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10대 뉴스 선정 때 국장이 ‘희망버스’와 ‘나꼼수’를 빼라고 했다. ‘조·중·동도 뽑은 이슈’라고 싸워서 사회적 의미는 쏙 뺀 채 겨우 한 줄 들어갔다. 정권에 불편한 이슈는 아예 다루려 하지 않는다.”(4년차 기자1)
“4대강 준설 문제를 짚으려고 낙동강 구역 수심을 배 타고 일일이 재느라 품을 많이 들인 기사가 있었다. 방송 전 데스크가 빼라 지시해서 서울대공원 원숭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기사가 대신 나갔다.”(3년차 기자)
“인기 많던 경제부가 ‘카이스트’(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의미)가 됐다. 1개에 2만원짜리 배가 있다더라 찾아봐라, 가을철 모기가 많다던데 찾아봐라 하는 식의 굉장히 미시적이고 큰 의미 없는 아이템을 위에서 쏜다. 아래서 올려도 ‘킬’될 사안이 위에서 내려오는 역전 현상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4년차 기자2)
“카메라에 회사 명찰을 달고 다니는 우린, 최근 2~3년 새 시민들이 180도 바뀐 걸 체감한다. 뉴스 누락에 불만이 쌓인 시민들이 카메라를 잡아끌거나 욕을 하면 자괴감이 크게 든다. 시민들의 적대적 행위에는 동의 못하지만 분노에는 공감이 갔다. 기대감에서 실망감으로 바뀐 ‘민의’를 내부에 전해도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7년차 카메라 기자)
현장 기자 93%가 제작 거부 참여
제작 거부 이틀째인 1월26일 문화방송 노조 휴게실에 모여앉은 기자들의 ‘굴욕 체험담’은 끝없이 이어졌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문화방송 기자란 사실이 자랑스러웠다”는 그들은 한껏 풀이 죽어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언론의 기본을 지키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과, 현안을 외면하고 누락시키는 보도책임자들에 대한 분노가 교차했다. 한 사회부 기자는 “이전에는 큰일이 터지면 특별취재팀을 즉각 꾸려 새 사실을 발굴해 문화방송이 치고 나갔지만, 몇 년 전부터는 현장에서 밤새울 일도 없고 남들이 스트레이트(단독기사)를 쏟아내면 안 받을 수 없는 것만 (받아서) 보도한다”고 허탈해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내곡동 사저 문제도 따라가기식 단순 보도에 그치고, 그마저도 청와대 해명만 도드라졌다고 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119 전화 논란’ 보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2년차 기자는 “현안을 팽개치고 연성 뉴스 아이템을 찾느라 일이 몇 배는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3년차 기자는 “데스크가 처음 기사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으면 일관성이라도 지켜야 납득을 하겠는데, SBS가 두 꼭지나 보도한 다음날 김문수 지사가 소방관을 격려하는 동정 보도인 양 물타기식 보도를 했다”고 비판했다.
문화방송 기자들은 지난 1월25일부터 펜과 마이크,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노조 파업 없이 기자회의 주도로 공정보도를 요구하며 제작 거부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2009년 당시 신경민 앵커의 전격 경질에 반발하며 제작 거부를 한 적은 있지만, 기자들 사이에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파행적인 뉴스가 정상화될 때까지 싸우겠다는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결기가 대단하다. 뉴스가 더는 망가지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뉴스 쇄신의 첫걸음으로 전영배 보도본부장과 문철호 보도국장 등 보도책임자 교체를 요구하며, 편집회의실과 임원실 앞에서 침묵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11년차 기자는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권력 감시라는 언론의 기본을 지키려는 양심이 있어야 공영방송 보도책임자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축적된 기자들의 불만을 폭발시킨 뇌관은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과 보도국 간부들이 연초 내놓은 ‘뉴스 개선안’이다. 시간대를 저녁 8시로 옮기고 대표 리포터제를 실시한다는 형식 변화를 담았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월5일 기자총회를 소집한 기자회는 본질을 외면한 땜질식 처방이라며 ‘참회’의 결의문을 냈다. 이들은 “역사의 시계를 1987년 민주화 이전으로 되돌렸다고 해야 할 정도의 침묵과 왜곡의 연속이었고, 그 결과로 신뢰도와 시청률이 동반 추락했다”고 진단하고 보도책임자 사퇴를 촉구했다. 20년차 이상 부장급 기자들도 “1년간 소통 부재와 불신과 갈등을 키워온 리더십의 누적물”이라며 기자들을 지지했다. 취재 기자들과 카메라 기자들은 지난 1월8일 보도간부 2명에 대한 불신임안을 압도적으로 가결시켰다. 경영진은 반나절 만에 앵커를 맡고 있던 박성호 기자회장을 전격 경질하는 한편, 박성호 기자회장과 양동암 영상기자회장이 “해사 행위를 했다”며 즉각 인사위에 회부했다. 인사 쇄신 요구가 묵살되자 기자들은 1월18~19일 제작 거부 돌입을 위한 찬반 투표를 가결시키고, 25일부터 뉴스 제작을 멈췄다. 부장급 이상을 포함한 보도국 기자 총원 238명 중 179명(취재 기자 137명·카메라 기자 42명)이 참여했다. 현장에서 뛰는 기자들만 셈하면 93%가 호응했다.
노조 “김 사장 사퇴가 MBC 정상화”보도국에는 현재 국장을 포함해 22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 쪽은 비정상적인 뉴스 편성 외에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간판 뉴스인 50분짜리 는 15분, 아침 뉴스인 90분짜리 는 10분만 방송되고 있다. 제작 거부 중인 김수진 기자가 진행하는 마감 뉴스인 는 아예 편성에서 뺐다. 오전 9시30분 뉴스, 오후 4시 뉴스, 저녁 6시 도 불방되고 있다. 일요일 방영되는 도 불방됐다. 뉴스데스크 시청자 게시판에는 “실망감이 컸다. 공정한 뉴스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의견이 다수다.
기자들의 제작 거부에 이어 노조도 1월30일 김재철 사장 퇴진을 위한 파업에 돌입한다. 노조는 1월25~27일 조합원 1013명을 대상으로 한 파업 찬반투표를 압도적으로 가결시켰다. 따라서 기자들의 제작 거부 사태는 피디 직군을 포함한 전 직군의 동참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드라마·예능 등의 방송까지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노조의 파업 결의는 뉴스정상화를 위한 보도라인 인사쇄신 요구를 김 사장이 외면한 데서 비롯됐다. 김 사장은 지난해 11월에 열린 노사 동수의 공정방송협의회(공방협)에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보도의 친여 편향성을 인정하고 개선 약속을 한 바 있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보도(지난해 11월23일)도 편파성 논란이 일자, 노조가 지난해 12월초 사쪽에 공방협 개최를 제기했고 김 사장은 연말까지 응하라는 최후통첩에 응하지 않았다. 단체협약상 공방협에 두 번 회부될 경우 노조의 보직변경 요구에 사장이 응하도록 돼 있다. 공방협이 열렸다면, 전영배 보도본부장과 문철호 보도국장, 김장겸 정치부장은 물러나야 한다는 게 노조 쪽 판단이다. 노조는 인사권을 쥔 김 사장이 물러나지 않고는 문화방송 정상화가 요원하다고 본다. 정영하 문화방송 노조위원장은 “김 사장은 문화방송 사상 최악의 사장”이라며 “자신의 안위와 권력욕을 위해 공영방송 엠비시를 정권에 팔아넘기며 철저하게 망가뜨렸다”고 사퇴를 위한 전면전을 예고했다.
최소한의 대화 제의도 없는 사쪽
구성원들의 저항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데도, 회사 쪽은 최소한의 대화 제의도 없다. 공영방송 뉴스 파행에 대한 총책임과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 사장의 태도는 안이하기만 하다. 김 사장은 일본에서 열리는 한가한 한류행사 일정을 챙기며 1월25~27일 자리를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쪽은 “파업으로 인한 제작 거부 사태는 자주 있어왔고 뉴스 차질도 크지 않다”며 애써 심각성을 축소하고 있다. 사쪽은 또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의 집단행동은 타이밍도 적절하지 않다”며 뉴스 파행의 책임을 기자들에게 돌렸다.
권귀순 기자 한겨레 문화부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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