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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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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와 택시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

등록 2012-11-29 21:01 수정 2020-05-03 04:27

버스와 택시 업계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할지를 두고서다. 버스업계는 관련 법안의 국회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11월22일 운행을 중단했다가 재개하는 극약 처방까지 동원했다. “함께 살자”고 호소하던 택시업계도 이젠 감정이 크게 상한 분위기다. 양쪽의 갈등에 일부 언론과 시민들은 ‘밥그릇 싸움’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 얄궂은 싸움을 애초에 의원 10명 붙인 건 누구였을까.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대중교통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11월22일 0시부터 무기한 전면 운행 중단에 들어갔다가 출근 시간이 되자 시민들의 불편을 고려해 파업을 풀었다. 파업 전날 서울 송파구 장지동 공용 차고지의 모습. 한겨레 김태형 기자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대중교통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11월22일 0시부터 무기한 전면 운행 중단에 들어갔다가 출근 시간이 되자 시민들의 불편을 고려해 파업을 풀었다. 파업 전날 서울 송파구 장지동 공용 차고지의 모습. 한겨레 김태형 기자

“대선 승리는 근소한 차이로 결정되니…”

19대 국회에서 택시에 대중교통의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대중교통법)이 처음 발의된 건 지난 6월 민주통합당을 통해서였다.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택시업계가 총파업 대회를 열어 국회와 정부에 “생존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한 이틀 뒤였다. 이후에도 비슷한 법안 4건이 여야로부터 나왔다. 대중교통으로 지정되면 각종 명목으로 재정 지원을 받게 돼 택시업계가 숨통을 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유가보조금을 포함한 정부·지자체의 재정 지원은 대중교통인 시내버스·시외버스 등이 1조3380억원으로 택시(7615억원)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이후 법안 통과는 여야의 공감대 속에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했다. 지난 11월15일 하나로 통합된 대중교통법은 국회 국토해양위원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하고 엿새 뒤 법제사법위원회까지 넘었다. 그러나 부실한 법안과 무리한 처리 과정이 발목을 잡았다. 법안엔 “대중교통에 택시를 추가하고 재정 지원을 한다”는 구호만 있을 뿐 지원 범위와 재원 조달 방법 등은 빠져 있는 탓이다. 이에 대해 여야 간 구두로라도 합의된 사항이 없다. 각자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해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 택시업계는 택시가 대중교통이 되더라도 “버스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넘보지 않고 준공영제(시내버스 적자를 정부가 보전)도입과 버스전용차로 진입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법안에 구체적 규정이 없다 보니, 버스업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여야가 양쪽 업계와 서민 생활에 직결되는 법안을 이렇게 허술하게 처리하려는 것을 두고 대선을 앞둔 ‘포퓰리즘’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국 택시기사수는 25만5천 명으로 버스기사(8만1천 명)보다 3배 많다. 강상욱 한국교통연구원 교통경제·운수산업연구실장은 “이 법안은 이전 국회 회의에서도 발의됐는데 계속 안 됐다. 그 현실적인 이유를 여야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도 대선 승자는 근소한 차이로 결정되니 다들 법안 처리에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정부엔 좀더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정부는 2005년 지역별로 택시 수를 규제한다며 총량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지자체장들은 개인택시 면허를 계속 남발했고, 정부도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 결과 1995년 20만5천 대이던 택시 수는 올해 25만5천 대까지 급증했다. 그사이 급증한 승용차와 대리운전에 손님까지 뺏기자 택시 간 출혈경쟁이 심각해졌다. 게다가 정부는 물가 관리에만 목매며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이 뛰는데도 택시요금을 꽁꽁 묶어놓아 택시의 수익성을 더 악화시켰다. 그런데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월21일 국회에 출석해 “지자체의 재정 부담에 어려움이 초래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며 대중교통법 개정에 반대했다.`

경쟁 심화·LPG 값 상승… 애타는 택시업계

여야는 11월22일로 예정됐던 법안의 본회의 처리를 일단 늦추기로 했다. 버스업계를 설득한뒤 통상 12월 말에 본회의에 상정되는 내년 예산안과 함께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리되면 버스업계는 “무기한 운행 중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택시업계도 다음달 7일 총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의했다. 본격적인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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