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현장을 떠돌며 살아온 소설가 황석영(70)씨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작가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출판계를 향해서다. 5월23일, 황씨는 한국작가회의·천주교인권위원회 주최로 서울 종로구 사간동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출판계에 만연한 사재기 행태 근절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사재기 관련 법 개정과 검찰 수사 등을 촉구했다. 출판사가 자사의 책을 구입해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사재기’는 주가조작과 같은 범죄이자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것이다.
지난 5월 초 출판사 ‘자음과모음’이 펴낸 서적 3권에 대해 사재기 의혹이 일어났다. 이 가운데 1권이 황씨가 지난해 문학 인생 50년을 맞아 펴낸 였다. 그는 출판사로부터 출판권을 회수하고 절판을 선언한다. 향후 출판사를 대상으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낼 계획이다. 황씨는 이번 사태를 겪기 전까지 출판계에서 줄곧 문제로 지적되던 사재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을 위해 ‘사재기 대행업체’까지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충격이다. 대형 인터넷 서점도 이러한 사기 행위를 은닉·방조하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분명히 책임이 있다.”
사재기는 베스트셀러 위주의 책 판매 구조와 맞닿아 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야 판매 부수가 늘어나다보니 부정행위를 하는 것이다. 가격 파괴와 불황이 겹치면서 신간도서의 판매율은 낮아지고, 베스트셀러 중심의 도서 판매 구조는 더욱 고착화됐다. “예전보다 전체 시장 매출에서 베스트셀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또 사재기 대행업체들이 자사 영업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그 효과를 과장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의 설명이다.
자음과모음은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전에도 사재기 문제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에세이 를 온라인 서점을 통해 불법으로 사재기했다며 과태료 300만원을 매겼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라, 사재기를 한 출판사나 저자에겐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법무법인 덕수 김형태 변호사는 “책 판매 시장을 교란하는 사재기에 대해서는 형사법적 처벌 규정을 찾기 어려워, 이 부분에 대한 입법 청원 활동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서평단을 모집해 책을 구입해주는 등 적발해내기 어려운 사재기를 하는 출판사가 있다는 말도 새어나온다.
“도서기증·끼워팔기·경품도 일종의 사재기”황석영씨는 또 “서점을 통한 도서 기증, 정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할인 판매, 다른 도서 끼워팔기, 과도한 경품 증정 등도 공개적인 사재기의 일종”이라며 완전한 도서정가제 시행을 요구했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출간 18개월 미만의 신간도서는 최대 19%까지 할인이 가능하고, 출간 18개월이 지난 도서와 초등학습 참고서 등은 무제한 할인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출판사들이 사재기 유혹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기호 소장은 “인문사회과학 분야 양서가 나오면 공공도서관에서 구입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좋은 책을 팔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도서정가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좋은 책을 판매하려는 서점이 활로를 찾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흔의 소설가는 근본적인 제도 개혁 없이는 출판계가 낙후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초등학교 때 재수가 없어서인지 화장실 청소를 많이 했다. 사재기 파동의 오물이 나한테 튀었다. 오물이 튄 김에 안으로 들어가 깨끗이 청소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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