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혜경 박사(신화학·신화와 꿈 아카데미 원장·왼쪽 첫 번째 사진)는 광주트라우마센터 ‘꿈작업’(2월19일~4월2일)을 마친 뒤 “많이 아팠다”고 했다. 그 자신이 꿈을 꿨고, 꿈 그림(세 번째 사진)으로 남겼다.
“결혼식 전날인데 눈 아래 푸른 혈관 같은 게 툭 불거졌어요. 얼굴 전체에 울긋불긋한 것들도 돋아났어요. 눈 옆엔 쌀알 같은 눈곱이 하얗게 붙었는데 징그러웠습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고 박사의 스승이자 세계적 꿈작업가인 제러미 테일러 교수(미국 위즈덤대학교·세계꿈협회 초대 회장)가 제자의 그림에 ‘샤먼의 가면’이란 제목을 붙여줬다. 고 박사의 그림은 광주의 꿈작업 참여자가 그린 이미지와도 겹친다. 그의 그림에선 몸체 없이 머리만 있는 ‘웃는 얼굴’이 혀를 쭉 뺀 채 입 양옆으로 빨간 피를 흘리고 있다(두 번째 사진). 고 박사는 두 개의 그림이 인도의 잔혹한 여신 ‘칼리’(네 번째 사진)의 얼굴과도 닮았다고 했다. 그는 “샤먼과 5·18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지하세계와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에 사회를 치유하는 ‘운디드 힐러’(상처받은 치유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꿈은 무의식의 심층을 길어내는 통로이자, 표현할 길 없는 내면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이미지다. 이 명제 위에서 ‘꿈을 통한 트라우마 치유’는 시작된다. 꿈작업은 개인적 심리치료와 출발선을 달리한다. 꿈작업은 개인의 꿈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읽어내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과 울음에 귀기울인다. 테일러 교수는 ‘그룹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1960년대 후반 인종차별 이슈를 주제로 꿈작업을 시작한 이래 꿈을 활용한 ‘정의로운 공동체’를 모색해왔다. 그가 수감자들과 노숙인뿐 아니라 베트남전·이라크전 참전용사들의 트라우마 치유에 적극적으로 나서온 이유다.
‘이 꿈이 만약 나의 꿈이라면.’ 테일러가 창안한 ‘그룹투사 꿈작업’의 접근법이다. 고 박사는 “한 사람의 꿈을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다층적 의미를 찾아내고, 상대방을 이해하며, 자신의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광주트라우마센터의 꿈작업도 테일러의 방법론을 따랐다. 고 박사는 참여자들이 ‘동료가 꾼 꿈을 자신이 꾸었다면 어땠을지’ 스스로의 상황과 연결지어 이야기하도록 이끌었다. 지독한 악몽을 소재로 ‘꿈 연극’을 만들기도 했다. 꿈꾼 당사자가 연출을 맡고 다른 참가자들이 꿈속 배역을 연기했다. ‘꿈의 주인’이 자신의 꿈을 객관화하는 과정에서 꿈의 영향력에서 놓여나도록 도왔다. 모든 활동의 핵심은 서로에 대한 ‘공감’과 ‘지지’다.
고 박사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국내 첫 꿈작업’이란 점에서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했다. “고통의 정도가 너무 큰 분들이었다. 참고할 만한 국내 사례도 없었다. 오히려 상처를 덧내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꿈작업 참가자들은 가위눌림이 줄고 수면 시간이 늘었다고 했다. 센터는 고 박사의 꿈작업을 정규치유 프로그램으로 정착시킬 계획이다.
그는 “아직은 한계가 많다. 꿈작업이 필요한 사람은 많지만 안내자는 너무 적다. 프로그램을 마친 사람들이 스스로 모임을 갖도록 지지해주는 일도 필요하다. 이제 꿈작업은 막 시작됐을 뿐”이라고 했다.
광주의 꿈을 자신이 꾼 꿈으로“우리 사회는 시대가 개인에게 가한 내면적 고통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들의 악몽이 당대에 해결되지 못한 채 대물림돼선 안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광주의 꿈을 자신이 꾼 꿈으로 공감해낼 수 있다면 광주가 심연의 슬픔을 이겨내는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윤석열 ‘빨간날’ 변호인 접견, 조주빈 일당 이후 처음
캐나타 토론토 공항서 여객기 뒤집힌 채 착륙…8명 부상
김영선 이어 ‘조국 수사’ 김상민…김건희, 또 국힘 공천 개입 의혹
윤석열 부부로 과녁 옮긴 명태균 사건…공천개입 의혹 본격 조사
‘명태균 특검법’ 법사위 문턱 못 넘어…국힘 “조기 대선 발목 잡기”
명태균 “황금폰 때문에 검찰이 수사 조작” 주장하다 법정서 쫓겨나
‘상속세 완화’ 이재명 “세상 바뀌었는데 안 바꾸면 바보”
권영세 “계엄해제 찬성 안했을 것”…‘헌재 불신’ 여론에 당 맡기나
인격살인 악플, 처형대 된 언론…김새론을 누가 죽음으로 몰았나
공무원 노조 “정년 65살로 연장” 국민동의청원 돌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