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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통일부 장관?



“정신 나갔다” “자격 없는 사람” 보수 논객 비난받는 류길재 장관… 남북 기존 합의 존중 선상일 뿐 포용론자로 보기에는 무리
등록 2013-06-26 14:00 수정 2020-05-03 04:27

6월14일 저녁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13주년 기념식에 류길재(54) 통일 부 장관이 참석했다. 통일부 장관의 참석은,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김하중 장관 이 후 5년 만이었다. 류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새 정부는 6·15 선언을 포함해 7·4 공동성 명, 남북기본합의서, 10·4 선언 등 남북 간 의 합의를 존중한다”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합의 존중’ 의 사를 밝혔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지난 6월14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15 남북 정상회담 13주년 기념행사’에서 통일부 장관으로서는 5년 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지난 6월14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15 남북 정상회담 13주년 기념행사’에서 통일부 장관으로서는 5년 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뒤집힌 “대화 제의 아니다”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는 인터넷매 체 칼럼에서 거의 막말 수준으 로 류 장관의 발언을 비난하고 나섰다. “아 무래도 류 장관이 정신이 나갔거나, 제정신 이 아니거나, 그렇지 않다면 실성이라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도대체 그는, 자신을 김대 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의 통일부 장관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 신 같은 사람들의 지지에 힘입어 집권한 박 근혜 정부의 통일부 장관이 과거 김대중·노 무현 정부처럼 대북 포용정책을 수용하는 건 봐줄 수 없다는 반응으로 들린다.

포용정책 반대 진영에서 류 장관에 대한 비판이 나온 건 사실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4월11일 오후 4시께 류길재 장관은 ‘통일부 장관 성명’을 발표하며, “개성공단 정상화는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이와 관련 북 측이 제기하는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당국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길 바란다” 고 말했다. TV조선 출연 도중 이 내용을 중 계방송으로 접한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생방송에서 즉각 류 장관을 비판했다. “개성 공단을 자꾸 남북 화해의 상징이라고 해요. 아닙니다. 우리가 뜯어먹히는 상징이죠. 북 은 일체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강탈하는 단 계로 들어갔잖아요. 우리가 몇조 투자한 것 을 공짜로 먹겠다는 단계로 들어간 것입니 다. 그런데 통일부 장관이 나와서 이렇게 희 미한 이야기를 하면 됩니까? 강력한 이야기 를 해야지요.”

사실 이날 성명 발표에서 류 장관은 ‘정부 차원의 공식 대화냐’는 질문을 받고 “대화를 제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지금 현재 개 성공단 문제, 또 북한의 가중되는 위협적인 행동, 이런 모든 문제들을 대화를 통해 풀어 야 한다는 점을 대내외에 천명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곧, 대화 제의가 아니란 뜻이었다.

그런데 10여 분 뒤, TV조선 화면 아래에 는 ‘정부 고위 관계자 “북한에 대화 제의한 것 맞다”’라는 자막이 떴다. 진행자가 이에 대해 다시 질문하자, 조 대표는 류 장관에 대 한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류길재라는 사람 이 미국 사람은 아니잖아요. 한국 사람(류 장관)의 이야기를 어떻게 한국 사람(정부 고 위 관계자)이 또 통역을 합니까? 저 사람(류 장관)은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상황을 오 판했잖습니까?”

‘신뢰 조성 기본으로’와 ‘기본적 적대성’

그러나 류길재 장관을 대북 포용론자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6월,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였던 그는 포용노선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는 ‘햇 볕정책’이 북한의 내부 변화를 유인할 수 있 는 정책이라고 주장했지만, 남한의 그러한 공세적인 정책은 오히려 북한으로 하여금 반 발과 위축으로 대응하도록 한다. …무조건 북한을 지원해야 하고 북한의 입장을 변호 하는 듯한 태도는 국내 갈등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남한 정부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류 장관이 이번 6·15 행사에서 김대중 정 부 시절의 6·15 선언과 노무현 정부 때의 10·4 선언을 거론한 것도, 포용론적 접근이 아니라 ‘기존 합의 존중’의 선상에서 나온 얘 기로 봐야 한다.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1주 년이던 2009년 2월에 쓴 글에서, 당시 정부 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강조하면서 시 작된 6·15 및 10·4 선언의 인정 여부 논란이 정부가 범한 주요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이 명박 정부가 한 번도 6·15와 10·4를 불인정 하는 표현을 구사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전 임 정부의 성과와 합의를 도외시하는 것처 럼 보임으로써 무익한 상황이 초래되었다.”

류 장관은 남북 간에 이뤄진 다양한 기존 합의가 “그만큼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이 진행된 바 있다는 것”의 증명이라고 봤다. 그러므로 “새로운 방안을 구상하는 것 은 매우 어렵기도 하지만, 불필요하다고 생 각한다. 신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기본으 로 돌아가는 것이 핵심”이라는 게, 지금도 유 지되는 것으로 보이는 그의 생각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지난 3월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남북의 모든 약속과 합 의를 존중하고, 그러한 합의에 담긴 상호 존 중의 정신 위에서 정책을 추진하겠다. 남북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형식에 연연하 지 않고 언제든 만나서 대화하겠다”고 말하 기도 했다. 그는 진정성 있는 의사소통, 한 반도 비핵화, 북한 개혁·개방 등을 목표로 내세우면서도, ‘북한에 비굴한 모습을 보이 며 위장해선 안 된다’거나 ‘남북관계는 기본 적으로 적대성에 기초하고 있다’ ‘한국이 북 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등의 인식을 오랫동안 견지해 왔다.

결국 ‘신뢰’가 우선돼야 한다는 한반도 신 뢰 프로세스, 곧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을 맡을 적임자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에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불분명한 이유로 대통령직인수위원직을 사퇴한 최대석 이화 여대 교수와 더불어 통일부 장관감으로 주 목받았다.

하지만 류 장관과 청와대 사이엔 불협화 음이 존재한다. 앞서 “대화의 장으로 나오길 바란다”고 했던 4월11일 오후 성명에 대해, 류 장관은 현장에서 ‘대화 제의는 아니다’라 고 설명했다. 청와대 반응은 달랐다. 청와대 의 고위 인사는 일일이 언론사에 전화를 걸 어 “류 장관의 성명은 확실한 대화 제의”이 고 “박 대통령의 뜻”이라며 류 장관의 말을 뒤집었다. 저녁엔 급기야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반드시 가 동돼야 한다. 북한과는 대화를 할 것이다. 그 일환으로 오늘 통일부 장관이 성명을 발 표한 것”이라고 했다. 결국 류 장관은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자신에게 주어진 성명서만 읽은 ‘대독 장관’이 되고 말았다.

‘대독 장관’, 남북회담 ‘집행자’

6월 초 남북회담을 추진하다 무산되는 과 정에서도 통일부나 류 장관의 목소리는 중 요하게 다뤄지지 않았고, 실질적으로는 청 와대가 모든 것을 주도했다는 게 전문가들 의 중론이다. 겉으로 드러나기로는 ‘급’과 ‘격’ 을 둘러싼 이견 탓에 무산된 것이지만, 대북 협상의 경험과 전통이 있는 통일부가 그 정 도 차이를 예상 못했을 리 없고 통일부의 보 고를 받는 장관도 마찬가지였을 거란 관측이 다. 결국 통일부도 장관도 전문적 역량을 인 정받지 못하고, ‘집행자’ 구실만 요구됐다는 얘기다.

4월 중순 어느 주말 류 장관은 북한대학 원대학교 자신의 연구실에 잠시 들른 적이 있었다. 한 동료 교수가 그를 보고 ‘(장관은) 할 만하신가’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잘하고 싶은데, 잘돼야죠.” 그 문장에 는 본인의 의지와 당위가 담겼을 뿐, 현재와 미래는 없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참고 문헌
류길재, ‘단 한 번의 정상회담이 분단 구조를 깰 순 없다’, 2005년 6월호
류길재, ‘이명박 정부 시대의 남북관계: 변화의 모색과 전망’, 200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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