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여섯 달 만이다.
지난 2월8일, 한파 속에 언론노조의 김현석 KBS본부장과 정영하 MBC본부장은 의 대담을 위해 서울 여의도 MBC 노동조합 사무실 회의용 탁자에 마주 앉았다(898호 기획 ‘대선 전까지 방송 돌려놓겠다’ 참조). 당시 두 방송사의 분위기도 날씨처럼 꽁꽁 얼어 있었다. KBS 새 노조는 제작 거부 찬반투표를, MBC는 총파업을 갓 시작한 상태였다. 그랬던 두 노조는 반년이 지난 지금, 각각 95일, 170일 동안의 파업을 접고 폭염이 쏟아지는 계절에 회사로 돌아왔다. 두 노조가 그토록 퇴진을 외쳤던 김인규 KBS 사장과 김재철 MBC 사장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늘어지는 날씨만큼이나 여의도 방송사들은 모든 게 그대로고 제자리인 듯 보인다. 하지만 언론 사상 유례없는 파업을 이끌다 해고자가 된 두 노조본부장은 “또 다른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은 여섯 달 만에 두 노조본부장을 불러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바뀌었고, 어떤 싸움이 남았는지.
지난 파업에 대해 짧게 정리해달라.김현석 KBS 노조본부장(이하 김) 95일 동안의 파업, 쉽지 않았다. 그런데 더 긴 시간 파업했던 MBC 노조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려니 좀 그렇다. (웃음) 어쨌든 오늘도 KBS 새 이사 선임과 조합원 징계에 항의하는 사내집회를 하고 왔다. 복귀한 지 50일 넘었는데, 조합원들 모두 나름대로 열심히 싸우는 모습에 고마울 뿐이다.
정영하 MBC 노조본부장(이하 정) 우린 원없이 싸웠다. 보여줄 수 있는 저항을 다 보여준 것 같다. 그러나 파업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많은 일이 남아 있다. (사장 퇴진이라는) 결과를 못 냈으니 싸움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그래도 국민에게 우리 진정성은 보여준 것 같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김 본부장은 지난 2월 대담에서 “(사장을) 바꾸지 않더라도 (사장이) 최소한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됐는가.김 사내에서 (경영진의) 억압 정도가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김인규 사장은 11월이면 임기를 마친다. 석 달이 남아서인지 생각보다 조심하는 듯하다. 예전에는 프로그램을 못하게 하거나, 인사 내는 거에 대해 노조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마이웨이’식 전략을 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노력은 하는 것 같다. 식물인간까지는 아니지만, 파업을 통해 논의의 여지를 넓힌 성과는 있다.
정 KBS가 부럽다. 어쩌면 이게 언론사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노사의 상황일 거다. 노조가 저항하면 뭉개지 않고 사장과 경영진이 반영하려는 것 말이다. MBC는 노사의 배척·대립이 노골화되고 있다. 회사 정상화를 바라고 아무 조건 없이 복귀했는데, 회사는 복귀한 조합원을 적재적소에 쓰기는커녕 징계·보복 인사로 대립을 더 키우고 있다. 우리가 반환점을 돌았는지, 안 돌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업무 복귀까지 조합원들과의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을 듯하다.
김 원래 파업은 시작보다 끝내는 게 어렵다. 우리는 한 번 접으려 했다 못 접고, 두 번째 접으려 할 때도 젊은 조합원 중심으로 ‘더 싸우자’는 의견과 ‘아니다, 이쯤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했다. 그러나 빨리 들어가서 대선방송을 준비하는 게 중요했다. 파업을 더 끌어갔을 때 대선주자 검증 등 취재팀을 어떻게 꾸릴까 하는 고민이 컸다. 언론사 파업 대열 가운데 먼저 이탈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느꼈지만, 복귀해서 MBC 파업 문제를 다루자고 결의하며 조합원을 설득할 수 있었다.
정 사실 말이 쉽지, 올라가서 내부 투쟁한다는 거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KBS가 대단하다. 회사 안에서 반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다. 정말 어렵게 파업을 접었지만, 징계·대기발령 등 어찌 보면 김재철 사장 스스로 주워담을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틀어졌다. 하지만 대선방송에서 불공정한 상황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방송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데는 노력과 시간이 드는 일이기에 조합원들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두 노조가 파업으로 얻은 건 무엇인가.김 파업 전에는 집회 현장에서 기자들이 맞고 쫓겨나고 그랬다. 파업 뒤에는 ‘새 노조 기자·PD들이 공영방송 의지가 있구나’ 하는 인식이 생겨 현장에서 취재를 거부당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지금은 KBS가 잘하나 못하나 지켜보자는 유보적인 태도가 많은 듯하다. 그런 기대감이 생겨서 좋다. 문제는 그 기대감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어갈 것인지다.
정 우리도 마찬가지다. KBS와 MBC가 파업으로 얻은 건 ‘명예 회복’이다. 우리가 다 (공정방송 망치는) 그런 놈들이 아니다, 우리도 공정방송을 하려는 노력을 다했고, 이제 남은 건 파업이라는 저항권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어쩌면 보도를 잘하고 프로그램만 잘 만들면 김인규·김재철 사장이 다 그 자리에 있어도 될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과거의 공영방송 명성을 되찾으려면 꽤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만 KBS· MBC가 더 이상 ‘배부른 돼지’라는 비판은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파업 뒤 사 쪽의 노조 조합원 징계가 많았다. 두 본부장도 해고됐다. 어떻게 생각하는가.김 사 쪽이 파업 관련 징계를 노조 집행부만 하기로 했는데, 그 선을 넘었다. 정권 초기부터 노조 징계를 과하게 해 임계치가 높아졌다. KBS는 1988년 파업 당시 노조 본부장을 파면해 그게 파업에 대한 징계 기준이 됐는데, 사태가 장기화해 사 쪽의 과한 징계가 일상화돼버렸다. 결국 정권과 사장이 바뀌는 방법밖에 해결책이 없는 거다.
정 MBC 사 쪽이 진짜 핵폭탄을 건드린 건, <pd> 작가 전원을 해고한 거다. 방송사에서 가장 음지에, 약자로 있는 작가를 건드렸다. 이런 무리한 징계를 보며 ‘이제 MBC가 무너지나, 김재철 사장이 무너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 이제 조합원들은 징계·대기발령·해고가 일상적인 것처럼 돼서인지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사 쪽이 진짜 핵폭탄을 건드린 건, <pd> 작가 전원을 해고한 거다. 방송사에서 가장 음지에, 약자로 있는 작가를 건드렸다. 이런 무리한 징계를 보며 ‘이제 MBC가 무너지나, 김재철 사장이 무너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정영하 MBC본부장</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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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가 최근 KBS 새 이사에 이길영 감사를 선임했고, MBC는 오는 8월9일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가 바뀐다. 새로운 갈등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인가.
김 이길영 감사를 이사에 앉히는 것을 보곤, 이 정권 끝까지 방송 장악을 놓지 않으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감사는 5공화국 때 ‘땡전뉴스’를 이끌었고, 각종 부정·비리도 많다. 오는 11월은 김인규 사장 임기가 끝나서 새 사장을 선임해야 하는데, 보수 진영에서 좀 괜찮은 사람으로 임명해주면 어디 덧나나. 새 이사로 MB와 비슷한 사람을 임명했다. 결국 MB는 내년 2월까지 권한을 다 활용해서 나쁜 짓을 하겠구나. 그리고 박근혜도 같다. 대구 출신의 이길영 감사를 임명하며 암묵적 동의를 하지 않았겠나.
정 우리도 많이 다르지 않다. 그나마 전보다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상황이 심각하다. 어찌 될지 지켜봐야 한다. 지난 3년 동안 방문진 이사들은 완벽하게 청와대의 병풍 역할을 했다. 우리가 파업하는 동안 성명서 한 줄 못 낸 사람들이다. 사퇴 해결 의지보다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청와대·여당 성향의 이사 6명 가운데 3명을 연임하고 김재우 이사장도 연임했는데, 이는 끝까지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장악을 풀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를 넘어서 탄압하겠다는 의지도 있다.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앞으로 새 이사진의 행동을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듯하다.
대화는 대담을 진행하기 전날인 지난 7월30일치 에 실린 김재철 사장의 인터뷰로 옮아갔다. 김 사장은 인터뷰에서 “MBC는 노영(勞營)방송의 성격이어서 보직간부들이 노조를 두려워했다”며 “나는 반드시 노영방송의 관행을 끊어야 한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또 노조가 제기한 무용가 정아무개(57)씨와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회사의 문화사업 파트너일 뿐”이라며 “J씨 남편이 기러기 남편인데 노조가 찾아가서 자꾸 뭐라고 하니 의처증 비슷한 게 생긴 것 같다”고 해명했다.
- 김현석 KBS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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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따져보면 군사정권 아래에서도 이렇게 대놓고 노조를 탄압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힘있는 사 쪽이 더 목소리를 내고 폭압적이다. 이러니 방송 정상화가 더 꼬이는 것이다.
김 김 사장은 ‘뭔가 하려고 하는데 노조가 못하게 한다’고 하는 건데, 실무자가 의견을 개진하고 노사가 서로 소통해서 조율하는 건 방송법에서도 규정한 사항이다. 양심에 따라 권리를 지키려는 걸 마치 나쁜 놈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그런 천박한 인식을 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뻔뻔하다.
정 아무리 MBC 출신이 아닌 낙하산 사장이라도 2년 넘게 회사에 있었다면 저런 발언을 하기 어렵다. 30년 기자 생활을 했다면 대한민국 언론사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 텐데…. 지금 김 사장이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 본인 생존에도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고, 오히려 자신을 임명한 사람에게도 부담스러울 수 있을 상황이다.
김 어쩌면 이번 파업의 최대 수혜자는 김인규 사장인지도 모르겠다. 김재철 사장 때문에 별로 눈에 안 띄고 묻혔으니 말이다.
두 노조에 파업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KBS는 오는 11월 사장 선임 방식을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논쟁거리다. KBS 새 노조는 새로 임명하는 사장은 공개적으로 선임하고, 이를 위해 ‘사장 추천위원회’를 법제화하자고 제안했다. 또 정당인 출신이 응모할 수 있는 현 사장 선임 요건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MBC 노조는 그동안 노조가 제기해온 김재철 사장의 부적절한 경영 행위에 대한 의혹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본부장은 “무용가 정씨와의 의혹 등 김 사장이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기본적인 자질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총체적 평가를 빨리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이 한마디 덧붙였다. “김재철 사장이 그만두면 꼭 에 출연하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무용가 정씨와의 의혹은 드라마 작가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것 같거든요. 경쟁사 사장 신분으로 나오기는 힘들 테니, 빨리 그만두셔야겠어요. (웃음)”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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