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초, 경제종합지인 는 가뜩 독이 올랐다.
1월3일 신년 1면 머리기사부터 정부를 때리기 시작했다. 월요일인 3일 첫 머리기사는 ‘손 놓은 전세대책 속 터지는 서민들’이었다. 하루를 건너뛴 뒤 1월5일 1면 ‘동시다발 가격 인상… 대책 없는 MB 물가’ 기사에서는 정부의 물가정책을 두들겼다. 1월6일에는 ‘작은 정부 한다더니… 늘어난 건 공무원뿐’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1면 머리를 차지했다. 흔히 경제지의 단골 머리기사감인 ‘삼성 올해 43조 투자’ 기사는 1면 사이드의 1단 기사로 밀려났다. 그래도 성이 풀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1월7일에는 1면을 정권 비판 기사 3꼭지로 아예 도배했다. ‘구제역발 물가비상 소·돼지고기값 급등’ ‘37년 전 실패 정책 꺼내든 MB 정부’ ‘공정위 물가기관 선언 논란’이었다. 1월8일의 1면 머리기사도 ‘모순된 물가대책’이었다.
무참히 실패한 〈TV조선〉 비장의 카드
당시 기자들끼리는 “가 보다 더 진보적인 것 같다”라는 말을 우스개처럼 주고받았다. 친재벌적인 매체가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앞서 2010년 12월31일 정부의 발표 탓이 컸다.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종합편성채널(종편) 사업자로 4개 매체를 선정했다. 만 쏙 빠졌다. 재벌 문제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점잖은’ 경제지가 별안간 발끈한 이유였다. ‘오너’가 뚜렷하지 않은 탓에 만 유탄을 맞았다는 추측이 언론계를 맴돌았다. 는 현대차, LG 등 대기업들이 지분을 나눠갖고 있다.
14개월이 지났다. 이걸 아마 ‘새옹지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를 피해간 것은 혜택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어쩌면 이제는 청와대에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지 모르겠다. 그만큼 종편에 뛰어든 언론의 처지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1일 시작된 종편은 3월9일 출범 100일을 맞지만 부진의 늪은 깊다.
우선 시청률이 참담하다. 지난해 12월 출범 초기부터 1%를 밑돌던 채널 시청률은 새해 들어 바닥이라도 파고들 태세다. 평균 시청률이 가장 높은 JTBC가 지난해 12월 첫쨋주 평균 시청률이 0.597%였고, 그나마 꾸준히 떨어져 1월 둘쨋주에는 0.364%까지 내려갔다. TV조선은 평균 시청률이 0.28%를 기록해 종편 가운데서도 꼴찌였다. MBN은 종편으로 전환하기 이전 뉴스전문채널 시절의 평균 시청률인 0.5% 수준에서 오히려 더 떨어졌다(표 참조). 그나마 이 수치도 유료매체 가입가구를 기준으로 뽑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가구 기준 시청률을 적용하면, 종편 4채널의 시청률은 ‘0’에 가깝게 수렴한다.
초기부터 물량전을 펼친 다른 종편과 달리, TV조선은 상대적으로 서두르지 않는 전술을 폈다. 조급하게 개국 일정이 짜인 점을 고려해 천천히 ‘비장의 카드’를 내놓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지난 2월6일 시작된 김정은·황정민 주연의 드라마 였다. 제작비만 100억원이 들었다는 대대적인 홍보가 뒤따랐다. TV조선은 가 1990년대 신생 채널인 SBS를 순식간에 도약하게 만든 같은 구실을 하길 내심 기대했다. 방송가에서는 의 시청률이 5%를 넘지 않으면 가 종편을 접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꿈은 깨졌다. 의 첫 시청률은 1.649%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불씨를 살리고 싶었나 보다. 첫 방송 다음날 는 가 종편 드라마 가운데 첫 방송 시청률이 가장 높았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하루 만에 거짓말로 드러났다. 다음날 는 JTBC의 드라마 의 첫 방송 시청률이 1.726%였다고 보도했다. 는 다른 기준의 시청률 자료를 단순 비교하는 ‘꼼수’를 쓰다가 한 번 더 망신만 당했다.
종편 내부 분위기도 우울하다. 개국한 지 3개월이 안 된 상황에서 이탈자가 나타나고 있다. 한 지방 방송사는 지난해 20여 명의 기자가 종편으로 대거 이동했다. 새해 들어 흐름은 반대로 돌아섰다. 지방 방송사의 기자는 “종편으로 떠난 사람들 가운데 기자 3명과 PD 1명이 다시 회사로 돌아오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들었다. 그중 PD 1명은 특채 형식으로 회사에 돌아왔지만, 기자 3명은 복귀에 실패했다. 그 기자들 가운데 1명은 구체적으로 회사와 협의까지 거쳤지만 사내 기자들 사이에서 반발 기류가 강해 복귀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한 종편의 기자는 “개국 초기만 해도 뭔가 해보자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자 조직 내부의 피로도가 커지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다른 일자리도 뾰족하게 없어서 일단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종편으로 이직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이 문제로 종편끼리 드잡이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MBN이 자사 기자 9명을 노골적으로 스카우트해갔다며 채널A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는 사실이 지난 2월4일 밝혀지기도 했다.
떠나는 인력, 불만 터뜨리는 외주사종편이 ‘장사’를 말아먹으면서, 협력업체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종편들이 저조한 시청률을 들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등 문제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방송사에 프로그램을 제작해 ‘납품’하는 독립제작사협회는 지난 2월23일 ‘종편 피해보고 및 대책회의’를 열었다. 협회는 회원사들에 보낸 공문에서 “종편은 시작할 때와 달리 불과 3개월도 안 돼 약속을 저버리고 파렴치한 편성 운영으로 모든 거래를 원점으로 돌렸다”고 성토했다. 협력업체들의 문제는 결국 종편 프로그램의 수준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시장의 평가는 차갑다. 제일기획이 2월27일 발표한 ‘2011년 매체별 총광고비’ 자료를 보면, 종편의 벌이는 참담했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종편 4개사는 광고로 320억원을 벌어들였다. 당시 광고업계에서는 종편 4개사의 첫 달 광고매출 목표액을 800억원 정도로 예상했다. 300억원대의 매출은 그나마 종편의 초라한 성적표가 나오기 이전에 계약된 물량이었다. 삼성증권은 지난 1월 보고서에서 “종편의 저조한 시청률이 지속될 경우, 지상파 대비 70% 정도 수준으로 책정된 종편의 광고 단가 하락”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1월의 예상은 2월에 현실이 됐다. 지난 2월23일 한국신용평가가 내놓은 ‘종합편성채널 개국과 방송시장의 변화’ 보고서에서는 종편의 방송 단가가 지상파 방송의 25%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현재와 같이 부진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시청률 하락→광고매출 하락→제작비 감축→투자 위축→시청률 재하락의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전망했다. 종편의 외주 제작사에 대한 계약 파기와 시청률의 하락 추세를 보면 이런 사이클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늪에 빠진 종편이 생환할 수 있을까. 한국신용평가의 보고서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보고서는 SBS의 한 해 광고수익(5천억원)과 운영비(4천억원) 추정치에 근거해 이렇게 추론했다. 일단 SBS의 평균 시청률이 5~6%인 점에 비춰볼 때, 시청률 1%당 약 1천억원의 광고수입이 있다고 추정한다. 따라서 종편의 시청률을 0.5~1%로 본다면 연간 광고수익은 500억~1천억원이 된다. 그리고 종편이 SBS 운영비의 절반만 투자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지출액은 2천억원이 된다. 따라서 종편 1개 회사는 해마다 1천억~1500억원의 적자를 보게 된다. 종편 4개사의 납입자본금은 3100억원(TV조선)~4076억원(채널A) 수준이다. 따라서 이런 추세에 극적인 반전이 없다면, 종편들은 2~3년 사이에 자본 잠식에 이르게 된다.
‘모기업’ 신문사에도 불똥 튀나종편의 불똥이 ‘모회사’인 신문에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신용평가 보고서는 “종합편성채널이 광고 영업을 본격화하고 매체 간 광고 유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기존 신문사업의 광고수입이 일정 부분 잠식되는 부정적 영향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현재로서는 외부 자본이 충분히 수혈되거나 시청률의 극적인 반등이 없는 한, 종편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이현정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지금 상황에서라면 종편은 지속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자본력을 갖추고 적자를 감수하며 끈기 있게 투자하는 일부 종편만이 미디어의 정글 속에서 그나마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더라도 성공을 장담할 상황은 아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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