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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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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보던 다툼이 살인으로

층간소음이 불씨가 돼 윗집 두 아들 살해한 ‘면목동 층간소음 살인사건’ 재구성
등록 2013-06-02 16:36 수정 2020-05-03 04:27

지난 5월24일 오전 서울 도봉동 북부지방법원 601호 형사중법정. 이른바 ‘면목동 층간소음 살인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피의자 김아무개(46)씨가 법정에 섰다. 층간소음 갈등으로 다투다 위층 형제 2명을 칼로 찔러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김씨는 왼쪽 가슴에 수용자번호 875번이 새겨진 풀색 수의를 입은 채 재판 내내 고개를 떨궜다. 이날 재판은 김씨의 요청으로 국민참여재판 형식으로 진행했다. 이날 국민참여재판은 무작위로 선발된 배심원 10명(예비 배심원 1명 포함)이 유죄·무죄 평결을 내리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김씨의 변호인단은 이날 재판에서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했지만, 양형에 대해서만은 주장을 펼쳤다. 은 이날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을 중심으로 사건 당일의 순간을 재구성해봤다. 갈등의 불씨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층간소음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도 너무한다” “떠들면 얼마나 떠들겠느냐”
설날을 하루 앞둔 지난 2월9일 오전, 이희철(61·가명)씨 부부가 사는 서울 면목동 ○○아파트 704호에 가족들이 모였다. 지방에서 사업을 하는 첫째아들 이영민(32·가명)씨 부부, 서울에 사는 둘째아들 이상민(30·가명)씨 부부와 그의 세 살배기 손주 이렇게 7명의 식구가 명절을 앞두고 한자리에 모였다. 두 달 전 결혼식을 올린 첫째아들 부부는 결혼 뒤 첫 시댁 방문이었다. 이들은 여느 가족처럼 명절 음식을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같은 시간, 아래층 604호에 사는 송윤정(50·가명)씨는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아침부터 위층에서 들려오던 쿵쿵거리는 소리가 점점 심해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몇 차례 경비실을 통해 위층에 이야기를 했지만 나아진 것은 없었다. 그날 오후 2년 전부터 사귀어온 남자친구 김씨가 집에 놀러와 거실 TV 앞에 앉았다. 그러나 TV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참다못한 송씨가 인터폰 수화기를 들었다. “704호 때문에 너무 시끄러워요. 조용히 좀 해달라고 전해주세요.” 지난번처럼 아파트 경비원에게 민원을 넣었다. 경비실로부터 연락을 받은 이희철씨의 아내는 사과를 하고픈 마음에 “아래층에 직접 인터폰을 연결해달라”고 경비실에 부탁했다.
“아니, 해도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한두 번도 아니고 왜 그러세요?” 매번 층간소음에 시달려온 송씨는 배려심 없는 위층을 나무랐다. 이씨의 아내는 “설날이라 자식들이 와서 시끄러우니 좀 이해해달라”며 아래층을 타일렀다. 사실, 위층도 층간소음을 신경 쓰고 있었다.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사과를 하는 것도 한두 번, 손주가 올 때마다 인터폰을 받아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날도 소음을 줄여보겠다며 손주를 장난감 자동차 위에 앉혀둔 상태였다. 그가 사과를 하던 중, 둘째아들이 수화기를 낚아챘다. “아니, 한 달에 한 번 오는데, 떠들면 얼마나 떠든다는 거야?”
복받친 감정으로 위층 남자와 아래층 여자 사이에 인터폰 설전이 오고 갔다. 송씨는 “경찰(112)에 신고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인터폰을 끊은 송씨가 옷을 챙겨 입었다. 이를 지켜보던 김씨도 함께 현관을 나와 위층으로 향했다.
704호 현관 앞에서 김씨는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 그 대신 현관문을 발로 거칠게 두 번 찼다. 쿵쿵. “뭐야?” 인상을 찌푸린 둘째아들이 현관문을 열었다. “시끄럽습니까? 우리는 매일 이렇게 시달리면서 살아요. 좀 조용히 합시다.” 김씨가 삿대질을 섞으며 언성을 높였다. 현관을 내다보던 이희철씨도 송씨를 보자 언쟁에 가세했다. 서로 욕설과 반말이 오고 갔다. “시끄러우면 이사 가면 될 거 아냐?” “이사는 못 가겠다. ×××야, 너 오늘 좀 맞아야겠다!” “오늘 ‘깽값’(치료비) 벌게 생겼네. 아저씨 모아둔 돈 많으신가봐요?”
아버지는 두 아들 잃은 19일 만에 세상 떠나
이날 방문은 층간소음 갈등으로 빚어질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상황을 빚어냈다. 감정을 앞세운 채 벌어진 아래층의 층간소음 항의 방문, 위층 현관에서의 보복성 소음, 그리고 위층까지 감정을 앞세우며 충돌하면서 층간소음의 원인을 확인하고 중재하는 일은 이미 안중에도 없는 일이 됐다. “이웃 간에 이래서 좋을 게 뭐 있어. 시끄러운 거 우리가 알고 있으니까 자제할게요.” 이씨의 아내는 김씨에게 거듭 사과하며 최악의 충돌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폭발해버린 감정은 멈추지 않았다. “아주머니 이야기가 전 하나도 안 들리네요.” 704호 앞에서 언쟁을 벌이던 김씨는 ‘위층 사람들 혼을 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10분이 지났을까.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 김씨는 차 트렁크에 넣어둔 칼을 뒤춤에 숨긴 뒤 704호로 향했다. 평소 그를 괴롭히던 사채업자를 겁주기 위해 1년 전 마트에서 구입한 칼이었다. 이영민·상민씨를 불러내 아파트 입구로 나왔다. 칼을 꺼내든 김씨가 사과하라고 말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려고 칼을 꺼냈는데, 상대방이 욕설을 하자 욱한 마음에 칼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김씨가 휘두른 칼에 여러 차례 찔린 두 형제는 아파트 경비원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모두 구급차 안에서 숨졌다. 집에 올라가 짐을 챙긴 뒤 곧장 도주의 길로 오른 김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거나 사우나에서 잠을 자며 경찰의 추적을 피했다. 그러나 김씨는 닷새 만에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KT전화국 앞 공중전화에서 검거됐다.
층간소음의 갈등은 704호 가정을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중풍을 앓은 뒤 고혈압·당뇨가 있던 이희철씨는 두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두 아들이 숨진 지 1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사고 당일 경찰 조사에서 “억울함을 하소연할 데가 없고 부모로서 지금 죽고 싶은 마음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604호·704호에는 현재 아무도 살지 않는다.
이씨 아내 “사람 목숨은 소중하기에…”
서울북부지법 형사13부(재판장 황현찬)는 이날 재판에서 김씨가 홧김에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살인할 의도로 칼을 휘둘렀는지를 집중적으로 따졌다. 이날 증인으로 나온 이씨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죄송하다는 말로 일관했을 뿐인데 (김씨가) 제 두 아들을 데려가고 또 제 남편까지…. 그래도 제 아들이 귀중한 것처럼 사람 목숨은 귀중한 것이기 때문에 감히 피고인을 죽여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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