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24살의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박사과정 대학원생이던 조슬린 벨 버넬은 전파망원경에서 규칙적으로 잡히는 우주 전파를 발견했다. 그는 지도교수인 앤터니 휴이시 교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휴이시 교수는 “망원경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그 신호는 새로운 펄서(Pulsar·천체)가 내는 것이었다. 버넬은 펄서의 최초 발견자였지만, 그 발견을 다룬 논문에서는 휴이시 교수에 이어 두 번째 저자에 올랐다. 1974년 휴이시 교수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을 때 수상자에서는 제외됐다.
지금은 유명한 이 이야기는 과학계에서 교수-대학원생 사이의 공로 논란에서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서도 이른바 ‘버넬 사건’과 닮은꼴의 논란이 일고 있다. 이공계 연구자들이 논문을 싣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하는 세계적 과학저널 에 오른 논문을 둘러싼 공방이다.
‘레미콘 회사 전전하다 유학’ 인생역정 화제
논란의 중심에 있는 논문은 지난 5월10일치 485호 표지 논문으로 실린 ‘균열 제어를 통한 형태화’(Patterning By Controlling Cracking)다. 남구현(33) 이화여대 초기우주과학기술연구소 특임교수와 고승환(38) 카이스트 교수(기계공학)가 공동 교신저자(연구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로, 박일흥(55) 이화여대 교수(물리학)가 제2저자로 이름을 올린 이 논문은 물체에 균열을 가게 한 뒤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추도록 하는 기술을 담고 있다. 논문에서는 균열을 제어해 글씨를 쓰기도 했다. 이 기술은 차세대 반도체와 바이오칩 등 나노채널에 응용하면 제작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논문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국내 연구팀만으로 표지로 뽑힐 정도의 논문을 썼다는 것도 큰 성과였지만, 공동 교신저자 가운데 한 명인 남 교수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레미콘 회사 등을 전전하다가 미국 유학을 떠나 고생 끝에 큰 성과를 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도 한몫했다.
그런데 이 화제의 논문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연구팀이 국내 언론에 논문 성과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기 하루 전인 5월8일 저녁,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에 뜬 글 때문이다. “남 교수가 내 실험 결과를 빼앗아갔다”는 내용의 글에는 관련 자료가 파일로 첨부됐다. 글쓴이는 이화여대 물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전아무개(28)씨. 제2저자인 박 교수가 그의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전씨는 지난 5월16일에도 아고라 게시판에 글과 첨부파일을 올렸다. 두 차례 글을 통해 전씨는 “ 표지 사진을 포함해 논문에 실린 14개 샘플 가운데 10개가 내 샘플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 연구 주제를 생각하고 제안한 이는 남 교수이지만, 실험의 모든 과정과 결과를 연구노트에 기록하고 교수님들에게 보고를 드린 것은 나”라며 논문 저자에 자신을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전씨는 “논문의 최대 성과인 뾰족한 바늘 모양 패턴으로 균열이 시작하고, 계단형 패턴에서 멈추게 하는 것이 내가 직접 발견하고 구현한 결과”라는 주장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연구노트 등의 자료를 이화여대 연구진실성위원회에 제출했고, 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에도 논문 저자 수정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남 교수는 “전씨가 한 일이 논문 저자에 오를 수준의 역할은 아니다”라며 전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균열은 미국에서 박사과정 중이던 2007년부터 연구해온 주제로, 이미 내가 구체화해놓은 실험 조건과 재료 등을 전씨에게 제시하고 그에 맞춘 결과물을 얻은 것”이라며 “전씨의 연구노트에는 이러한 결과물이 담겨 있으며, 관리자였던 내가 연구노트에 확인하고 서명해준 적도 없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논문의 ‘감사의 글’(Acknowledgements)에 전씨 이름을, 연구에 참여했던 다른 카이스트의 대학원생들 이름과 함께 올렸다.
“실험 모든 과정 진행” vs “패턴 발견도 판단 못해”
남 교수는 전씨가 주장하는 균열의 시작과 정지 패턴에 대한 발견에 대해 “사진 촬영은 전씨가 한 것이 맞지만, 발견 자체는 내가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씨가 가져온 샘플을 남 교수가 살펴본 뒤 전씨에게 해당 부분을 집중 촬영하도록 지시하는 등 전씨는 보조 작업에 그쳤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당시 전씨는 균열 패턴의 발견 여부조차 판단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는데, 공로를 인정해달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내가 제시한 조건으로 얻어낸 샘플을 단지 전씨가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어떻게 자신의 샘플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남 교수, 전씨와 함께 한 공간에서 연구해온 제2저자인 박 교수의 말은 달랐다. 박 교수는 “앞서 균열의 이론적 배경과 재현 등을 담은 논문을 준비했는데, 남 교수가 편집자와 수정 작업을 거쳐 전씨의 실험 결과가 대부분인 논문으로 바뀐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전씨가 기여한 바 없어 저자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는 남 교수의 설명을 듣고 넘어갔으나, 뒤늦게 전씨가 이의를 제기해 알게 됐다는 것이다.
논문을 둘러싼 저자 공방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한 연구소 안에서 에 실릴 수준의 논문을 쓴다는 것을 전씨가 모르고 있다가 논문 최종 발표를 앞두고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 그리고 저자로 참여한 전씨의 지도교수인 박 교수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다는 점 등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상황을 이해하려면 남 교수의 국내 연구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 교수는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2010년 1월부터 이화여대로 왔다. 그는 공동 교신저자인 고 교수의 연구팀이 있는 카이스트에 합류해 논문 주제에 대한 연구를 하려 했지만 경력이 모자라, 박 교수의 ‘이화여대 초미세전기기계시스템(MEMS) 우주망원경 창의연구단’에 계약직 특임교수로 합류했다. 행정상 초기우주과학기술연구소 특임교수를 맡았지만, 실제로는 박 교수의 연구단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합류 당시 남 교수는 박 교수에게 “와 에 쓸 주제가 각각 1개씩 있다”고 말했다 한다. 연구는 고 교수의 카이스트팀과 함께 시작했고, 박 교수도 참여했다. 연구비는 박 교수의 한국연구재단 창의연구자사업과 고 교수의 교육과학기술부 중견연구자사업, 일반연구자사업에서 나왔다. 박 교수의 제자인 전씨는 2010년 3월부터 남 교수의 연구에 참여했다.
그러나 남 교수는 그해 말 연구단의 대학원생들을 훈계하는 과정에서 감정적 마찰을 빚는다. 그 뒤로 남 교수는 전씨와 하던 연구도 중단했다. 전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남 교수가 자신의 결과물을 수거해갔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실험 결과의 압박이 심했는데 전씨가 하는 작업의 진척이 더뎌서 카이스트 연구팀에 넘겼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후로도 남 교수 등 저자 3명의 논문 연구는 계속됐다. 2011년 5월께 에 제출하기 위한 논문 초안을 작성했다. 최종본은 그해 말 제출됐다. 남 교수는 에 논문이 실리는 것을 통보받은 직후인 지난 3월, 박 교수에게 사직서를 냈다. 사직서는 현재까지 수리되지 않았다.
이화여대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 진행
남 교수와 고 교수는 전씨가 문제제기를 한 배경에는 연구진 사이에 교신저자를 두고 벌어진 갈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두 교수는 논문에 저자가 어떻게 실릴지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전씨도 일찌감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뒤늦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고 교수는 “실제로 연구에 큰 기여를 하지 않은 박 교수가 논문 게재가 최종 결정된 2월 말~3월 초까지도 자신을 교신저자로 넣어달라고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 편집자에게 문의해서 ‘3명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는데도, 박 교수는 남 교수에게 교신저자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또 “‘감사의 글’에 ‘창의재단’만 써야 한다는 등 무리한 요구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가 한국연구재단 창의연구자사업의 2단계 평가와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천문학 분야 기초과학연구단장 지원에 의 교신저자 논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남 교수도 “박 교수가 교신저자를 끊임없이 요구해와 사직서를 냈다”고 말했다.
남 교수와 고 교수의 주장에 대해 박 교수는 “이미 창의재단 평가는 올해 초 잘 받았고, 연구윤리 문제에 나를 끌어들이는 것은 본질을 흐리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전씨는 “위원회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박 교수와 전씨는 5월9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열린 논문 성과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저자 문제를 항의하려 했으나, 출입 신청을 미리 하지 못해 참석하지 못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이화여대는 지난 5월11일 전씨의 소명서와 연구노트 등을 접수해, 본건의 조사 여부를 가리는 연구진실성위원회 예비조사를 벌여왔다. 지난 5월22일 부정행위 등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본조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5월25일 오후 남 교수를 불러 전씨의 주장에 대한 소명 절차를 진행했다. 남 교수는 “전씨의 실제 역할을 입증할 문건이나 전자우편 등 소명 자료가 충분히 있다”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전씨가 한국판 ‘조슬린 벨 버넬’이었는지, 아니면 논문을 향한 과욕으로 한 과학자의 얼굴에 먹칠을 하려 한 것인지 아직은 확언할 수 없다. 진실은 밝혀질 수 있을까.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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