를 12억2100만원에 계약한 것도 중복이다. 시공사와 이미 계약한 내용들이며, 물론 다원의 회사들이다. 이 회장이 김 의장에게 뇌물을 준 이유는 사업을 통해 가져가는 이익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변호인만 무려 29명검찰은 7월 말 이금열 회장을 체포·구속(968억원 횡령·150억원 배임·168억원 편취 등 혐의)한 뒤 그의 정·관계 로비 정황을 캐왔다. 다원그룹 내·외부 관계자들은 폭력을 앞세워 업계를 평정한 일개 철거업체가 계열사 20여 개를 가진 기업으로 성장한 핵심 비결이 정·관계 로비라고 증언한다. 검찰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인천 부평구 십정 3구역 재개발사업 선정 대가로 다원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강아무개 전 인천시의원도 구속(9월27일)했다.
이 회장은 현재 수원지방법원에서 재판 중이다. 변호인만 무려 29명이다. 변호인 중엔 부장판사 출신이자 야당 유력 정치인의 형도 포함돼 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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