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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고 야구부의 무너진 꿈

등록 2013-03-16 17:25 수정 2020-05-03 04:27

주전의 꿈은 또다시 멀어졌다.
경기도 의정부 상우고등학교 야구부 선수들에게는 그렇다. 지난해 프로야구 10구단 창단 열기를 타고 모인 이 야구부는 정작 창단 첫해인 올해에는 고교대회에 단 한 경기도 못 나가게 됐다(946호 초점 ‘10구단이 몰고 온 고교야구 창단 붐’ 참조). 고교야구 창단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뜨거운 것과 달리, 학교와 대한야구협회(KBA)가 창단 절차를 소홀히 해 학생들이 ‘미등록 선수’가 됐기 때문이다. 대부분 주전으로 뛰려고 다른 학교 야구부에서 전학 온 상우고 선수들은 올 한 해 성적표조차 얻지 못하게 돼 앞날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지난 1월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 생활체육 야구장에서 상우고 야구부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지난 1월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 생활체육 야구장에서 상우고 야구부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야구협회 “리그 편성 고치기 어려워”

지난 3월8일 창단식을 연 상우고 야구부가 처음 모인 건 지난해 12월이다. 지난해 의정부야구협회가 의정부시와 함께 재정 지원을 제안하고, 상우고가 선수들의 등록금 면제 등을 지원하겠다고 나서 야구부 창단이 급물살을 탔다. 그 뒤 수도권에서 모집한 선수 15명이 모여 팀을 꾸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올해 고교 3학년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2학년이다. 대개가 야구 명문고에서 경쟁에 밀려 성적을 낼 기회가 없었던 선수들이다. 선수들은 사비를 털어 마련한 학교 앞 숙소에서 합숙을 하며 프로야구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 출신인 유영원(44) 감독의 지도를 받아 지난겨울 매일 7시간씩 바깥에서 연습을 해왔다.

상우고 야구부가 경기에 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지난 2월이다. 학교 쪽이 대한야구협회에 창단식 초청장을 보내자 협회가 “올해 고교야구 주말리그 일정은 지난해 11월 모두 확정했기 때문에 창단 승인을 받아도 올해 주말리그에는 참여할 수 없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현재 고교야구는 주말리그 성적을 바탕으로 대학에 진학하거나 프로야구팀 등에 들어가고 있다. 학생들의 학업권을 지켜주려고 3년 전부터 도입한 주말리그는 주말·공휴일에만 경기를 여는 리그전이다. 전국을 8개 권역으로 나눈 뒤 전반기 동일권리그, 전반기 왕중왕전, 후반기 광역권리그, 후반기 왕중왕전 순서로 진행한다. 새 고교야구팀은 시도 교육청과 대한야구협회에서 창단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김용균 대한야구협회 운영팀장은 “매년 11월에 다음해 리그 편성과 경기장 대여 등의 작업을 마치는데 상우고는 지난 2월16일 창단 서류를 접수해 창단 승인을 받는다고 해도 리그 편성을 고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산 편성 등 까다로운 작업이 많아서 한 팀을 새로 넣으면 전체적으로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이다. 김휘영 상우고 야구부장은 “창단 준비를 늦게 시작해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데 대한야구협회에서 (리그 참여는) 안 된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학부모들 “야구협회가 안내 안 했다”

상우고 선수 학부모들은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경기도야구협회가 상우고의 창단 준비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안내를 하지 않았으며 전학생들의 등록 문제에 대해서도 큰 문제가 없다고 안내를 받았다는 것이다. 학부모 대표인 방재호씨는 “아이들의 진로가 걸린 문제인데도 창단 절차에 대한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어 아이들만 불쌍하게 됐다”며 “대한야구협회가 행정적 어려움을 들어 후반기 주말리그조차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건 말 그대로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대한야구협회는 상우고 야구부의 창단 신청 서류를 검토하고 있으며, 주말리그는 아니지만 오는 8월에 열리는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출전을 허용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책임 공방이 이어질수록 선수들이 받는 상처는 커져만 가고 있다. 상우고 야구부 선수들이 선 마운드에는 아직도 한겨울 찬바람이 불고 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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