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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리스크 무서워 법도 못 만들어?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부적격 판정 기준과 특경가법 배제 여부 등 이견으로 국회 처리 안 돼… 금융위 “오너 리스크 부담”
등록 2013-07-03 10:38 수정 2020-05-03 04:27
금융회사 지배구조개선법 처리가 국회에서 난산을 거듭하는 현실을 한발 떨어져서 살펴보면, 우리나라 재벌 문제의 현주소가 드러난다. 2008년 4월4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사무실에 출두하는 모습을 사진기자들이 카메라에 담고 있다.한겨레 신소영

금융회사 지배구조개선법 처리가 국회에서 난산을 거듭하는 현실을 한발 떨어져서 살펴보면, 우리나라 재벌 문제의 현주소가 드러난다. 2008년 4월4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사무실에 출두하는 모습을 사진기자들이 카메라에 담고 있다.한겨레 신소영

금융회사 지배구조개선법(이하 지배구조 법) 처리가 여·야·정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 고 결국 9월 정기국회로 미뤄졌다. 당초 여 야는 경제민주화 법안 중 하나로 이 법안을 꼽으며 6월 국회 처리에 합의한 바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금융 계열사에 대한 영향력 이 줄어들거나 심지어 해당 회사를 팔아야 할 뻔한 재벌그룹들은 한숨 돌리게 됐다. 무 엇이 여·야·정이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게 했을까.

정부·여당 “부적격 판정 기준이 과도”

지배구조법은 기존 법을 손질해 다시 내 놓는 개정안이 아닌 제정안이다. 지난해 8월 김기식 민주당 의원이 첫 발의를 했고, 뒤이 어 여야 의원들은 물론 정부도 잇따라 법안 을 제출했다. 이 법의 목적은 현재 은행법· 보험업법 등 각 업권별로 나뉜 대주주에 대 한 규제를 하나의 틀로 통일하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대주주 규제 정도가 강한 은행법 과 보험업법의 내용을 증권·카드·캐피털 등 다른 업권으로 확대한다는 의미다. 법 적용 대상에 재벌그룹 계열사가 다수 포진하고 있 는 터라 ‘재벌 규제법’이란 성격도 갖는다. 전 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를 대변해온 이익단 체들이 법 제정에 반대하는 이유다.

여·야·정 모두 지배구조법 제정의 취지에 는 별다른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이 법의 핵 심인 대주주 적격성 심사 범위를 2금융권까지 확대한다는 큰 줄기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는 얘기다. 경제민주화 논의가 불붙기 전인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각 업권별 차이 점을 강조하며 지배구조법 제정 자체를 반대 하는 주장도 적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여· 야·정의 지배구조법 제정 의지는 일보 전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법이 6월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은 이유는 뭘까. 문제는 각론이다. 이 법 의 골간은 금융회사 대주주의 적격성을 금 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주기적으로 점검 하고, 부적격 판정을 받은 대주주에게는 보 유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지분 을 매각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심사 범위 와 부적격 판정의 기준이 핵심 쟁점으로 떠 올랐다.

심사 범위 쟁점과 관련해선 6월 국회에서 별다른 논쟁이 일지 않았다. 김용태 새누리 당 의원이 재계의 의견을 일부 수용해 심사 범위를 최대주주로 한정하자는 별도 법안을 내놨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직접 지분이 없더라도 금융회사에 영향을 미 치는 ‘사실상의 지배자’도 심사 범위에 포함 시키기로 여·야·정의 의견이 모였다. 가령 금융 계열사에 대한 직접 지배 지분은 없지 만 계열회사를 통해 지배하는 재벌 그룹 총 수가 있다면 그 역시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 상에 포함된다는 의미다.

남은 쟁점은 부적격 판정 기준이었다. 애 초 법안을 발의한 김기식 의원 등 야당 의원 들은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은 대주주(나 이 에 준하는 지배자)는 의결권을 제한하고, 그 죄질에 따라 보유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여당과 정부는 부적격 판정 기준이 과도하다고 봤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 은 보편타당의 원칙에 따라 수긍할 수 있는 대목이지만, 부적격 판정 기준을 설정하는 문제는 과잉 입법 배제라는 원칙과 충돌한 다”고 말했다.

정부는 금융관련법과 공정거래법, 조세 범처벌법을 위반한 경우에만 대주주 부적격 사유로 보자는 의견을 냈지만, 야당은 특정 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도 여기에 포 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국회 정 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참여하고 있 는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특경가법을 빼버 리면 법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우려가 있 다”고 말한다.

야당 “특경가법 빼면 법 실효성 없다”

실제 금융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 의 지배자인 재벌 그룹 총수들이 그간 저지 른 범법행위에 대해선 대부분 특경가법 조 항이 적용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 몽구 현대ㆍ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현재 최태원 SK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도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되짚어 말하면 특경가법을 제외하면 사실상 ‘재벌 총수 견제’라는 목적은 상당 부분 훼손 되는 것이다.

특경가법이 적용되는 범죄는 뇌물 공여나 배임에 따른 피해액이 50억원이 넘는 중범죄 에 해당한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의 취지 는 과연 중범죄를 저지른 대주주가 운영하 는 금융회사를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가 에 있다. 즉, 언제든지 돈을 빼먹거나 부정한 일에 거액을 쓰는 대주주는 금융회사를 운 영 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런 취지 에 비춰볼 때, 특경가법 배제 논리는 설득력 이 떨어진다.

이 밖에 부적격 대주주에 대한 제재 수 위도 또 다른 쟁점이다. 원안에는 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이 같은 범죄를 저지를 때도 대 주주에게 연대책임을 물어 의결권을 제한하 거나 지분을 매각토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당과 정부는 금융연좌제라는 비판과 함 께 소수 지분을 가진 주주가 단지 특수관계 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주주까지 책임지도 록 하는 것은 과잉 입법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쟁점은 6월 국회에서는 별로 논의되지 못했다. 특경가법 적용 또는 배제라는 쟁점 에 묻힌 탓이다. 김기식 의원실의 홍일표 보 좌관은 “6월 국회에선 일감 몰아주기 금지법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논의해야 할 법안이 많았던데다, 금융지배구조법은 논의 지점이 많아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금융위 쪽도 “지배구조법 통과까지 넘어야 할 산이 여럿 남았다”고 말했다.

“금융권 지각변동 우려된다”

지배구조법 처리가 난산을 거듭 중인 현 실을 한발 떨어져서 살펴보면, 우리나라 재 벌 문제의 현주소가 다시금 드러난다. 6월 국회에서 쟁점이 된 특경가법 배제에 따른 실효성 문제에 대해선 정부도 상당 부분 공 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특경가법 배제 를 주장한 이유는 특경가법을 실제 적용할 경우 시장에 미칠 여파가 적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재벌 총수들이 중범죄 를 저지를 개연성이 있고 그에 따라 지분 변 동, 의결권 제한 조처가 이뤄질 경우, 금융권 의 지각변동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잠재된 오너 리스크 때문에 입법 과정이 왜곡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한겨레 경제부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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