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6일, 버스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경기도 평택에 접어들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겨울새 한 마리가 도로 위를 날고 있다.
진보신당 청년당원 서너 명, 1895일을 싸운 기륭전자 해고 여성노동자 네댓 명, 지난 대선에서 기호 5번 노동자 후보로 나온 김소연 전 기륭전자 분회장, 참여연대 사람들 몇 명, 취재·사진 기자, 그리고 집에서 동네에서 회사에서, 또 아르바이트하다가 각자 온 열댓 명의 시민들, 맨 뒷자리엔 예닐곱 살 딸아이 둘과 애들 아버지가 탔다. 버스 앞유리창 이마엔 ‘3호차’라고 쓰여 있다. 3호차 인솔자인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명숙씨가 참가비를 3만원씩 걷은 뒤 ‘다시, 희망만들기 쌍용차 한상균·문기주·복기성 동지 힘내세요!’라는 글씨가 적힌 노란 종이쪽지를 나눠준다. 저마다 펜을 꺼내 거기에 무언가 썼다. 철탑 위로 부칠 편지다.
아침 9시께 서울시청 옆 대한문을 출발한 버스는 11시께 쌍용차 평택공장 맞은편 송전철탑 아래에 도착했다. 길 건너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멀리 송전탑 위에 친 천막 속에서 세 사람이 나와 손을 머리 위로 동그랗게 들어올리며 흔들었다. 철탑 위의 마이크는 “끝까지 싸워 승리해 공장으로 돌아가겠다”고 외쳤다. 첫 공장 생활 시절 한때 그들에게도 저 공장은 오히려 도망치고 싶은, 지랄 같은 팍팍한 일터였을 것이다. 공장의 닫힌 철문 앞에서 복직을 외치는 그의 쉰 목소리를, 몸부림을 희망이라고 불러도 좋은 것일까? 철탑 밑 길가 농성천막엔 사람은 없고 불 꺼진 난로와 침낭 몇 개만 뒹굴고 있다. 몇 번의 구호와 함성, 노래 그리고 박수가 울려펴졌다. 참가자 몇 명이 버스 안에서 쓴 편지를 모은 보따리를 줄에 매달아 철탑 위로 올려보냈다. 귀마개를 한 젊은 경찰 둘이 방패를 앞세운 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철탑 아래서 하루 종일 보초근무를 서는 저 청년들도 가끔 공장에 대해, 노동에 대해 생각하며 상념에 젖을 것이다.
공장의 굴뚝 연기가 허공에 흩어졌다. 버스는 다시 울산을 향해 떠났다. 버스 안이 약간 시끌벅적해졌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자기소개 시간이다. 2012년 12월19일로 시간이 멈춰버렸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50대 남성, 자신이 나갈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는 짧은 머리칼의 19살 소녀, 매일 아침 신문을 보며 한숨만 내쉬곤 했다는 30대 주부, 세상을 지켜보기만 했다는 27살 대학생 둘,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해체됐으면 하고 생각할” 기업에 다니고 있다는 50대 중반의 남성…. 어느 책 서문에서 최장집 교수는 말했다. “우리 시대에 있어 노동은 우리의 개인적 그리고 집단적 삶의 형식과 내용을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산업노동자들의 절망과 고뇌, 그리고 육체적 고통을 이해하고, 많건 적건 이를 나누어 가짐이 없이 물질적·경제적 부의 일정 부분을, 기득권을 향유할 때 오늘날 우리 사회의 누가 과연 스스로를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 사회가 도덕성을 갖는 하나의 사회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버스는 어느새 황간휴게소를 지나고 있었다. 멀리 잿빛 이마에 겨울 잔설을 희끗희끗 이고 있는 월류봉 산등성이가 병풍 같다. 언제부턴가 마이크는 꺼져 있다. 몇 명은 졸고 몇 명은 감기에 콜록대고 몇 명은 차창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싸온 귤봉지가 버스 바닥에 우르르 쏟아졌다. 귤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시린 유리창 위에 떠오르던 몇 줄의 말. “어딘가에 아름다운 사람과 사람의 힘은 없는가. 같은 시대를 함께 사는 친근함과 따스함과 그리고 노여움이 날카로운 힘이 되어 솟아오르는.” 창밖으로 높이 치솟은 웅진케미칼·제일모직·STX 공장 굴뚝이 보인다. 경북 구미공단이다. 1970∼80년대 산업노동자들의 땀과 열망이 저 공단에 역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저들 중 누군가 또 철탑에 오르게 될까버스 안 분위기가 바뀐다. 공통점 찾기 놀이 시간이다. 걸리면 복도에 나와 노래를 불러야 한다. “고요한 내 가슴에 사랑을 심어놓고 나비처럼~.” 한 청년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노래를 불렀다. 다른 한 청년은 “대선 때 여기 김소연 후보를 찍은 공통점을 가진 세 사람이 버스 안에 있다”고 했다. 또 있으면 손들어보라고 한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김 후보의 1만6천여 표, 0.05% 득표는 한국의 노동자 정치에서 무엇을 말하는 걸까? 뒷자리에 앉은 김소연 전 후보가 피곤한 듯 내 옆좌석 팔걸이에 발을 올려놓았다. 현장에서 몸으로 싸워온 그의 흰 양말이 따뜻해 보인다. 다시 종이편지를 썼다. 이번에는 울산 철탑에 올라 102일째 농성 중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천의봉씨에게 부쳐질 편지다. “2000년 이후 전국 여기저기 수많은 공장에서 비정규직 싸움이… 끝이 없는, 외롭고 쓸쓸한 싸움… 그러나 희망의 불씨….” 그런 몇 줄을 썼다. 그러고 나선 구겨버렸다. 버스 안 객지에서 가슴의 뜨거움으로 뭔가 쓰고 싶었다.
해가 설핏해질 무렵 버스는 울산 태화강을 건넜다. 길이 막혔다. 현대차 정문에서 이미 집회가 시작된 모양이다. 현대차 정문은 수많은 노조 깃발과 노동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정문 옆 고객안내실 화장실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앳된 청년들이 옷 안에서 출입증을 꺼내 보여주며 하나둘 공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마 비정규직일 것이다. 저들 중 누군가도 몇 년 뒤 철탑에 오르게 될까? 봄비 내리는 울산에 왔던 2002년 4월23일(408호 표지이야기 ‘비정규직, 당신은 서글픈 식민지!’ 참조), 그로부터 11년여 만에 다시 온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들의 몸서리치는 절망과 아픔, 그리고 열망은 그대로다. 세상은 언제나 달라지며 또한 그대로 있는 것인가? 나부끼는 깃발들 사이로 저만치,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손팻말을 어색하게 흔들고 있는 여성이 보인다. 아까 내려올 때 버스 안에서 “여기 오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고 혼자 왔고 쑥스럽기도 하다”고 했던 그 50대 아주머니다. 찢긴 집회 포스터들이 세찬 바람에 날려 공장 담벼락 쪽으로 우르르 흩어졌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농성철탑을 향해 행진이 시작됐다. 2천여 명이 차도를 따라 5km 남짓 혹한을 뚫고 걸었다. 철탑은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대열 속에, 버스 뒷자리에 타고 온 두 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몇 사람이 “야, 너희들 멋지다, 용감하다”고 박수를 보냈지만 고단한 행진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늘 안쓰럽다. 현대차 명촌 정문 옆 주차장에 있는 철탑농성장에 이미 날은 저물었다. 곧 집회가 시작됐다. 노래패 무대가 끝나고 대열 뒤편에 마련된 밥차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 땅에선 국밥을 탄 사람들이 차가운 바닥에 여기저기 쭈그려 앉아 달빛 아래 밥을 먹고, 철탑 쪽에선 밥을 밧줄에 매달아 올려보낸다.
오래 기억될 ‘그해 겨울’의 한판 대결‘힘내라! 비정규직 콘서트’가 시작됐다. 무대에 선 78살 ‘청년어르신’은 “남은 생애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동지적 연대를 보냈고, 초등학교 5학년 아이는 “정규직으로 복직하세요. 힘내세요”라고 쓴 편지를 읽었다. 철탑 위 최병승·천의봉씨가 답장 편지를 읽었다. 밤하늘로 올라간, 꾹꾹 눌러 쓴 편지는 구호보다 강할까? “함께 살자”고 외치는 무대 저편의 시내 주말 술집은 여전히 붐비겠지만, 언젠가 내려온 뒤 그들도 ‘그해 겨울’의 한판 대결을 오래도록 추억할 것이다. 나이 든 노동자 대여섯 명이 철탑 아래 무대에 올라 때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농성장 곳곳에 모닥불이 타올랐다. ‘우리는 강하다, 반드시 승리한다’고 적힌 플래카드 위로, 휘영청 보름달이 철탑에 걸려 있었다. 밤 10시쯤 버스는 서울을 향해 떠났다. 멀어지는 철탑농성장을 둘러보면, 텅 빈 가슴은 왜 이리 흔들리는지. 희망은 아직 어떤 안개 같은 것일까?
조계완 한겨레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kyewan@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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