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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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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코지당할까봐 불안했다”

한국인한테 성추행·폭행 당한 인도네시아 선원 스기토 등 사조오양 본사 앞서 항의 시위…
정부, 가해자 폭행 사실 확인
등록 2012-06-21 20:37 수정 2020-05-03 04:26
지난 6월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사조오양 본사 앞에서 인권침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겨레21>이 인터뷰한 선원 스기토(앞줄 왼쪽에서 둘째)와 뉴질랜드 활동가 엘리아나(앞중 왼쪽에서 다섯째)가 참석했다. 김명진 기자

지난 6월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사조오양 본사 앞에서 인권침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겨레21>이 인터뷰한 선원 스기토(앞줄 왼쪽에서 둘째)와 뉴질랜드 활동가 엘리아나(앞중 왼쪽에서 다섯째)가 참석했다. 김명진 기자

“전 아직 무섭습니다.”

무서울 시간이 아니다. 6월11일 오전 10시30분. 날이 맑다. 볕이 좋다. 무서울 장소도 아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사조오양’ 앞 도로에는 벌써 사람이 많이 모였다. 방송사 뉴스 카메라를 포함해 기자들이 많이 모였다. 그런데도 그의 첫마디는 “두렵다”였다. 엘리아나 테누(51)는 이날 말로만 듣던 ‘사조오양’ 본사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사조참치’와 ‘오양맛살’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먹거리다. 맛도 좋다. 모두 ‘사조오양’에서 생산한다. 그러나 엘리아나는 그 맛을 잘 모른다. 대신 그에게 사조오양은 ‘오양75호’로 기억된다.

뉴질랜드서 피해자 도운 엘리아나

지난해 뉴질랜드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조업하던 사조오양 소속 원양어선 ‘오양75호’에 타고 있던 인도네시아 선원 32명이 뉴질랜드로 집단 탈출했다.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한국인에게서 성희롱·폭행·폭언·임금체불(911호 표지이야기 ‘한국인 선원은 때리고 갑판장은 성추행’ 참조) 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뉴질랜드 정부가 조사에 나섰고, 지난 3월1일 정식 보고서를 내어 성희롱 등이 벌어졌음을 인정했다. 국제민주연대 등이 인도네시아 선원 6명을 대신해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4월12일 증거 부족을 이유로 진정을 기각하면서도 5월15일 보도자료를 내어 한국 정부가 정식으로 이 사건을 재조사하라는 의견표명을 했다. 국제민주연대, 공익법그룹 ‘어필’ 등은 6월11일 사조오양 본사 앞에서 인권침해 등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인터뷰한 스기토 등 선원 2명과 뉴질랜드에서 이들을 도왔던 활동가 엘리아나도 마이크를 잡았다.

6월13일 엘리아나를 다시 만났을 때 “무섭다”는 말을 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서울 종로구 필운동 국제민주연대 사무실에서 그는 지난해 오양75호 선원들을 처음 만나던 순간을 기억했다. “2011년 6월20일 오양75호에서 탈출한 인도네시아 선원 가운데 한 명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도와달라고.”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영어를 할 줄 몰랐다. 엘리아나는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억울한 사정을 뉴질랜드 언론과 시민단체에 알렸다. 인도네시아 출신 엘리아나는 1996년부터 뉴질랜드에서 거주해왔다. 탈출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약 2주 뒤 사조오양 간부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오클랜드공항 라운지에서 만났다. 사조오양 간부들은 엘리아나가 인도네시아 선원들을 설득해 오양75호에 복귀하도록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최저임금과 성희롱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책을 말하지 않았다. 6월11일 아침 기자회견 때 감정이 궁금했다. “불안했다. 해코지당할까봐.” 그는 한국 원양업체가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면 좋겠다고 말했다.

합동조사단, 수사 의뢰 계획

국토해양부와 외교통상부 등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현지 조사 결과 한국인 선원 4명이 인도네시아 선원 4명을 지속적으로 폭행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6월10일 밝혔다. 합동조사단은 이들을 폭행 등 혐의로 수사 의뢰할 계획이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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