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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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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위에서 부친 편지

등록 2012-10-30 18:55 수정 2020-05-03 04:27

‘울산의 젖줄’ 태화강을 따라 동해 방향으로 차를 타고 달리다 보니, 건조하게 솟아오른 송전탑이 띄엄띄엄 눈에 들어온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5배가 넘는다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울산공장의 명촌 중문 앞 주차장 아스팔트 위로도 송전탑 철 구조물들이 징그러울 만큼 일렬로 쭉 늘어서 있었다. 그중 한 송전탑 위엔 사람이 있다. 길 잃은 철새처럼, 둥지를 튼 모양새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업체에서 일하다 해고된 최병승(36)·천의봉(31)씨다. 그들은 지난 10월17일 밤 9시께, 50m 높이의 송전탑 위를 기어 올라갔다. 그로부터 8일이 지난 24일, 두 사람은 여전히 송전탑을 지키고 있었다.

사방 뻥뚫린 곳에서 용변 보는 고역

‘불법파견 인정하고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 ‘정규직 전환 없는 신규 채용 중단하라!’ 송전탑 아래쪽엔 이들의 요구가 담긴 빨간색·노란색 현수막들이 펄럭거린다. 아직 10월이지만 바다가 가까운 탓에 바람이 제법 매섭다. 에펠탑처럼 솟아오른 철탑엔 15만4천V 고압전기가 흐른다. 감전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비라도 오면 큰일이다. 송전탑 바로 옆에는 동해남부선 철길이 나 있다. 10분에 한 대꼴로 지나가는 기차의 진동과 소음은 송전탑으로 고스란히 옮겨진다. 기차가 내는 울림이 마냥 괴롭지만은 않다. 철도노조 조합원들은 연대의 뜻으로 송전탑을 향해 경적을 울리거나 손을 흔든다. 쏟아지는 햇볕을 손으로 가리고 송전탑을 올려다보자, 철탑 중간 정도 되는 지점에 있는 최씨와 그로부터 3m가량 위에 있는 천씨의 까무잡잡한 얼굴이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육성으로 의사소통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마이크나 휴대전화를 이용해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들은 안전벨트를 이용해 몸을 철근에 묶었다. 누울 자리도 필요했다. 철근과 철근 사이에 합판을 올려 눕거나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가로 1m·세로 2m 정도 되는 좁디좁은 공간으로, 사방이 뻥 뚫려 있어 바람 한 점, 비 한 줄기 막아낼 수 없다. 키가 180cm인 천의봉씨가 앉아 있는 합판은 이보다 더 작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철탑 옆 한켠에서 우상수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사무차장이 생수로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식사와 휴대전화 배터리, 용변 용기 등은 도르래를 설치해 철탑 위로 올린다. 사방이 뻥 뚫린 곳에서 용변을 보는 일은 최씨에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누군가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수치심이 들죠. 긴장하게 되고. 아무래도 평소보다 덜 먹고요.” 송전탑 아래와 인근에는 모두 6개의 천막이 설치돼 있다. 함께 농성을 이어가는 조합원들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천막 안을 들여다보니 전날 야간 노동을 마치고 온 조합원들이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여기 있는 송전탑은 보통의 송전탑과는 달라요.” 동료들이 올라간 송전탑을 바라보며 비정규직지회 김상록 정책부장이 말을 이었다. 자세히 보니 송전탑 두 군데에 철조망이 얼기설기 둘러져 있다. “2005년에 있었던 고공농성 이후에 회사가 철조망을 둘렀어요.” 2005년 9월4일 울산공장 사내하청 해고자 류기혁(당시 31살)씨가 비정규직 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목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조는 류씨의 죽음이 비정규직 노조 가입 뒤 사 쪽의 괴롭힘 탓이라고 규정했다. 다음날 조합원 4명이 아반떼를 생산하는 울산3공장 근처 10여m 높이의 송전탑에 올랐다. 그때도 이들은 회사 쪽에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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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부모 만나… 미안하다”

2005년 송전탑에 올랐던 4명 가운데 1명이 바로 최병승씨다. 26살이던 2002년 봄, 호기롭게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에 들어섰다. 전남 해남이 고향인 그는, 대학을 한 학기 만에 그만뒀다. 공장 일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았다. 현대차에서 일하기 전, 목포에 있는 삼호중공업에서 일하기도 했다. 역시 비정규직이었다. 신분 불안과 생계난이 그를 괴롭혔다. 울산으로 거처를 옮겨 지역 생활정보지를 뒤적였다. 당시 ‘현대차 내 근무’라고 강조한 사내하청 구인 광고가 넘쳐났다. 볼펜을 굴려 선택한 회사는 현대차 사내하청인 예성기업이었다. 전화를 건 날 ‘야근을 해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했더니 출근이 결정됐다. 시급 2510원짜리 일이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수는 1998년부터 급증한다.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경기가 회복돼 일자리가 생겼지만, 정규직 대신 사내하청 업체 노동자들을 채워넣었다. 최씨 역시 정규직과 뒤섞여 자동차 키박스 조립 일을 했다. 익숙지 않은 컨베이어 벨트 속도를 따라가는 건 쉽지 않았다. 꼬박 10시간 일하는 야간노동은 몸을 쇠하게 했다. 하는 일은 같아도, 월급은 정규직에 비해 훨씬 적었다.

서러웠던 기억은 현재 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인 천의봉씨에게도 있다. 그는 비정규직으로 살아봐야 자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하청업체 직원은 통근 버스를 탈 수 없었다. 그에겐 사원증 대신 출입증이 주어졌다. 천씨는 현대차에서 일하기 전까지 하청과 정규직의 차이를 미처 몰랐다. 경북 의성이 고향인 그는 홀어머니가 농사를 지어 살림을 꾸렸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다. 20살이 된 2000년, 군대에 지원했다. 원래는 해병대를 가고 싶었다. 그런데 외환위기 여파로 군 입대 희망자가 몰리던 때였다. 바로 입대할 수 있는 쪽은 하필 의무경찰이었다. 집회 현장의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임무가 그에게도 주어졌다. 제대 뒤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다 2004년 11월 산재·휴직 등으로 정규직 인원이 비는 쪽으로 투입되는 현대차 ‘한시하청’ 노동자가 됐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직장이었다. 첫 출근을 한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공장이 너무 넓어서 나중에 업체 사무실을 찾아갈 수 있을까, 여기서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그랬어요. 하하.” 천씨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 뒤 사내하청 업체에 정식으로 고용됐지만, 정규직이 들어오면 나가야 할지 모른다는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어머니와 통화를 한다. 어머니는 그에게 매번 “못난 부모 만나 네가 바깥 높은 데서 자는구나, 미안하다” 하신다.

중노위 명령에 소송으로 대응한 현대차

2004년 말, 고용노동부(당시 노동부)는 현대차 울산·아산·전주 공장 127개 사내하청 업체가 고용한 9천여 명에 대해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다. 정규직 전환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고문’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다. 현대차는 사내하청이 파견근로가 아닌 ‘도급’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노동계에선 사내하청이 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이라고 문제제기를 해왔다. 파견과 도급은 작업의 지휘·감독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원청이 아닌 하청업체가 노동자들을 지휘·감독하면 도급이고, 원청이 이를 하면 파견이다. 파견의 경우 정규직 전환 등 파견근로자보호법상 보호를 받게 되지만, 도급의 경우 노동자들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없다. 지난 8년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파업과 농성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1200명 가운데 160여 명이 해고되고, 1천여 명이 징계를 받았다. 최씨는 2005년 2월, 천씨는 2011년 2월 각각 해고됐다. 최씨는 부당해고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행정법원·고등법원을 거쳤지만 계속 패했다. 2006년 울산지방검찰청은 노조가 현대차 등을 파견법 위반으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희망 고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2월 최병승씨는 대법원으로부터 ‘현대차 직원이 맞다’는 최종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최씨는 사내하청 업체에 고용된 뒤 현대차에 파견돼 직접 노무 지휘를 받는 ‘근로자 파견’ 관계이므로 파견 이후 2년이 지난 때(2004년)부터 현대차와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됐다”고 판결했다. 현대차 사내하청이 ‘도급이냐 불법파견이냐’는 공방도 일단락 됐다. 사내하청을 도급으로 위장해 규제를 피해가던 업계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재판부는 불법파견의 근거로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자동 흐름 방식의 생산라인에 투입 △정규직 노동자들과 혼재해 배치, 사내 협력업체의 고유 기술과 자본 투입 없음 △현대차가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근태·인원 현황 파악 등을 제시했다. 대법원 판결 뒤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인 현대차가 부당해고를 했다”며 최씨에 대한 원직 복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최씨는 돌고 돌아 7년 만에 다시 송전탑 위에 올랐다. 대법원 판결 뒤에도 바뀐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현대차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판결과는 별개로, 해고에 대한 정당성은 따로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씨는 분노했다. “2004년 이후 8년간 회사에 교섭 요구도 했고, 법 대로 하자고 해서 끝까지 가봤고, 정치적 해법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국정감사도 세 차례나 했습니다. 해볼 것은 다 해본 겁니다. 그동안 현대차는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태도 변화가 하나도 없었어요. 가장 화가 나는 것은 투쟁을 하는 동안, 동지 1명이 돌아가시고 2명이 스스로 자신의 몸에 시너를 뿌렸습니다. 불법을 시정하라고 요구한 것인데, 왜 노동자들만 피해를 입어야 하는 겁니까? 불법파견을 한 현대차와 사내하청 업체는 단 한 명도 처벌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사회인지 의심스럽습니다.” 2010년 대법원이 최병승씨의 사내하청 노동을 불법파견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고등법원 결정을 파기 환송하자, 전국금속노조는 현대차를 파견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2년째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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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결론 안 내리는 검찰

오후 4시 무렵, 김상록 정책부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박현제 비정규직지회장이 경찰에 연행됐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박 지회장은 지난 8~9월 비정규직지회 파업을 이끈 혐의 등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울산 동부경찰서 소속 사복 경찰들은 이날 공장 안에 들어가 박 지회장을 연행했다. 정규직 노조 관계자도 이례적인 일이라며 혀를 찼다. 더구나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교섭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특별교섭 위원 64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울산·아산·전주 공장의 각 비정규직지회 대표 2명씩 총 6명뿐이다. 박 지회장은 6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대법원 판결 이후인 지난 8월 현대차는 사내하청 관련 해법을 처음으로 내놓았다. 사내하청 노동자 6800여 명 가운데 3천 명을 2015년까지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한다는 안이다. 현대차 쪽은 최병승씨 사례와 유사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수백명에 불과하며, 법적으로 논란이 있을만한 노동자는 3천명 정도로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2004년 노동부 실태 조사를 근거로 생산직 사내하청 노동자를 총 8천여 명으로 추산하는 비정규직지회 쪽은 이들 모두가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며 반발했다. 박 지회장은 지난 10월22일 쓴 글을 통해 “내가 현대차를 만든 지 10년이 넘었는데 웬 신규 채용”이냐며 2015년까지 3천 명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근거를 궁리해내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최병승씨도 같은 생각이다. 그에게 언제쯤 송전탑에서 내려올 거냐고 물었다.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는 순간 ‘사내 하도급’을 전제로 한 3천 명의 신규 채용안을 폐기하고, 상응하는 조처들을 내놓는다면 당장이라도 내려간다.”

지난 10년간 정부와 정치권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수수방관하는 사이, 정규직·비정규직 간에도 보이지 않는 강이 생겼다. 특별교섭에 대해 정규직 노조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비정규직지회와 미묘한 온도차를 내비쳤다. 현대차지부 관계자는 “특별교섭에 들어가면 우선 회사 쪽이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힌 3천 명이 어떤 근거로 나온 숫자인지부터 따져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에 감정적 갈등이 심각한 작업장도 있다”며 “비정규직지회의 절박함에 공감하는 정규직 조합원들도 있지만, 대체로 관심이 없는 편”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선이 가까워지자 비정규직 문제를 들여다보려는 정치권의 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월24일부터 이틀간 두 사람이 올라간 송전탑 아래로, 이정희 후보자·문재인 캠프 관계자·안철수·심상정 후보자가 잇따라 찾아왔다. 울산·아산·전주 공장 비정규직 3지회는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며 10월26일 하루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또 이날 오후부터 27일 오전까지 1박2일간 울산공장 앞에서 노동자·시민이 함께하는 ‘울산공장 포위의 날’ 행사도 열었다.

“비정규직 외롭게 두지 마세요”

오후 5시가 넘어가자, 인적이 드물던 울산공장 인근 길가로 일을 끝마친 현대차 노동자들이 쏟아져나왔다. 수요일인 이날은 잔업이 없는 ‘가정의 날’이었다. 비슷한 시각 송전탑 앞에서는 현대차 비정규직·정규직 노동자, 지역 노동조합 조합원 등 300여 명이 모여 촛불을 밝혔다. 이날 밤, 최병승씨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글로 하고픈 말을 적었다며 편지를 읊었다. “연대 지역 동지들, 비정규직 외롭게 하지 말아주세요. 투쟁 과정에서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노동가가 울러퍼지는 가운데 밥 짓는 냄새가 코를 휘감았다. 철탑 위아래 조합원들이 나눠먹을 끼니였다.

울산=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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