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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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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경제 박근혜 정부가 변수다

등록 2013-01-05 02:25 수정 2020-05-03 04:27

우연이겠지만 외환위기 이후 역대 정권은 모두 집권 첫해에 경제적 시련을 겪었다.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1997년은 한창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이 구제금융 조건을 협상하던 터라, 김대중 당선인은 당선 확정 당일부터 환란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1998년 집권 첫해에 150만 명의 실업자가 쏟아져나오는 등 사상 최악의 경제침체를 피할 수 없었다. 2003년 임기를 시작한 노무현 대통령 역시 집권 첫해부터 앞 정부가 조장한 신용카드 대란의 후폭풍을 뒷수습하는 데 경제 역량을 모두 투입해야 했다. 400만 신용불량자가 양산됐던 그해, 우리 경제는 민간 소비가 마이너스로 추락해 내수가 휘청이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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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저’는 분명하나 ‘하고’는 모른다

‘747 공약’과 ‘경부대운하 건설’이라는 그랜드플랜을 야심차게 내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초까지만 해도,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침체(Great Recession)가 그해 가을에 터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7% 성장은 고사하고 집권 기간 평균 3%도 안 되는 성장률 실적밖에 기록할 수 없었던 이명박 경제의 운명은 그렇게 첫해에 결정됐다

2013년에는 박근혜 정부가 임기를 시작한다. 5년 전의 보수적 정권 교체와 달리 정권 연장 차원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 아니, 상당히 나쁜 편이다. 일단 2012년 경제가 당초 전망인 4% 성장에서 반토막 난 2% 수준이다. 그나마 정부가 평년 대비 재정 투입을 두 배쯤 올려서 성장률을 약 0.5%포인트 끌어올린 덕택이라는 것이 기획재정부의 설명이다. 정부의 개입 효과가 없었다면 1% 성장에 그쳤을 거라는 말이다. 15년 전처럼 환란도 없었고 카드 대란도 없었는데 바닥을 기는 성장률이었다. 두 자릿수 성장을 하던 수출이 마이너스에 빠지고 민간 소비 증가도 1%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2013년 경제는 기본적으로 2012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망 기관들이 대체로 2.6%(삼성증권)~3.2%(한국은행) 사이를 예측하고 있다. 즉 2012년과 비교해 거의 체감할 수 없을 개선을 전망하고 있는데, 이것도 사실 ‘소망’에 가깝다. 예를 들어 2012년보다 나을 것이라는 이유가 2013년 하반기에는 유럽과 미국 경제가 다소 호전되고 이에 따라 국내 투자 여건이나 고용 여건도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상저하고(上底下高)다. 2012년 한국 경제를 전망할 때도 그랬다. 그러나 상반기보다 더 나쁜 하반기 경제가 실제 결과였다. 2013년에도 ‘상저’(上底)일 것은 틀림없겠으나 ‘하고’(下高)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특히 박근혜 경제의 앞날에 안 좋은 소식은 경제 회복을 기댈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사실 역대 정권들이 취임 초에 경제침체와 싸워야 하는 불운을 겪었다지만 그래도 내수와 수출 가운데 한 가지는 양호한 상황에서 경제정책을 펼 수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글로벌 수출 환경 호조 덕분에 환란을 예상보다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고, 노무현 정부도 신용카드 대란으로 무너진 내수를 두 자릿수 수출 증가로 만회할 수 있었다.

그나마 여력 있는 재정

그런데 박근혜 정부 앞에는 어두운 수출 환경과 허약한 내수 기반이 동시에 기다리고 있다. 글로벌 경제 환경을 보자. 영국 주간지 는 “세계경제 위기가 발생한 지 6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경기침체는 저 멀리 사라지고 경제는 앞으로 쌩쌩 달릴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지역이 장기 침체에 빠져 일본식 불황으로 나가고 있다”고 2013년 세계경제를 압축해서 표현했다. 정부도 5% 이상의 수출 증가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

내수는 어떤가. 역대 정부들이 내수를 소홀히 하고 수출에만 의존한 결과 내수 토대가 계속 취약해졌다. 고용 여건은 2013년에 더 나빠질 것이 확실해 민간 구매력이 확대되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이어질 것이므로 건설투자나 긍정적 자산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1100조원까지 불어난 가계부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부채를 동원한 소비 확대 측면을 잠식하며 경제성장의 현실적 장애 요인으로 등장했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임기 첫해에 가계부채 위기 관리와 씨름해야 한다.

물론 박근혜 정부에도 의지할 카드가 하나 정도는 남아 있다. 바로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이다. 2012년 경기 하락을 2% 수준에서 방어한 것도 바로 정부 재정이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재정 적자로 인한 긴축 논쟁이 경기침체를 오히려 가속화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개정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단순한 재정지출 확대를 넘어 어떻게 분배 구조를 개선해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구매력을 확대하고 내수 성장에 기여하도록 할 것인지에서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된다. 바로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한 경제민주화, 중산층 70% 재건이 여기에 해당한다.

좌우 어디로 갈지에 따라서

그런데 ‘줄푸세’로 상징되는 대기업 위주 경제, 1% 편향 정책을 추구하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같은 정당에서 집권이 연장된 정부다. 다만 2012년 한국 사회가 경제민주화를 시대정신으로 부상시켰고 박근혜 후보가 선거 전략 차원에서 이를 차용하며 경제민주화와 공정한 시장경제, 중소기업과 중소상인을 위한 국가의 개입을 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이 공약이 액면 그대로 실행될지, 아니면 새누리당의 전통적인 색깔이 경제정책에 투영될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이 점이 2013년 한국 경제를 전망하는 데 가장 불확실한 대목이다. 따라서 2013년 한국 경제는 수출이나 내수 환경 같은 외부 요인보다는 정부가 투명하고 확실하게 공약대로 경제정책을 실행하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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