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료사진
카다피가 지난 3월2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퇴진 거부를 밝히는 연설을 하기 앞서 주먹을 쥐어 보이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쯤 되면 ‘막상막하’다. ‘용호상박’이요, ‘양웅상쟁’이라 부를 만하다. ‘혈혈단신’으로 세상과 맞섰고, ‘독불장군’으로 일세를 풍미했다. 한 사람은 ‘우리 시대의 에디슨’으로 불렸고, 다른 이는 ‘왕 중의 왕’을 자임했다. 가히 ‘낭중지추’였다. 지난 10월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등진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와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학을 진학하며 ‘혁명’을 꿈꾸다
둘의 삶엔 비슷한 점이 많다. 1942년 태어난 카다피가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리비아 왕정을 무너뜨린 건 1969년, 그의 나이 27살 때였다. 1955년 태어난 잡스는 21살 때인 1976년 부모님 집 차고에서 애플컴퓨터를 창업했다. 그들의 20대는 지나치리만치 화려했다.
성장 배경도 엇비슷하다. 카다피는 아랍 베드윈족의 천막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랐다. 잡스는 미국의 전형적인 노동자 가정에 입양돼 성장했다. 그러고 보니 시리아 출신 유학생을 생부로 둔 잡스도 절반은 ‘아랍인’이다.
대학에 진학하며 ‘혁명’을 꿈꾸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가말 나세르의 아랍 민족주의 세례를 받은 카다피가 ‘왕정 타파’를 꿈꾸고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리비아 왕립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부터다. 미국 서부 사립 명문 리즈대학교에 진학한 잡스는 한 학기 만에 학교를 그만뒀지만, 이후에도 1년6개월가량 교정을 전전하며 이런저런 수업을 들었다. 애플의 개인용 컴퓨터 ‘혁명’에 요긴했던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 인터페이스’에 눈뜬 게 이때였다.
취향은 극명히 엇갈리지만, ‘의상’에 특별히 신경 썼다는 점도 엇비슷하다. 잘 알려진 대로 카다피는 군복 차림을 즐겼고, 외국 나들이에 나설 때면 화려한 아프리카 전통 의상을 뽐냈다. 실내에서도 명품 선글라스는 필수였다. 잡스는 ‘유니폼’을 선호했다. 1980년대 초반 일본 방문길에 들른 소니 직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본 게 계기였단다. 이후 검은색 터틀넥 셔츠와 청바지 차림은 그의 ‘상징’이 됐다.
청중을 휘어잡는 ‘달변’도 닮아 있다. 애플이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잡스는 직접 무대에 올라 대중을 열광시켰다. 카다피의 ‘프레젠테이션’은 더욱 파격적이다. 특히 2009년 9월 사상 첫 미국 방문길에 유엔 총회장 연단에 오른 카다피가 남긴 96분짜리 ‘연설’은 세간의 입길에 오르고 있다. 유엔 의전규정은 각국 정상의 총회장 연설을 최대 15분으로 제한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걱정했다. 카다피는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은 을 통해, 아프리카를 넘어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까지 ‘혁명’을 수출하고자 애썼다. 애플 창업 초기, 경영 안정화를 위해 당시 펩시콜라 사장이던 존 스컬리를 영입하려고 잡스가 던진 발언은 그의 인생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여기 남아 평생 설탕물이나 파시겠습니까, 아니면 나랑 같이 가서 세상을 바꿔보시렵니까?”
삶이 비슷하다고, 죽음까지 그럴 순 없다. 췌장암으로 오랜 투병을 해온 잡스는 지난 10월6일 미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의 자택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죽음을 예감했던 그는 그보다 6주 앞선 8월24일 애플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비슷한 삶, 다른 선택
그에 하루 앞선 8월23일 카다피도 죽음을 예감했을 법하다. 그날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까지 진격해온 반군은 마침내 그의 관저인 ‘밥 알아지지야’를 함락시켰다. 하지만 카다피는 잡스와 다른 선택을 했다. 고향 시르테로 숨어들어 자기 국민을 상대로 ‘결사항전’을 외쳤다. 그로부터 두 달이 채 안 된 지난 10월20일 카다피는 반군에 붙들렸다. 무참히 매질을 당한 그는 이내 처형됐다.
잡스가 만들어낸 아이폰이 ‘아랍의 봄’을 불렀다. 카다피는 그 와중에 목숨을 잃은 첫 국가원수다. ‘사필귀정’은 이런 때 쓰는 말인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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