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6일 정부는 학교 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사회 각계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총망라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양적인 나열에 그쳤고, 그러면서도 정작 핵심적인 내용은 빠져 있다. 이러한 대책으로 과연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말 그대로 종합대책이 되려면 가정과 학교, 사회가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대책이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방안이 학교와 교사의 역할과 책임에 기대고 있다. 결과적으로 교사의 부담만 가중시킬까 우려된다.
교사와 학교에 책임 떠넘겨
이번 대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가해·피해 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의 평화로운 학교문화 조성이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방안이 가해·피해 학생의 격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금까지 학교 폭력 문제에 교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교사의 과중한 업무 부담이 주된 요인이었다. 그러한 근무 여건은 개선하지 않은 채로 매 학기 1회 이상 1대1 면담을 실시한다거나 주요 과목에 대한 수업시수 조정 없이 체육 시간을 늘린다거나 하는 대책들은 방향성에서는 분명히 바람직하지만 교사와 학교의 부담은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학교 폭력은 더 이상 일반 교사의 생활지도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상담교사나 학교사회복지사 같은 전문교사를 비롯해 위(Wee)센터나 청소년상담지원센터 같은 전문기관과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방향성으로 보면 종합대책 안의 인성교육을 강조한 부분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방법의 결과를 대입에 반영하겠다는 것은 또 다른 입시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인성 지표를 개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표가 개발된다면 그에 맞춘 입시 준비에 매진할 학부모가 적지 않을 것이다. 지표화하기 어려운 것까지 입시에 반영하는 식으로 학교 폭력을 잡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원칙대로 가야 한다. 인성교육은 수치화를 통한 경쟁 구도가 아니라 다양한 교과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꾸려가야 한다. 가장 쉬운 길은 충분한 여가 시간부터 학생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이번 대책 중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부분은 일진경보제다. 이 제도는 가해학생에 대한 낙인찍기에서 더 나아가 학교에까지 낙인을 찍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도 평가가 개입된다. 각급 학교부터 일진 지표와 관련된 일선 경찰까지 결과를 내기 위해 매진할 것이고, 이런 상황이 벌써 일선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결과 일진회가 그야말로 ‘소탕’될 수도 있겠지만, 교육이라는 건 결과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일진 없는 ‘좋은’ 학교로 불리기 위해 학교라는 조직은 학교 폭력과는 다른 의미에서 학생들에게 억압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언론노조 김현석 한국방송본부장(왼쪽)과 정영하 문화방송본부장이 지난 2월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문화방송 노동조합사무실에서 대담을 나눴다. <한겨레21> 박승화
악한 학교 폭력, 약한 폭력 학생
피해 학생에 대한 ‘전학 권고’ 폐지나 상급학교 진학 때 피해 학생 우선 배치, 피해 학생의 상담·치료·보호 비용의 학교안전공제회 우선 부담 등의 조처로 피해자 보호 방안은 다소 보완이 되었다. 아쉬운 점은 피해자·가해자 대책이 대부분 격리에 그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가해자를 엄벌하거나 격리한다고 해서 피해자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을 통해서만 피해자가 치유될 수 있고, 피해자의 용서를 통해서만 가해자도 치료될 수 있다. 따라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하고 학교에 진정한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회복적 정의의 구현을 위한 중재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중재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도 마련돼야 한다. 이번 대책 중에서 또래 상담 프로그램의 강화가 있는데, 학생들 간의 갈등을 중재·조정하는 또래 상담자를 양성한다면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의 보조자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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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책 가운데 기대되는 부분도 있다. 가해 학생 부모에 대한 특별교육 의무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대책의 전반적인 기조가 가해 학생에 대한 엄벌주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학교 폭력의 책임은 아이들에게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폭력성의 기질적 측면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지라도 폭력 학생의 상당수가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이라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학교 폭력은 악하지만 폭력 학생은 약하다. 폭력 학생들은 가정에서 돌봄을 받지 못해 부모와의 애착 형성이 제대로 되지 못한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은 자기 통제력이 약하기 때문에 분노 조절이 안 되고 타인을 괴롭히게 된다. 결국 이 아이들은 삐뚤어진 ‘부모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 학생에 대한 치료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가해 학생 부모에 대한 교육이다. 부모가 달라지면 자녀는 저절로 달라진다. 따라서 저소득 가정의 부모에 대해서는 참가비를 지원해서라도 제도적 실효성을 담보하는 전향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아쉬운 점은 부모 교육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보호 기능을 상실한 가정환경의 가해 학생을 위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대책 수립을 위한 논의 과정에서 현재 7곳에 설치돼 있는 위탁형 대안학교 위(Wee)스쿨을 16개 시도에 한 곳씩 확충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최종안에서는 빠졌다. 위스쿨은 치료형 기숙학교이기 때문에 교육뿐 아니라 가정의 보호 기능을 대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무런 설명도 없이 대책에서 누락되었다. 치료형 대안학교라면 정부 주도의 위스쿨뿐 아니라 어떤 형태의 대안학교라도 학력을 인정하고 낙인효과가 없도록 학교의 졸업장을 수여하는 방식으로 좀더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치료형 기숙학교 대책에서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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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급한 불이라도 꺼보려고 노력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렇지만 학교 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주기적으로 대책이 논의돼왔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 핵심적인 이유는 학교 폭력에 대한 모든 책임을 학교에 전가하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교사는 징계를 받고 학교는 지역사회와 학부모로부터 문제 학교로 낙인찍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교는 사건의 해결보다는 서둘러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학교 폭력도 다른 많은 사회문제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병리현상이다. 사람이 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 하는 것과 같이 병리현상인 학교 폭력도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한 방안 중에 하나가 치료형 대안학교인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대책에서 누락되었고, 대부분의 대책은 학교와 교사의 책임을 더욱 가중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대책이라면 학교는 앞으로도 여전히 사건을 은폐하려 할 것이고 학교 폭력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유진 박사·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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