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0일 정성일(65)씨가 춘천시 강원도청 앞에서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강원도민의 농성이 9개월여 동안 이어지고 있지만, 도지사는 대답이 없다. 한겨레 김명진
강원도로 돌아왔다! 몇 년 전 강원도 춘천에 작업실을 마련해 정착한 뒤 지인들에게 ‘나, 강원도민이 되었다’고 자랑하며 다녔다. 도시가 지나치게 커지면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말해오던 터였으므로, 내가 사는 지방 소도시의 자그마한 규모에 대해 자랑했다. 사람살이가 영위되는 공동체란 모름지기 이 정도 규모가 딱 적당하다는 ‘규모의 미학’에 대부분의 내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규모의 적절함을 포함해 ‘강원도살이’의 가장 좋은 점은 단연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것! 그 무엇과도 대체 불가능한 ‘강원도의 힘’이란 바로 ‘자연의 힘’이다.
그루브한 오후, 즐기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전히 강원도에 살지만, 요즘 나는 ‘강원도 찬양’을 맘 편히 할 수 없다. 직설로 말하겠다. 내게서 강원도의 힘에 대한 예찬의 기쁨을 빼앗아가버린 것은 ‘아마도 우리 편’일 것이라고 여겼던 이른바 야당 출신 도지사의 도정 때문이다. 행정권력의 방향성이 수상해지니 강원도가 이상해져간다. ‘강원도 힘’의 근원이라 할 자연이 도처에서 함부로 파괴되고, 자신이 살던 땅에서 쫓겨나는 주민들이 사방에서 울고 있다. 강원도의 자연을 파괴하는 심각한 주범 중 하나가 바로 난립하는 골프장이다.
강원도에 골프장 난립이라니! 사실 나는 골프라는 스포츠에 편견이 없다. 오래전 뉴질랜드에 머물 때 생애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있다. 뉴질랜드에는 정말 많은 골프장이 있지만 우리처럼 숲을 파괴하고 농약과 제초제로 잔디를 관리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골프는 그 나라의 자연환경에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때문에 발전한 생활 스포츠다. 골프를 즐기는 이들은 마치 테니스장을 이용하듯이 저렴하게 골프를 즐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산이 많은 좁은 땅에 골프장을 지으려면 필연적으로 엄청난 자연파괴가 일어나고, 제초제와 농약으로 인한 돌이킬 수 없는 환경오염이 점점 극심해진다.
게다가 이 땅의 골프문화라는 것은 한마디로 최첨단 비리의 온상과 결부돼 있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골프 인구는 3% 정도라고 한다. 국회의원, 경제계 고위 인사, 언론사를 비롯해 정·재계의 꼼수 유착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장소가 골프장 회동을 통해서다. 한국에서 골프장은 이를테면 잔디 깔린 룸살롱과 비슷한 접대·로비·뇌물 거래의 온상이다. 오죽하면 한 젊은 시인이 골프장을 이렇게 읊었겠는가.
“푸른 멍이 든 잔디들이 순종적으로/ 엉덩이를 흔든다/ 무심한 공들이/ 구멍으로 간다 (…) 나이스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장의 그루브한 배/ 낙하에 성공한 당신의 공 (…) 옮겨 심은 어린 소나무가 농약에 취해 시퍼렇고/ 당신이 벌타 대신/ 바람의 세기에 따라 내 오른 엉덩이를/ 나이스하게 만져대는/ 그루브한 오후. 나이스샷 사장님/ 구멍을 찾으시나”(서효인 ‘착하고 즐거운 코스’의 일부).
골프장 건설이 내수경기 활성화와 고용 창출, 세수 증대의 이익이 있다고? 조금만 제정신 가지고 계산해보면 골프장이 창출하는 경기 활성화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고용 창출 효과가 얼마나 미미한 것인지 금세 알 수 있다. 골프장이 국민 대다수의 건강관리에 도움을 준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골프장을 드나들 수 있는 이들은 상위 3%, 아주 넉넉하게 잡아도 5% 미만의 특정 계층일 뿐이다.
추락하는 기대에는 날개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강원도의 골프장 건설이 점점 더 늘어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서민을 위한 도정 운운하며 표를 구하던 정치인들의 ‘정치’가 결국 3%를 위한 정치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의 이 적나라한 방증을! 게다가 한술 더 떠 골프장 건설이 허가 나고 건설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반민주적인 절차 문제로 인해 강원도 산골 곳곳에서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아온 노인들이 졸지에 고향에서 쫓겨나야 하는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은! 평생을 땅과 더불어 일하고 이제 국가로부터 보살핌받아야 하는 연령대에 이른 70~80대 노인들이 골프장의 난립으로부터 자신들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100일, 200일이 넘는 야외농성을 이어가고 있다면!
여당의 아성이던 강원도에서 야당 도지사를 배출한 순간부터 ‘우리’가 가졌던 기대는 여지없이 전락 중이다. 특권 계층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불법·탈법을 저지르는 것을 정치권력의 떡고물쯤으로 여기는 막돼먹은 여당 권력이 하는 짓과 별반 다르지 않은 도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게 있다면 여당 권력이 뻔뻔스럽게 해온 짓을, 지금은 우는 소리를 하며 한다는 거다. ‘도지사 돼보니 이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하더라’는 식이다. ‘지역 세력 분포가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많으니 이해 좀 해 달라’는 애티튜드는 어쩐지 너무 닳고 닳았다.
나라 꼴이 너무 막장이라 더 두고 볼 수 없다며 이제 강원도도 달라져야 한다면서 야권 도지사에게 표를 던진 ‘합리적 보수’인 내 아버지는 이제, 정치판 놈들은 여야 막론하고 전부 마찬가지라는 결론으로 회귀하셨다. 나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우리 편 의식’에 근원적인 제동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을 참담한 마음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편’이라고 믿었던 야당 도지사가 당선되었는데도 왜 평생 일궈온 자신의 땅에서 피눈물 흘리며 쫓겨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며, 밤이슬을 맞으며 노상 농성장에서 울던 어르신이 급기야 농성 중에 세상을 떠야 하는가. 도대체 왜 야당 도지사를 면담하러 간 노인들이 도청 앞에서 ‘명박산성’을 방불케 하는 경찰버스에 둘러싸여 한숨을 토해야 하며, 정작 도지사는 만나지도 못한 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현행범으로 경찰서에 붙들려가야 하는가.
강원도는 경력 쌓기의 정거장이 아니다
주민들이 도청으로 찾아간 것은 최문순 지사가 골프장 인허가와 관련한 불법·탈법에 대해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도지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나도 힘들다’고 하소연하며 여당 출신 도지사 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이여, 어찌하면 좋겠는가. 평생 몸 붙이고 산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며 피눈물 흘리는 저 노인들의 마음을 도지사여 제발 헤아리시라. 저 노인들이 평생 대지와 함께 쌓아온 인생이 ‘강원도의 힘’의 근원이다. 강원도는 당신의 정치 경력 쌓기의 여정에 잠깐 거쳐가면 그만인 정도로 활용할 그런 땅이 아니다.
기우에서 덧붙인다. 도의 현안이 얼마나 많은데 그깟 골프장 문제로 야권 도지사의 도정을 발목 잡느냐는 말씀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 강원도 도정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강원도의 자연을 지켜내는 것이다. 청정 자연은커녕 골프장에 쑥대밭 된 강원도로는 미래를 말할 수 없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구속 만기 돼도 집에 안 갈 테니”…윤석열, 최후진술서 1시간 읍소

디올백·금거북이·목걸이...검찰 수사 뒤집고 김건희 ‘매관매직’ 모두 기소

“비행기서 빈대에 물렸다” 따지니 승무원 “쉿”…델타·KLM에 20만불 소송

이 대통령 “정부 사기당해” 질타에…국토부, 열차 납품지연 업체 수사의뢰

특검, 김건희에 ‘로저비비에 선물’ 김기현 부부 동시 기소

박주민, 김병기 논란에 “나라면 당에 부담 안 주는 방향 고민할 것”

청와대 복귀 이 대통령…두 달간 한남동 출퇴근 ‘교통·경호’ 과제

회사 팔리자 6억4천만원씩 보너스…“직원들께 보답해야지요”
![건강검진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 건강검진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5/53_17666328279211_20251225500964.jpg)
건강검진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

나경원 “통일교 특검 빨리 했으면…문제 있다면 100번도 털지 않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