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초기에 모 우익단체에서 방송계의 대표적 좌파 작가로 정하연을 선정해서 한참 웃은 적이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우파 작가다. 심하게 얘기하자면 수구꼴통쯤 된다. 노무현 정권 때 MBC TV에서 이란 사극을 썼는데 ‘천민이 춤추는 세상’이란 서브타이틀을 내걸었더니 그걸 보고 좌파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웃어넘겼지만 실은 찔끔했다. 얼결에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에 가입한 적도 있고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적도 있는데 아마 그걸 알아내고 우파 정권에서 내 밥줄을 끊어놓으려고 하나 보다 하고 걱정이 태산 같았다. 방송작가란 것이 옛날 기생 같아서 뽑아주지 않으면 글을 팔아먹을 길이 없는지라 괜히 노사모니 민노당이니 하며 객기를 부렸나 후회가 막심했다.
유신 때부터 방송극 쓴 나는 ‘수구꼴통’
나는 유신 때부터 방송극을 썼는데 그때 위에서 내려온 방송지침 같은 것이 있어서 읽어보니까 온통 이건 쓰지 마라 저건 쓰지 마라 투성이였다. 쓰지 말라는 것 다 빼고 나니까 쓸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뿐이었다. “잘 먹고 잘 살다 죽었다.” 그 무렵 방송작가들이 원고료 인상 투쟁을 벌였다. 한마디도 안 하고 있었더니 선배들이 한마디 하라고 했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원고료를 이렇게 많이 주는데 무슨 원고료 인상 투쟁이냐.” 욕바가지를 온통 뒤집어썼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랬다. 그때 희곡이나 소설 200자 원고지 한 장 원고료가 1천원쯤 했는데 방송 원고료는 5천원쯤 했다. 그것도 희곡이나 소설은 원고지를 빽빽하게 채워야 하고 방송 원고는 술렁술렁 넘어가는데 무슨 염치로 원고료를 더 달라고 한단 말이냐. 어엿 나는 늙은 작가가 됐다. 비싼 방송 원고료 덕분에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세금도 많이 낸다. 고액 소득자가 됐다. 모두 부러워한다. 그러나 나를 존경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글다운 글을 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방송작가들이 MBC한테 수모를 당하고 있다. 까놓고 얘기하자면 김재철 사장한테 당하는 수모다. 자업자득이다. 돈벌이에 급급해서 어디 방송작가들이 제 목소리를 내본 적이 있는가. 써달라는 대로 써줬으니 목소리고 뭐고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방송사 쪽에서 보면 방송작가들이 집필 거부를 하고 성토대회를 하는 게 어이없을 것이다. 연속극을 집필하는 작가를 중도에 갈아치우는 방송사 입장에서 보면 웃기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어느 정권이나 눈엣가시 같은 <PD수첩>을 손보는 마당에 작가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없을 것이다. 잘하는 짓이다. <PD수첩>을 개떡을 만들어놨으니.
나는 우파 작가다. 사실 <PD수첩>을 잘 안 본다. <PD수첩>을 보고 있으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적당히 넘어가줬으면 하는 문제도 <PD수첩>이 물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깐죽거린다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파헤치고 뒤집어놓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불편해도 <PD수첩>을 볼 수밖에 없다. 진실과 팩트를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 정신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PD수첩>을 만들어간 우리 젊은 작가들한테 매우 부끄럽다. 그들에게서 작가 정신을 보기 때문이다. 비로소 존경받을 만한 방송작가들이 생겨났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부럽다. 또한 학살당한 <PD수첩> 작가들의 무덤을 짓밟지 않으려는 동료 작가들의 집필 거부가 눈물겹도록 고맙다. 이제는 방송작가들이 제 목소리를 낼 때다. 그것이 좌파적 시각이든, 우파적 시각이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쓰려고 하는 것이 진실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써야 한다.
방송작가 깔보지 마시라
김재철 사장한테 한 말씀 드린다.
MBC의 간판 프로그램을 내린 사장으로 기억되지 마시길 바란다. <PD수첩>이 좀 깐죽거리긴 하지만 <PD수첩>은 우리 방송사에 기념비적인 한 점을 찍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방송작가들을 깔보지 마시라. 그러다 정말 큰코다친다.
정하연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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