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인권운동사랑방이 있다면, 경기도 수원엔 다산인권센터(다산)가 있다. 서울 중심의 ‘편견의 지도’에서 단체가 부산에 있거나 전북 전주에 있거나 하면, 이해가 된다. 거기엔 서울과 다른 지역 인권 의제가 있을 테니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수원, 참 애매한 위치다. 서울은 아니지만 수도권이 아닌 것도 아니니, 이건 전국적 인권 의제를 다루는 단체인지 지역 단체인지 정체성이 헛갈리겠다 싶다. 경기도 안양에 살며 서울로 출퇴근하는 기자의 지리적 편견에 수원의 인권단체는 그런 ‘포지션’에 있다. 그런데 가끔 보도자료만 봐도 이 단체 활동이 참 ‘착하다’. 노동이면 노동, 평화면 평화, 뭐든 열심히 한다. 솔직히 “창립 몇 주년”이라고 해서 당연히 10돌인 줄 알고 찾아갔다. 대략 그때부터 이 단체 이름을 들어본 것 같아, 하는 생각이 있었다.
월급을 줄이고 자유를 얻다
그런데 20돌이란다.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에게 물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만들어진 게 1992년이었나요?” 그가 답한다. “사랑방, 천주교인권위가 만들어진 게 1993년이에요. 서준식 선생이 정리한 ‘진보적 인권운동’이 지금까지 인권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잖아요. 내년에 인권운동 20주년을 돌아보는 자리를 제안해보려고요.” 노동운동, 통일운동 같은 익숙한 분야 말고 인권운동 이름을 단 단체가 한국에 처음 등장한 시기가 1990년대 초·중반이었으니, 어느새 20년이 흘렀다. 그래서 다산의 20년은 다산과 함께했던, 다산이 함께했던 인권운동 20년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창립 20돌을 맞은 다산인권센터를 소개하자면…, 하고 시작한다. 원래는 1992년 김칠준·김동균(현 법무법인 다산) 변호사의 법률상담소 내 다산인권상담소로 출발했다. 2000년에는 ‘다산인권센터’로 독립했다. 지금도 법무법인 다산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단체의 독립성을 강화할수록 재정은 힘들어졌다. 박진 활동가는 “아무도 우리가 가난하다는 것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웃으며 말한다. 원래는 변호사 사무실 일도 같이 하며 인권활동을 해 다른 단체에 견줘 월급이 많았다. 물론 옛날 얘기다. 박진씨는 “지금 월급이 10년 전 월급의 반도 안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활동비를 줄이는 대신에 자유를 얻었다.
수원시 매곡동 주택가 2층에 있는 사무실의 벽면에는 이들이 뭐가 좋아서 월급도 줄이며 인권운동을 했는지 증거가 남아 있다. 먼저 전태일 판화가 있다. 그 옆에는 2011년 인권영화제 포스터가 붙어 있다. 단체 게시판에는 경기도 평택 쌍용차 점거파업 노동자들이 준 ‘인권의 소금들에게’ 감사장이 눈에 띈다. 지역 인권단체들은 1990년대 중·후반 인권영화제를 지역에서 주최하며 성장했다. 다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기에 매향리, 대추리, 쌍용차, 용산 등의 이름이 더해진다.
삼성 권력과 맞서는 인권단체
‘우리가 몰랐던’ 다산의 숨은 활약은 좀 놀랍다. 우선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억울한 용의자 누명을 벗겨줬다. 노숙소녀 사망사건의 억울한 용의자 청소년들도 도왔다. 1996년 딸과 자신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던 사위를 살해한 경기도 광명의 이상희 할머니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결실은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장애인복지시설의 악습을 세상에 알린 평택 에바다 사건에도 깊이 관여했다. 원래 ‘노동상담소’에서 출발했으니 ‘레미콘연대’와 연대한 것은 당연했다. 아주대 자주대오, 노래패 천리마 사건 등 2000년대 국가보안법 사건의 피해자도 도왔다. 이렇게 다산은 보편적 인권에 주목하되 개인의 인권도 놓치지 않았다.
수원 인근에 삼성전자 공장이 있었던 것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사실 요즘은 ‘다산인권센터’ 하면 삼성이 떠오른다. 그만큼 삼성공화국의 인권지킴이가 되기를 다산이 자처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삼성SDI 강재민씨에 대한 회사의 위치추적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다산의 공이 컸다. 삼성전자 백혈병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반올림’의 초기 활동 기반도 함께 닦았다. 박진 활동가는 “삼성의 백혈병 문제를 최초로 알린 황유미씨의 아버님 황상기 선생님을 이종란 노무사와 함께 처음 동서울터미널에서 만났다”고 돌이켰다. 박진 활동가는 지난 총선에서 ‘수원시 정’에 출마한 김진표 낙선운동을 하다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삼성 장학생’ 꼬리표가 붙은 이의 출마를 그냥 두고 보지 못한 탓이다. 최근엔 인권운동가를 공권력이 ‘억압’하는 방식이 재판과 벌금인데, 박진 활동가는 이미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4~5차례 벌금형을 받았고, 현재도 2건이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렇게 벌금에 시달리면서도 다산을 지키는 상임활동가 4명과 자원활동가 10여 명이 있다. 1997년부터 활동한 박진은 가장 오래 다산을 지키고 있다. 올해 마흔 살 박진은 통일운동, 청년단체, 노동상담소를 거쳐 인권단체에서 일하게 됐다. 19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인권활동가가 이런 ‘코스’를 거쳤다면, 김경미(34) 활동가는 여성운동을 하다가 다산에 오게 됐다. 이름보다는 ‘메달’이라는 별칭에 더 익숙한 세대다. 내년부터 메달과 함께 인권교육센터 일을 하게 되는 ‘난다’는 청소년 활동가다. 학교를 자퇴하고 2008년부터 다산에서 자원활동을 해왔다. 난다와 다산의 인연에 도 한몫했다. 난다는 ‘인권 OTL’ 시리즈의 인권위원을 하며 박진을 만났다. 이렇게 세대가 다른 활동가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산의 20년을 이어왔다. 다른 상임활동가인 안병주(39)씨는 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 등에서 활동하다 “다산에 스카우트된” 경우다. 안은정(32) 활동가는 경기 지역 장기투쟁 사업장과 연대하는 ‘사람꽃’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마을과 더불어, 지역에 더 가까이
다산인권센터는 2007년 수원시 매교동에 자리잡았다. “한 단체가 한 마을을 책임지자”는 생각에서였다. ‘수원만의 인권 문제가 있을까’ 하는 애초의 짐작과 달리 인구 120만 수원에선 참 많은 일이 벌어진다. 올해 ‘오원춘 사건’도 수원에서 벌어졌다. 박진 활동가는 “경찰의 부실한 대응도 문제지만, 여성이 비명을 몇 번이나 질렀는데 아무도 문을 열고 나오지 않았다는 데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공동체와 안전 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과 더불어 ‘범인’(범죄와 인권) 모임을 시작했다. 메달은 “서울 일은 줄이고 지역에 집중하려 한다”고 전한다. 수원시청 로비에서 농성을 하려던 장애인들의 출입을 저지한 수원시장은 최근 수원을 인권도시로 선포하려 한다. 혹시나 수원이 인권도시로 기억된다면, ‘인권도시 선포’보다는 ‘다산의 20년’ 때문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참, 다산인권센터(031-213-2105)는 ‘벗바리’로 불리는 회원들의 후원으로 유지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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